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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교재를 보여주는 알베르트씨.
한글 교재를 보여주는 알베르트씨. ⓒ 신재명
러시아 문화의 중심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Sankt Peterburg), 고전 발레의 혼이 살아 숨쉬는 마린스키 극장, 그 중심에는 다른 예술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급변하는 추세 속에서 정통 고전 발레의 역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마린스키(구 키로프 발레단) 극장 솔리스트를 거쳐 바가노바 선임 교사를 역임하다가 이제는 한국의 유니버설 발레단(UBC, Universal Ballet Company)에 새 둥지를 튼 미르조얀 알베르트씨. 그를 만나 한국 발레의 현주소와 나아갈 길을 진단해 보았다.

알베르트씨를 만나기 앞서 유니버설 단장으로서 국내 발레를 이끌고 있는 문훈숙 단장을 먼저 만나 알베르트씨의 영입 배경에 관한 질문을 몇 가지했다.

문훈숙 단장.
문훈숙 단장. ⓒ 유니버설 발레단측
- 발레 역시 '창작', '현대', '혼합' 등으로 장르가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고전' 발레이고, 왜 '러시아'이여야 하죠?
[문훈숙] "공든 탑이 쉽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수백 년간 이루어낸 한 발레단의 정통성 역시 잠시나마 시류를 따르다보면 금세 잃어버리기가 쉽죠. 저희 발레단은 지난 수십 년간 응고의 노력 끝에 세계 어느 발레단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한 정통성 있는 고전 발레를 확립했습니다.

나날이 현대화되는 추세에 고전 양식을 지켜가기 위해서는 그것을 이어갈 만한 능력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죠. 그러한 이유로 UBC는 정통성을 고집하는 러시아 고전 발레와 뜻을 같이 합니다. 그 중에서도 긴 역사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하는 바가노바 및 마린스키의 무용수, 지도자들과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 그 중에 알베르트씨는 어떤 의미가 있죠?
[문훈숙]"알베르트씨는 러시아에서나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무용수이자, 지도자로서도 풍부한 경험과 뛰어난 능력을 가진 분입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제가 그를 높이 평가한 것은 한국 발레에 대한 그의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고, 한 인간으로서 자상하고 책임 있는 면입니다.

그가 저희와 함께 일을 시작한 해는 95년부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UBA 선화 예술감독으로 교육을 맡아 달라 부탁했지만 그는 거절했죠. 이유는 이제 막 바가노바에 입학한 딸과 아직 졸업을 못한 자신의 제자들 때문이었죠. 그가 다른 이유를 댔거나 사심을 부려 양쪽에서 일하려고 했다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전 아마 다른 사람을 찾았을 겁니다. 하지만 알베르트씨만큼 완벽주의와 정통, 책임을 고집하는 사람은 흔치 않거든요. 저희는 그와 끊임없이 교류하며 기꺼이 10여 년을 기다렸습니다."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을 지도하는 문훈숙 단장.
연습실에서 무용수들을 지도하는 문훈숙 단장. ⓒ 유니버설 발레단측
1995년, 세계적인 마린스키 극장 솔리스트 출신 남자 무용수 알베르트씨의 눈에 처음 비친 당시 국내 발레는 유럽이나 세계 수준과 비교할 때 100년 정도 뒤쳐져 있었다. 안무와 음악, 교육 수준부터 무대 의상까지 모든 것이 아주 조악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 빠르게 성장한 한국 발레는 다른 국가에서 한 세기에 걸쳐 이루어낸 업적을 이루어냈다.

한국 발레 책자들을 보여주는 알베르트씨.
한국 발레 책자들을 보여주는 알베르트씨. ⓒ 신재명
"한국 발레는 정말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다른 국가에서 100년 걸려도 힘든 일을 10여년만에 이루어냈죠. 모두가 국민들의 높은 국민성, 발레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각고의 노력이 이루어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전 그러한 높은 국민성과 열망에 반하지 않을 수 없었죠. 그것이 제가 한국 발레를 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구요. 실제로 고전 발레에 대한 한국의 열정은 정말 대단합니다."

알베르트씨의 설명이었다. 한국 발레에 그토록 관심과 애정이 많은 그이기에 한국 발레의 현주소에 관한 질문을 몇 가지했다.

좋은 회전에 대해 설명하는 알베르트.
좋은 회전에 대해 설명하는 알베르트. ⓒ 신재명
- 한국 발레의 장점과 보완할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한국에는 아주 우수한 인재들이 많아요. 학생들은 절대 선생님보다 먼저 지치지 않고, 모르는 것은 계속 질문하죠. 그렇게 알고 싶어하고 스스로가 원하기 때문에 빠르게 발전하는 겁니다. 전 지금까지 '좋은 회전'을 못해내는 한국 학생은 본 적이 없어요. 러시아 학생들만 해도 어떤 학생들은 겁내서 주저앉거나 마무리를 대충하거든요. 한국 학생들은 그렇지 않죠. 선생님이 하라고 하는 그대로 완벽하게 해냅니다.

또한 한국인들은 음악적으로 아주 뛰어난 민족 같습니다. 언어가 그것을 증명해주어요. 단조로울 수도 있는 대화와 수업들이 모두 하나의 음악으로 바뀌죠. 저 역시 그래서 한글을 공부하고 있죠."

- 보완할 부분은 없나요?
"물론 있습니다. 무엇이나 완벽할 수는 없죠. 우선 정통성을 이어나갈 지도자의 양성입니다. 세계 발레는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무대가 개방되었고 뛰어난 무용수들이 여기저기서 러브콜을 받죠. 하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 솔리스트는 한 발레단에서 다른 발레단으로 이동할 수 있지만, 한 발레단을 대표하고, 그 성격을 나타내는 주역 무용수들은 그래서는 안됩니다.

주역 무용수들은 해당 발레단에서 키워내야 하고, 그러한 주역들은 발레단과 그들의 정통성에 애정을 가지고 그 발레단을 이끌어야 하죠. 한국 발레는 현재 이러한 체재로 이행해야 하는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발레 수준 자체로는 앞서 말씀드렸듯이 이미 세계적이지만요. 이것은 제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고, 지난 수년간 국제 콩쿠르의 입상 성적, 국제적 교류 등에서 입증된 바입니다."

- 러시아와는 달리 한국에는 프로 발레단이라고 할 만한 발레단이 유니버설발레단과 국립발레단 두 군데 밖에 없는 실정입니다. 이보다 낮은 단계의 프로 발레단들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한국에는 대학교 소속 발레단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하지만 말씀하셨듯이 여러 가지 면에서 유니버설이나 국립(발레단)과는 많은 차이가 있죠. 중간적인 프로 발레단들이 몇 개 생긴다면 아마 전체적인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습니다. 선두에 있는 발레단들(UBC, 국립)이 방심할 틈 없이 무한히 노력할 수 있게 되겠죠. 선의의 경쟁이야 언제든 좋은 것이니까요."

역시 발레리나인 부인과 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알베르트.
역시 발레리나인 부인과 딸의 가족사진을 보여주는 알베르트. ⓒ 신재명
이렇게 러시아 고전발레의 정통성을 한국에서 재현시키려 한국과 러시아의 두 발레 거장이 의기투합하였다. 일생을 고전발레에 바친 이들의 발끝에서 한국 발레가 세계 발레를 호령할 날이 멀지 않았음을 느꼈다.

덧붙이는 글 | 문훈숙 단장님과는 지난 2월에 서울의 예술문화회관에서, 알베르트씨와는 지난 6월에 러시아 본가에서 인터뷰했습니다. 제가 찍은 알베르트씨의 사진 이외에 기사관련 사진을 유니버설발레단 측으로부터 받고, 월드컵 열기가 식은 후 기사를 내려고 해서 출고가 조금 늦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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