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8월이면, 강원도 대관령의 산자락은 상서로운 기운으로 약동해왔다. 기왕에 푸른 생명을 분망하게 생동시키는 한 여름의 향연이 그렇거니와 세종솔로이스츠와 강원도에서 주최하는 대관령국제음악제가 있어서 더욱 그러하였다.
하지만 세 번째 음악제를 맞는 2006년의 풍광은 예전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한 여름의 강우량으로는 유례가 없었다는 폭우로 평창 대관령 일대와 인제 등 일원이 그야말로 쑥대밭으로 변하였다. 강원도의 지리적 특성상 태풍과 수해, 산불 등의 자연재해는 끊이지 않았으나 직접 현장을 가서보면 정말 신(神)은 있는가? 하는 반문을 그칠 수 없었다.
길은 엉킨 실타래처럼 제멋대로이다. 한 여름의 폭우로 불어난 흙탕물 몸피가 이끄는 대로 자신의 길을 갈 뿐이었다. 거기에는 도로도, 집도, 다리도 거칠게 없었다. 이렇게 물은 인간이 인위적으로 낸 길을 쉽사리 허물어 버린다. 그동안 인간들이 쌓은 길들은 그러니까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바뀌어 나갈 길이었던 셈이다.
이런 자연 재해 앞에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많은 사람들은 망연자실, 커다란 고통과 어려움에 빠졌다. 무연히 앉아 생활하던 주민들에게 밀어닥친 청천벽력의 재해 상황! 그렇지만 더 이상 절망과 허탈이 계속될 수는 없는 일이리라. 가까운 이웃의 손길이 내밀어 졌고, 전국에서 도움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기쁨에서 보다 슬픔 앞에서 더 많은 위로와 결집을 이루어 왔다.
이러한 아픔과 복구의 마음들이 전달되었던 것인가. 아무리 작은 감흥도 놓치지 않는 예민한 공명통 자체인 음악인들도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예술감독인 강효(줄리어드 음대) 교수는 “이번 집중호우의 최대 피해자인 강원도민의 아픔에 깊은 유감을 표하며, 아픔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음악을 통해 위로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자연스럽게 제3회 대관령국제음악제의 주제는 미리 정해졌던 ‘평창의 사계’에서 '위무와 약속'으로 바뀌어 가고 있다. 대관령국제음악제 운영실과 예술감독, 참여아티스트들은 하나가 되어 그간 준비해오던 음악제의 프로그램을 강원도 수재민을 위한 무료공연과 또 서울 등에서의 공연이익금을 수재민에게 기부하는 형태로 바꾸어 가고 있는 것.
음악제 운영실에 따르면, 이미 세계적 비올라 주자인 토비 애플이 협연 연주료 전액을 기부키로 했으며, 작곡가 고(故) 얼 킴의 부인 마사 킴과 중국 중앙음악원 리앙 차이 교수를 비롯해 마스터클래스에 참가키로 했던 스페인, 일본, 중국의 일부 학생들이 음악학교 등록금을 수재의연금으로 낼 의사를 밝혔고, 강효 예술감독도 개인적으로 500만원을 기부키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와 함께 음악제 운영실 관계자는 “그동안 대관령음악제의 개최를 기다려온 내 · 외국인 음악애호가들께 깊은 유감과 함께 안타까운 마음을 전한다” 며 "내년에 개최될 제4회 대관령국제음악제는 강원도민과 전세계 음악애호가들이 모두가 웃을 수 있도록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면서 성원과 애정을 당부하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손길과 정성이 이어지는 덕분인지 수해지구에는 이제 복구의 가닥이 잡혀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원통하고, 안타까운 마음들도 조금씩 메워질 것이다. 이번 경우만큼은 ‘비 온 다음에 땅이 더 굳어진다’는 말을 믿고 싶은 것은 비단 내 개인적 소망만은 아닐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공연 및 행사문의: 홈페이지(http://www.gmmfs.com) 033)249-33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