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지난번 집중호우로 강원도를 비롯한 여러 곳에서 큰 수해가 발생했을 때 TV를 지켜보다가, 머뭇거리던 말을 아내에게 툭 던졌습니다.
"여보, 우리 이번 여름 휴가 동안 해수욕장 대신에 자원봉사나 가면 어때?"
아내의 대답이 즉각 돌아왔습니다.
"가면 고맙지."
아내도 진작부터 마음은 있었지만 자원봉사 가자고 하면 '오랜만에 쉬는데 그 따위 일을 하자고 초 치느냐'며 뭐라 할까봐 말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강원도 평창군청 홈페이지를 통해 자원봉사를 신청했습니다. 확인통보 전화를 기다리는 동안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속이 후련한 기분이었습니다. 동시에 내가 과연 무엇을 얼마나 도움을 줄 수 있을까, 행여 그들에게 방해나 되는 것은 아닌가 솔직히 두렵고 좀 떨렸습니다.
3일 뒤 평창군은 저를 진부면에 할당시켰다는 확인전화를 했습니다. 출발 하루 전에 다시 어디로 몇 시까지 오라는 통보를 하겠다고 그랬지만, 초조한 마음에 제가 먼저 전화를 했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몇 시까지 가면 됩니까? 면사무소로 9시까지 찾아가면 되겠습니까?"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마련한 해수욕장 숙소 식권도 반납했고, 인터넷에서 자원봉사에서 주의할 점도 점검했습니다. 숙박을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먹는 것은 일회용으로 충당하거나 과일을 준비하기로 했고 잠은 차에서 잘 계획을 세웠습니다. 장갑과 밀짚모자도 준비했습니다.
[첫째날] 고랑과 이랑이 사라진 밭에서 폐비닐 뽑아내기
진부면사무소의 아침 풍경은 흡사 시골의 장터였습니다. 관광버스를 대절해서 온 단체 자원봉사팀들, 개인적으로 차를 가지고 온 자원봉사자들, 자원봉사자들을 배당해달라는 주민들, 또 자원 봉사자와 현지 주민들을 연결하는 분들….
제가 가기로 한 곳은 하진부 6리의 최 선생님 댁이었습니다. 그 집은 수해로 방바닥 장판을 모두 걷어내고 습기를 말리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급한 집안 정리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상태였습니다. 직접적인 피해는 어느 정도 복구가 된 듯 했고, 이제 우리가 할 일들은 말하자면 수해지역 주민들을 위한 농촌 봉사활동 같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되는 데는 젊은 군인들의 말없는 수고가 절대적으로 큰 힘이 되었겠지요. 그들에게도 정말로 수고 많았다는 인사를 하고 싶습니다.
최 선생님이 저에게 요청한 일은 집에서 1분 거리에 있는 밭에서 토사에 파묻혀버린 검은 폐비닐을 걷어내는 일이었습니다. 아내는 바로 옆 양파밭에서 잡풀을 뽑는 일을 맡았습니다.
밭에 도착하니 마산에서 온 서로 친척들로 구성된 대학생들 몇 명이 이미 폐비닐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곳은 뒷산에서부터 비가 '일어서서' 내려 왔다고 합니다. 비가 쓸고간 자리에 보이는 것은 흙더미이고 밭 이랑과 고랑의 구분도 없어졌습니다. 간간히 검은 비닐의 파편만이 이 곳이 밭이랑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번에는 대충 어물쩍 일할 수 없었습니다
얕게는 5㎝에서 깊은 곳은 20㎝가 넘게 파묻힌 폐비닐을 고구마 줄기 걷어내듯 잡아올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임하는 저의 마음자세가 스스로 기특했습니다.
저도 자의반 타의반 '차출'되어 이런 일을 해본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 때는 솔직히 '대충 이 정도하면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내 발로 걸어와 도움이 되겠다고 했기 때문에 어물쩍 넘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지나간 자리에 그 주인이 다시 와서 일을 하게 한다면 차라리 안 하느니만 못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들은 가까이 있는 이모부댁에 가기로 했다며 오후 5시에 먼저 밭을 떠났습니다. 내가 맡은 구역을 마치기 위해서는 좀더 시간이 걸렸습니다.
맞은편 밭에서는 수마가 쓸고 간 밭을 갈아엎고 다시 밭 이랑을 만들고 그 위에 검은 비닐을 덮는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밭 주인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넸습니다.
"친척분이세요?"
"아니요. 자원봉사중인데요."
"아니, 자원봉사하시는 분이 이렇게 늦게까지 하세요?"
"제가 일을 더디 해서 그렇지요. 곧 끝납니다."
"그런데 주인은 왜 나와보지도 않는데요?"
"바쁘신가 보죠, 뭐."
그 아주머니는 기껏 해놓은 농사를 비가 와서 다 쓸어가는 바람에 갈아 엎어버리고 내일은 배추를 심으려고 비닐을 덮고 있노라 했습니다.
사실 좀 늦게 일을 마치긴 했지만 하늘에 해는 아직도 중천이었습니다. 이렇게 시간 여유가 있을 줄 몰랐습니다. 면사무소에 가서 내일은 어느 곳에 배정이 될 것인지를 물어보니 아침 9시에 오라고 하더군요.
맑은 공기 속에 하늘의 별을 보며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아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차 속에서 그냥 잠을 잤습니다. 사실은 몸도 매우 피곤해서 여기 저기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둘째날] 산간계곡에 배추 심기
다음날 아침 깨보니 열어놓은 자동차 창문 안으로 버드나무 잎새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차 속에서 잠을 자는 것이 편치는 않은 듯 몸이 찌뿌둥했습니다.
아침으로 라면에 밥을 말아먹고 면사무소로 갔습니다. 구미에서 오셨다는 두 분을 만나 넷이 같이 갈만한 곳을 요청했고, 당첨된 곳은 산간 계곡을 개간해서 고랭지 감자와 배추를 재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곳에 가면서 집중 호우때 얼마나 큰 물난리를 겪었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 맡게 된 일은 이미 감자를 심어놓은 곳에 다시 배추를 심는 일이었습니다. 모판 하나에 새끼손가락 길이 만한 배추가 200개가 있었습니다. 일정 간격으로 비닐에 손으로 구멍을 뚫고 이 배추를 심은 다음 조그만 삽으로 주변 흙을 파서 비닐을 덮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비닐이 바람에 날리면 배추가 상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점심을 먹는데 기력이 떨어졌음을 몸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구미에서 오신 두 분 뿐 아니라 아내까지도 한 그릇을 뚝딱 비우는데, 나는 도저히 밥을 다 비울 수가 없었습니다. 구미에서 농사짓는다는 분은 이런 뙤약볕에서는 일하는 게 아니라며, 좀 누워 쉬었다가 좀 지나면 그 때 하라고 그랬습니다.
나무 그늘에 좀 쉬다가 다시 밭으로 나갔고 오후 5시에 주인에게 이야기를 하고 내려왔습니다. 다음날 아내가 할 일이 있고 다음주부터 여름 강좌 준비할 일이 많아서 저녁에는 다시 집으로 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사람도 했습니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마음은 참 가볍습니다. 비록 제대로 도움을 주지도 못했고 어설펐지만, 그래도 뿌듯합니다. 건강이 그리 썩 좋지도 않았음에도 함께 해준 아내에게도 정말로 고마웠습니다.
행여 '자원봉사를 내가 감히 어떻게 해?'라고 스스로를 낮추시는 겸손한 분들은 다시 한번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저같은 사람도 했습니다. 아내는 골수가 정상 수치보다 모자라 지금도 약을 복용하고 있습니다.저도 협심 증세가 있어 대둔산 220계단 정도를 쉬지 않고 올라가면 쓰러지는, 허우대만 멀쩡한 사람입니다.
자원봉사 그거, 얼마 전 유행하던 말로 하면 '그까이꺼', 아무나 다 할 수 있습니다. 봉사활동을 자주 하신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경험해보니 별 거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강원도 지역으로 수해복구 자원봉사를 가신다면 해수욕장 가셔서 즐기실 준비를 하셔도 될 겁니다.
자원봉사를 오밤 중까지 하는 것이 아니니까 저녁 시간에는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어차피 해수욕장을 가더라도 한낮에는 수영도 못하잖아요? 그럴 때는 긴팔 옷을 입고 자원봉사하시고 저녁에 선선해지면 피서를 즐기시면 기쁨 두 배, 만족 네 배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면사무소에서 수해복구 자원봉사자들과 수재민들을 연결하시는 분들의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아직도 일손이 많이 부족한 것같아 안타까웠습니다. 저의 글이 자원 봉사를 망설이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돌아올때는 고속도로 통행료 면제 증명서도 발급해줘서 고마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