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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고즈윈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는 우리말을 한껏 풀어서 전달하기 때문에 쉽고 재미있다. 그렇다고 요란하게 장식하거나 치장한 것은 아니다. 근거도 충실하다. 상상력을 가미하여 보충하고 있는 것은 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이 책이 다른 책들과 구분되는 플러스 지점이 될 것이다.

언어와 문화의 상관성, 언어와 사고의 상관성을 필두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인간 두뇌의 발달은 언어의 기원과 관련이 있다는 것이고 언어의 발달은 문명의 창조를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반영하는 것이 언어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세계를 반영한 언어는 역으로 인간의 사고방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우리의 언어에 나타난 사고방식을 예로 든 부분은 새겨볼 만하다. 즉 우리는 상대방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한 판단과 객관적 사실에 대한 판단을 섞어 대답한다는 부분이 그렇다.

"너희 집 아니니?"에 대한 부정문형의 물음에 영어권에서는 자신이 알고 있거나 판단한 정보를 기준으로 하여 "응, 우리 집이야"나 "아니, 우리 집이 아니야" 이런 식으로 객관적인 사실의 여부만을 답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응(네 판단대로 우리 집이 아닌 것이 맞아), 우리 집이 아니야"라고 하거나 "아니(너의 판단이 틀렸는데), 우리 집이야"라고 답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말 속에 상대방을 염두에 두고 배려 존중하는 태도가 있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개인주의적인 사고가 섞여서인지는 몰라도 때로는 오른쪽으로, 왼쪽으로의 방향이 혼동되기도 하고("오른쪽에 있습니다"라고 할 때 그 기준이 되는 방향이 화자의 입장에서인지 청자의 입장에서인지), 안쪽과 바깥쪽의 구분이 모호해지기도 한다(승객의 입장에서 '안전선 안'으로 해야 할 것을 전철을 기준으로 하여 "○○행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안전선 밖으로 물러나 주십시오"라고 하는 경우처럼).

좀 더 생각해보면 사고의 근거나 기준이 무엇이냐에 달린 문제인 듯싶다. 이를테면 이 책이 인용해 주고 있는 도수희의 <백제의 언어>라는 책에서 "우리말이 북방에서 내려왔다는 결정적인 증거의 하나는 우리말의 방위가 남쪽=앞쪽(前方), 북쪽=뒤쪽(後方), 동쪽=왼쪽(左方), 서쪽=오른쪽(右方)과 같이 북을 등지고 남쪽으로 향해 내려왔음을 나타내 주는 데 있다"(이를 상징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면 '남방'은 '삶'을, '북방'은 '죽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게도 된다)고 언급한 것도 이와 관련되는 문제일 성싶다. 따지고 보면 삶과 언어와 사고와 문화는 긴밀한 것이라 하겠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보다는 비교적 덜 사용하는 말인 듯하지만 "고맙습니다"라는 말은 '곰'에서 온 것이란다. 그만큼 신성(神聖)이 스며 있는 말이 "고맙습니다"이다.

1576년 간행된 <신증유합(新增類合)>을 들어 '공경할 경(敬)', '정성 건(虔)', '공경할 흠(欽)'이 모두 '고마'를 그 풀이 어형으로 하고 있다는 것을 찾아낸다. 이어 <용비어천가>에 나와 있는 '고마나라〔웅진(熊津)〕'를 찾은 다음 '공경'과 '곰'을 매개시키고 다시 '검'(귀신)이라는 단어가 '신령'을 뜻하면서 실은 '고마'나 '곰'과 같은 뜻임을 발견해낸다. 그러므로 '고맙다'는 인사말은 '경건하다', '신령스럽다'의 의미를 띤다고 말한다.

영화 <황산벌>에서처럼 김유신과 계백은 말이 통했을까? 답은 '아마 통했을 것이다'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는 몇 가지 사료를 통하여 에둘러가는 방식으로 답에 접근하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부분들을 들자면 <삼국유사> 권1 김유신 편에서 고구려 첩자인 백석이란 자가 낭도의 무리 속에 별 무리 없이 섞여서 지냈다는 점, 또 <삼국유사> 권1 무왕 편에서 서동이 신라의 아이들에게 자기가 지은 노래를 부르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의사소통에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다는 점 등이다.

물론 가상과 추정의 방식을 취하고는 있지만, 또 역사적 사료를 온전히 믿는다는 바탕 위에서 성립하는 근거이자 삼국 간에 따로 그 나라의 말을 배웠다거나 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수긍할 수 있는 것이기는 하지만 일리가 있는 이야기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논의할 때 중요한 요건으로 삼는 것은 언어의 동질성이다. 나라의 국경선이 달랐던 것은 시대에 따라 흥망성쇠한 왕조의 역사라고 한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그러한 외부적인 경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면면히 흐르는 민족의 정체성이다.(80쪽)

민족의 정체성을 생각할 때에도 우리말 이야기는 좀 더 적극적으로 펼쳐질 필요가 있다. 우리의 근원을 찾는 일은 오늘의 우리를 지탱시키고 향진(向進)시키는 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지은이 정주리·박영준·시정곤·최경봉, 펴낸날 2006년 7월 5일, 펴낸곳: 고즈윈, 책값 11500원)


역사가 새겨진 우리말 이야기 - 우리말이 살아온 모습을 찾아서

시정곤 외 지음, 고즈윈(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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