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말 발매된 데프콘 1집은 언더그라운드 힙합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반갑게 맞이할 앨범이었다.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한지 8년. 데프콘 1집
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굉장한 내공을 가진 앨범이었다.
언더그라운드 생활로 다져온 실력은 유명했고 유려한 라임과 데프콘 특유의 강렬한 목소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었다. 또한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참가 앨범의 완성도가 더욱 높다. 불독 맨션과 함께 한 ‘길’, 구봉숙 트리오와 함께 한 ‘염문설’, ‘내게 화끈한 그녀’ 등의 곡이 주목을 받았으며 그 외에도 여러 곡이 좋은 인상을 주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Verbal Jint가 앨범 많은 곳에 참여해 데프콘과 함께 널리 알려졌다 점이다. 특히 ‘Sex Drive pt.1 : Re-Visited’는 원래 Verval Jint의 ‘Sex Drive`에 실려 있던 곡으로 그의 실력을 십분 발휘한 곡이지만 노골적인 성묘사로 인해 앨범 발매 후 많은 논란은 불러일으켰다.
같은 해 10월 데프콘의 1.5집이라 할 수 있는 <1 1/2 Rawyall Flush>가 발매된다. 이 앨범은 1집에서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다시 다루고 있다. 그러나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곡은 ‘소멸’이다. 라이브 버전으로 실린 이 곡은 데프콘 특유의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이야기와 충격적인 결말을 지닌 이 곡에서 데프콘의 사회참여 의식을 찾아볼 수 있다. 일반적인 욕설과 비판이 담긴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입장에서 감정을 분출하기에 그가 노린 효과는 더욱 크게 작용한다.
2004년 11월 23일에 그의 정규 2집이 <콘이 삼춘 다이어리>란 이름으로 발매된다. 삼춘의 일기라는 점에서 전작에 비해 조금 편한 것은 사실이다. 브라스와 피아노를 많이 사용하여 곡이 전체적으로 부드럽고 따뜻하다. 역시 Verbal Jint는 많은 부분에 참여하고 있으며 Dynamic Duo, 아날로직, 윤종신, 정인 등 실력파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했다.
1집의 강렬한 skit과 노래를 선보인 구봉숙 트리오도 함께 한다. 부드럽다고 비판이 빠진 것은 아니다. ‘힘내세요 뚱’에서는 촌철살인의 유머가, ‘저글링 정글’에서는 전형적인 데프콘의 독설이 쏟아진다.
2006년 4월 13일에 오랜 침묵을 깨고 정규 3집 < City Life >를 발매했다. 클럽 공연과 방송 출연은 꾸준했지만 그의 새 음악은 들을 수 없었기에 이 앨범은 가뭄의 단비와 같았다. 이번 앨범은 기획, 음악 두 가지 측면에서 새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앨범을 구성하는 곡들이 테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 기획의 측면에서 높이 살만 하다.
각각의 곡은 영화의 여러 장르-코믹, 멜로, 액션, 공포 등-를 대표하고 있으며 이러한 작업을 통해 ‘청각의 영화화’를 시도했다고 한다. 그 결과 많은 곡이 스토리텔링의 성격을 강하게 띄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다양한 장르와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다. 물론 힙합이라는 장르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클럽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음악이 클럽에 적합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뜻이다.
이러한 변화로 인해 여러 장르-하우스, 드럼 앤 베이스, 전형적인 클럽 음악 등-와 힙합은 자연스레 혼합되었고 이번 데프콘의 앨범에서 이러한 점이 더욱 확연히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기획과 음악적 성향에서 데프콘의 작가주의 정신-물론 대중음악에서 작가주의를 논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는 뒤로하고서-을 찾아볼 수 있다. 가사에서도 이러한 점을 찾아 볼 수 있다. 일종의 오마쥬로서 곡의 모티브나 가사에 선배 뮤지션들의 음악이나 가사를 빌려 와 새롭게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표현들을 찾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2집부터 조금은 부드러워진 데프콘에게 실망하는 팬들도 종종 있다. 그의 음악에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있었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본능이 있었으며 그 둘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솔직함이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 보였던 공격적인 모습은 많이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30대가 된 힙합계의 큰형 데프콘. 그가 언더그라운드의 정신을 잃어버린 것은 아니다. 더욱 성숙하고 더욱 노련하게 사회와 싸우는 법을 터득해 가는 데프콘이기에 다음, 그 다음 앨범이 더욱 기다려진다.
덧붙이는 글 | 캠퍼스 헤럴드와 오마이뉴스, 네이버 블로그에 함께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