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씨를 처음 만난 건 그녀의 저서 <고등어>를 통해서였다. 그때 나는 지금보다 더 목적 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고, 시골 간이역 대합실에서 너덜너덜한 소파에 앉아 그 책을 읽고 있었다.
딱 지금과 같은 계절에 여행의 지루함과 더위를 잊으려고 읽고는 있었지만 군데군데 감정의 덩어리가 엉겨붙어 있는 것 같아 꽤나 불편했었다. 마치 젊은 시절의 열기와 치기가 가시지 않아 작가 스스로도 숨차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마음대로 추측했었다.
그녀를 다시 만난 건 그로부터 4년여가 지난 바로 한 달 전, 강원도 시내 한 서점에서였다. 그때 역시 여행 중이었고, 비를 피해 들어간 서점에서 마음을 두드리는 제목에 이끌려 집어든 것이 공지영 씨의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었다.
그때 나는, 나를 자신의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말한 남자를 남겨놓고 여행길에 올라서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 삼십대 삶의 방향을 결정짓기 위한 이십대의 마지막 여행이기도 했다.
나는 이십대가 다 가도록 내가 경험한 몇 번의 사랑 후에, 내게 무엇이 남았는지 알고 싶었고 그래서 반나절만에 그 책을 다 읽었더랬다.
나는 사람처럼 책과 같은 사물과도 인연이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늘상 예기치않게 나타나서는 특별한 연을 맺게 되는 책을 만나왔기 때문이다. 주로 길을 떠나기 앞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무심히 집는 책들이 그랬다.
4년만에 만난 공지영 씨는(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책들은) 마치 내게 기어이 어떤 말을 전하려는 듯 매달리고 있었다. 왜냐하면 여행을 마치고 얼마지 않아, 또다시 그녀의 책 한권이 내게로 왔기 때문이다. 바로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였다.
과감히 떨어져 부서지는 빗방울처럼...
7년만에 다시 만나, '다시' 사랑하게 되는 두 남녀 이야기를 그린 <사랑한 후에 오는 것들>이 명료하고 유쾌했다면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는 그녀의 긴 시간, 치열했던 고뇌의 열매 같아서 심오하고 다소 무겁게 느껴졌다.
공지영씨는 책 안에서 자신의 이십대와 삼십대를 거쳐 (아마도) 내내 치열했을 사랑과 글쓰기에 대해서 이제는 다소 여유롭게 피력하고 있었다.
'나의 글쓰기가 이토록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글쓰기는 살아 움직이며, 끊임없이 상처받고 치유하고 있는 영혼을 질료로 삼는다는 걸 알았다는 말입니다.'
'세상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그러니 눈을 감지 말고, 책장을 덮지도 말고, 멈추지 말고, 앞으로 간다…… 앞으로 가는 길이 아파도 간다…… 너는 소설가이고 그래서 고맙다, 지영아, 하고.'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본문 중에서
대부분의 사람에게 기적의 약으로 여겨졌던 페니실린으로 인해 쇼크를 일으켜 죽는 소수의 사람처럼, 상처받기 쉬운 가슴을 타고 태어난 그녀는 이제 상처받을 것을 허락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말하며 자신에게 고맙다고 했다.
이십대 초입에 그녀를 만나 그보다 더 어린 철부지 주제에 '이 책 참 불편하군' 이라며 한 신인작가를 무시했던 나는 지금 스물 아홉 살이 되었다. 그리고 이십대의 마지막 해에 작가를 다시 만나 이제는 '나도 당신처럼 마냥 아프고 괴로워만 말고 삶에 제대로 미쳤으면 좋겠어요'라고 얘기했다.
그래서 남의 집 유리창에 비친 따스한 불빛이 그리워 애처롭게 매달려있는 빗방울이 아니라 과감히 바닥으로 떨어져 부서지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