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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리 예술마을에서. 한밤중 밤별 지는 시간에 머물면 더없이 좋을 곳. '공간 안'에서 '공간 밖'에 머물게 되는 곳.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한밤중 밤별 지는 시간에 머물면 더없이 좋을 곳. '공간 안'에서 '공간 밖'에 머물게 되는 곳. ⓒ 박태신
헤이리 예술마을의 갤러리 ‘MOA'에는 이상한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3층 정도 되는 곳 측면에 문이 하나 있는데, 보통의 건물에서는 비상계단으로 나가는 곳이라 할 곳인데, 이 갤러리에서 그 문은 혼자 밖을 조망하며 사색에 잠길 작은 공간으로 들어가게 되어 있습니다. 정말 기발한 발상입니다.

마음 내키면 주저앉을 수도 있습니다. 이곳 주변은 온통 벗이 되는 건축물과 자연 뿐이니 혼자 생각에 잠기기에 적절할 곳입니다. 밤이라면 펜도 책도 소용없을 터. 그저 삼면과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그리고 내면에서 쏟아져 나오는 상상의 세계에 기대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어떨까요.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툭 튀어나온 곳에는 공간의 확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상 속으로는 더 큰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툭 튀어나온 곳에는 공간의 확장 이상의 의미가 있다. 상상 속으로는 더 큰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을테니 말이다. ⓒ 박태신
'책이 있는 집' 1층 오른쪽에도 툭 튀어나온 공간이 있습니다. 이런 튀어나온 공간이 저는 좋습니다. 공간 활용은 하기 나름이겠습니다만 눈에 띄는 공간인 만큼 주공간과 차이나게 활용할 것 같습니다. 저 같으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 바닥 밑은 비워 있고, 위 공간은 2층 테라스가 되는 이 공간을 글 쓰는 장소로 삼으면 어떨까요. 그것도 상상력을 요하는 글쓰기를 할 때 말입니다. 시인 이상희는 방안에 벽감 같은 곳이 있어 들어가면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을 어느 글에서 묘사했습니다. 숨어서 글을 쓰면 글도 은밀해지지 않을까요.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작고도 가로로 긴 공간인 만큼 장식장으로 쓸모가 있을 공간. 콘크리트 벽체에 생기를 갖게 하는 공간.
헤이리 예술마을에서. 작고도 가로로 긴 공간인 만큼 장식장으로 쓸모가 있을 공간. 콘크리트 벽체에 생기를 갖게 하는 공간. ⓒ 박태신
예술가이기도 한 건축가들은 없어도 되는 공간을 찾아내고, 아름답고도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공간을 만들어내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헤이리 마을은 그런 행복한 사람들이 땀을 흘린 곳입니다. 대부분 집 주인과 건축가가 일치하지 않으므로 서로의 추구하는 바가 일치하는 지점에서 만들어진 것들이 이 마을 건축물들일 것입니다. 그들 모두 이 공간만큼이나 뇌 어느 한 군데가 툭 튀어나온 사람들일 것입니다. 잠시 제 머리를 한번 쓰다듬어 봅니다.

건국대학교에서. 툭 튀어나온 공간이 높은 층에 있으면 있을수록 긴장감은 더해진다. 자꾸만 와보고 싶어질 공간.
건국대학교에서. 툭 튀어나온 공간이 높은 층에 있으면 있을수록 긴장감은 더해진다. 자꾸만 와보고 싶어질 공간. ⓒ 박태신
건국대학교의 한 건물에도 이런 곳이 있습니다. 4층쯤 조금은 높은 위치에 이런 툭 튀어나온 공간이 있는데 한 쪽면에만 창이 나 있습니다. 온통 유리벽면의 건물에 이 공간만은 창을 제외하고 불투명한 벽면입니다.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눌 만한 공간 같습니다. 자기 발 밑이 빈 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면 조금은 긴장감도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니면 이 공간의 사방을 서가로 만드는 것입니다. 책으로 가득한 공간 한가운데서 책을 읽는 것입니다. '날으는 교실' 속에서의 독서는 이 더운 여름날 묘미를 더할 것 같습니다.

구석진 곳에 머물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곳을 좋아할 것 같습니다. 옛날 집 같으면 다락방에 숨어들었을 것입니다. 상상력은 아무래도 아웃사이더의 성향을 지니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제대로 갖추어진 곳이나 일반적인 곳보다는 '운신의 폭'이 좁혀지는 곳에서 더 기치를 발휘하기 때문이지요. 이 한여름, 책 한 권 들고서 그런 곳 찾아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파주 출판단지에서. 1층이기에는 너무 높고 2층이기에는 너무 낮은 어느 출판사의 툭 튀어나온 공간. 창밖에서 소리쳐 부르면 알게 될 사실!
파주 출판단지에서. 1층이기에는 너무 높고 2층이기에는 너무 낮은 어느 출판사의 툭 튀어나온 공간. 창밖에서 소리쳐 부르면 알게 될 사실! ⓒ 박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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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어 번역가이자, 산문 쓰기를 즐기는 자칭 낭만주의자입니다. ‘오마이뉴스’에 여행, 책 소개, 전시 평 등의 글을 썼습니다. 『보따니스트』 등 다섯 권의 번역서가 있고, 다음 ‘브런치’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https://brunch.co.kr/@brunocloud). 번역은 지금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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