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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논에 나가봤습니다. 벼마다 이슬이 하나 둘 맺혀 있더군요. 벼 끝자리에 대롱대롱 매달려서 아침햇살에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벼들을 보니 중학교 2학년 때 일이 생각납니다.
이제 겨우 사물이 보이기 시작하는 어슴새벽이었습니다. 논에 물이 잘 들어가는지 확인하기 위해 폭 1m도 안되는 논둑 길을 자전거를 타고 가다 그만 이슬에 젖어있던 땅에 바퀴가 미끄러지면 깊은 배수로에 빠진 적이 있었습니다.
가슴까지 잠긴 배수로에서 자전거와 함께 허우적거리면서 물위로 내 몸과 자전거를 꺼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그 날도 벼에는 아침이슬이 곱게 맺혀 있었습니다. 겨우겨우 자전거를 밀어내고 몸을 꺼냈을 때 몰아치던 안도의 한숨 그리고 한기와 함께 왠지 모른 서러움에 눈물이 나더군요.
아마도 아무도 없는 새벽에 그 넓은 김제 벌판에서 홀로 자전거를 끌고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스스로가 안쓰러웠거나 잠시 찾아왔던 죽음의 공포감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저는 논을 좋아합니다. 억척스러운 삶의 대한 힘이 만들어낸 산간의 다랑이논과 삿갓논들, 그리고 끝없이 펼쳐진 평야에 이어진 논은 벼의 생로병사와 함께 인간의 생명으로 이어지는 우리 모두의 어머니 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벼가 수입개방과 한미FTA 등쌀을 잘 견디고 굳건하게 이 땅에서 계속 피어나게 될 수 있을지 여부를 모르는 상황에 처해 있으니 결코 아름답게만 볼 수는 없습니다. 벼는 농부의 젖은 바지가랑이의 이슬만큼 자란다고 했는데 그냥 걷기만 제 바지가랑이도 이슬로 촉촉히 젖어갑니다.
지금 벼농사는 농민들에게 지어야 돈도 되지 않고 그렇다고 포기 할 수도 없는 애증의 대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 땅의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수많은 농민들의 삶이 이렇게 평가받는 다는 생각을 하니 논에 매친 아침 이슬이 어쩌면 농부들의 한의 눈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 전 민주화를 외치면 부르던 '아침이슬'은 아직도 들판에서 반짝이며 여러분이 아침이슬을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여러분의 직거래가 농민에게 힘이 됩니다. 참거래 농민장터(www.farmmate.com), SBS유포터 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