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사진)가 돌아온다.
탄핵 역풍으로 민주당의 몰락은 물론, 자신의 지역구에서마저 외면당하고 도미한 추미애 전 민주당 의원이 8월말께 한국으로 돌아온다. 미국행 비행기를 탄 게 2004년 8월 5일이니, 2년을 꽉 채웠다. 미국 컬럼비아대학 방문교수로 2년 비자가 만료되는 시점이다.
그의 귀국시기는 지난 6월부터 본격적으로 정가에 나돌았다. 그러다가 7월에서 8월말로 늦춰졌다. 추 전 의원측에선 "함께 있는 두 딸 아이(막내아들은 남편과 함께 국내 체류)의 학교 문제도 있고, 미국 살림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국의 정치상황을 고려할 때, 추 전 의원이 귀국시기를 조절하는 것에 대해 "그만큼 고민이 깊은 것 아니겠냐"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범여권의 대통합'이라는 전제로 정계개편설이 나돌고 있는데다가, 또 최근 탄핵 세력인 조순형 전 민주당 대표가 이번 재보선을 통해 살아 돌아옴으로써 '추미애의 복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성, 수도권, 영남, 이미지…
지금의 정치상황에서 추 전 의원의 입지만큼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정치인도 없다. 열린우리당, 민주당, 고건 전 총리 등을 범여권으로 묶었을 때 이 모두와 추 전 의원은 불가근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해왔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다는 것은 '기회'이자 '고립'이다. 4·15 총선 선대본부장을 끝으로 민주당과는 '당원' 관계만 유지하고 있으며, 정부·여당의 두 번의 입각 제의에는 "선의와 진정성을 읽을 수 있었다"며 예의를 갖춰 거절했다.
추 전 의원은 지난 2년간 철저하게 '정치적 유배'를 자처해 왔다. 오해를 살 만한 정치인과는 만나지도 않았다. 청와대와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의 입각 제의 메신저로 김한길 의원을 만난 정도다. 추 전 의원과 가깝다고 알려진 송영길 열린우리당 의원이 미국에 갔을 때도 전화통화만 했다. 몇몇 민주당 인사들과도 안부전화 하는 수준이다. 그래서 당에선 섭섭해한다.
지난해 8월 잠시 귀국했을 때도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사를 전하고, 정대철씨(현재 열린우리당 상임고문)를 만나 덕담을 듣는 정도였다.
대신 공부를 했다. 통일, 외교, 안보 공부를 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제시했었다. 정부가 북에 제시한 '중대제안'(대북전력송출)에 맞서 '화력발전소 건설안'을 내놓기도 했다. 최근 그와 통화한 한 지인은 "공부하는 재미에 푹 빠졌더라, '이제 영어가 보이기 시작한다'고 하더라"라며 안부를 전했다.
이 같은 독특한 처지로 인해 "범여권의 통합 메신저로서의 역할"에 대한 기대를 받고 있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 김헌태) 연구실장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을 오가며 '합리적 파트너'로서 추미애가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말했다.
추 전 의원에게 가능성을 높이는 환경 요인은 또 있다.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정치권에 여성 파워가 높아진 시점이라는 것. 한 실장은 "강금실(전 서울시장 후보), 한명숙(현 국무총리)과 함께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를 압도할 수 있는 세를 형성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특히, 추 전 의원이 '영남(대구)' 출신에 '수도권' 지역구 의원이었다는 점은 호남 출신의 차기 주자들에겐 부족한 절반을 채워줄 파트너로서 호조건이다. 여당 내에서 적극적으로 추 전 의원을 당겨온 정동영 전 의장이 그런 시선을 가장 많이 받았다.
열린 길과 열어야 할 길
그렇다면 '추미애의 선택지'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
입각설 최근 법무부장관으로 문재인 전 청와대 수석과 함께 하마평에 오르내리고 있다. 천정배 전 법무부장관도 "추미애를 껴안아야 했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추 전 의원을 선택한다면, 열린우리당 입장에선 앞으로 민주당과의 관계를 염두했을 때 숨통이 트이는 방식이다. 이와 맞물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최근 '연정' 방식으로 거국내각을 슬쩍 언급한 점도 주목된다.
민주당 대선 후보로 추대 정계개편이 예상외로 늦춰질 경우, 민주당은 대선 후보를 조기에 가시화해 견인력을 높이겠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특히 한화갑 대표의 경우,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2심에서 의원직 상실형을 받은 처지라 '피선거권 박탈'에 해당하는 대법원 판결이 확정될 경우, 독자 후보를 내세워 정계개편에 임할 공산도 배제할 수 없다. 내년 2월 전당대회가 예정되어 있어, 한 대표로서는 마음이 급한 처지다.
'고추' 동맹론 범여권 통합에 있어 '제3지대'를 형성하고 있는 고건 전 총리와 추 전 의원의 연대를 말한다. 추 전 의원이 특정 정당에 소속되는 방식이 아닌 외곽에서 고 전 총리와 함께 '제3의 대안'으로 세를 형성해 가는 경우다. 고 전 총리로선 두 정당의 답보상태를 견인할 카드로 생각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고 전 총리의 사실상 대권조직인 '희망연대'는 최근 발기인대회를 8월말로 늦춰 잡았다.
열린우리당 후보 경선에 참여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관계가 끝까지 변하지 않을 경우, 열린우리당 대선 후보 경선에 고건 전 총리와 함께 전격적으로 참여하는 방식이다.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완전국민경선제인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을 논의하고 있어, 제3의 후보들이 공정 경쟁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리스크 높은 기회
이런 열려 있는 가능성들에 대해 추 전 의원 측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모호한 상황은 '리스크(위험도)가 높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한 측근은 "(귀국 후) 당분간 구체적인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만 본인의 최우선 관심은 민주개혁세력의 대통합일 것"이라고 말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지만 어떤 것도 선택할 수 없는 처지이기도 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추 전 의원의 입장에서 위의 4가지 경우의 수는 '절반의 선택'일 수 있다. 본인의 희망이 '대통합'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렇다. 추 전 의원의 굴곡 많았던 행보가 그래왔다.
DJ를 통해 정계 입문해, '당선 가능성이 희박했던' 노무현 후보를 지켰고, 정풍운동에 동조하면서도 분당에는 반대했으며, 탄핵역풍 속 선대본부장을 맡아 삼보일배로 한민공조에 대해 사죄했다. 이후 2년간 정계를 떠나 있었다.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당면한 현실 또한 녹록치 않다. 어디든 열려 있지만 '대접'해주는 곳은 없다. 열린우리당, 민주당에서는 "만나볼 의향은 있다"면서도 '당원' 자격 이상에 대한 언급은 없다. '포스트 한화갑'으로 주목받고 있는 조순형 의원(상임고문)은 추 전 의원에 대해 "말할 입장이 아니"라고 반응했다.
특정 세력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점은 득이면서도 동시에 약점이다. '자산'(세력)이 없으면 목소리에 힘이 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여론을 등에 업는 수밖에 없는데, 조순형의 당선이 탄핵세력에 대한 면죄부를 준 게 아니라는 점에선 그의 복귀에 대한 민심의 반응도 예측불허다.
아무튼, 인물난을 겪고 있는 여권에서 '돌아온 추미애'가 어떤 역할을 할 지 시선이 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