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 낮 영동고속도로는 피서객 행렬로 꽉 막힌 상태다. 서울 하늘 위에는 피하지 않으면 다 태워버리겠다는 기세로 태양이 이글거린다. 매주 찾는 북한산 인수봉도 벌겋게 달아올라 감히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다들 끔찍한 더위라고 혀를 내두를 때 기자는 겨울 우모복(방한복)을 꺼내들고 취재에 나섰다. 영하 10도 이하의 추위에만 꺼내입는 거위털로 만든 제법 비싼 우모복이다.
긴 장마 끝에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 때, 여름철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레포츠는 무엇이 있을까 생각했다.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해수욕장. 수영복만으로 몸 가리개를 최소화한 채 수영을 즐기거나, 좀더 우아하게는 수상스키를 즐기는 것일 게다. 중년의 품격을 생각한다면 속옷 바람으로 계곡에 발을 담그고 수박을 쪼개먹는 것도 피서의 한 방법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색다른 길을 택했다. 남들은 조금이라도 벗으려는 이 여름에 한 겨울에나 입는 우모복을 입어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땀띠날 일이다.
빙벽의 얼음조각이 산산이 흩어진다
얼마 전 북한산 입구에 있는 O2월드를 찾았다. 세계 최대 규모의 실내 빙장이라고 알려진 곳이다. 냉장고 문짝같은 출입문을 열고 빙장 안에 들어서자마자 서늘하다. 실내온도는 영하 4도. 제법 쌀쌀한 겨울날씨 수준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빙벽에 매달려 있다. 피켈(도끼모양 쇠붙이가 붙어있는 지팡이)과 아이젠(미끄러짐 방지 도구)이 꽂히자 빙벽에서는 얼음조각이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다.
빙벽장비를 모두 갖추려면 적게는 백만원 남짓, 많게는 수백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이제 막 입문하려는 초보자 입장에서는 여간 부담스러운 비용이 아닐 수 없다.
주말을 이용하여 한철 더위 피할 정도라면 장비를 대여해서 즐기는 것이 경제적일 수 있다. 1일 3시간, 장비대여료를 포함하여 5만원이다. 월 회원으로 등록하면 4주 20시간 과정에 20만원이다. 교육과 함께 빙벽등반을 즐길 수 있다.
숙련된 지도자가 크램폰(빙벽화에 차는 아이젠)으로 빙벽을 찍는 프론트 포인팅(발쓰기), 바일(빙벽용 피켈)을 이용한 스윙 방법 등 초보적인 빙벽등반 기술을 지도해줄 뿐만 아니라 각종 안전수칙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꼭대기 확보지점에 로프를 걸고 등반하기 때문에 추락으로 인한 위험이 비교적 적다. 연일 물놀이 사고가 발생하고 있는 것에 비추어 오히려 안전한 여름 레포츠라고 할 수 있겠다.
실내 빙장은 기후변화에 따라 빙질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자연 빙벽보다는 훨씬 안전하다. 그러나 높이 20m에 떨어질 때 충격은 상당하기 때문에 안전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단다.
코 끝 스치는 정상의 찬 바람, 짜릿하다
빙벽 등반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일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초보자들이 더욱 즐거워한다는 것이 이 곳 관리인인 고철준씨의 말이다.
지난 겨울은 빙벽을 즐길 수 있는 시즌이 짧았고, 1월 이후에는 그나마 얼음 기둥이 거의 녹아내려 제대로 빙벽을 즐기기 힘들었다. 그래서 올해 처음 빙벽등반에 입문한 방송작가 주정은(37·여)씨는 실내빙벽장이 더욱 소중하다고 말한다.
겨울철 격한 운동을 한 후 찬 바람을 맞아본 사람은 알 것이다. 코 끝을 스치는 바람이 얼마나 상쾌한지. 정상에 올라서면 짜릿한 고도감과 함께 스스로의 힘으로 성공했다는 자긍심이 든다.
영하 4도의 실내기온을 자랑하는 빙벽장에서도 그같은 상쾌함을 느낄 수 있다. 특히 요즘과 같은 여름에는 그 상쾌함이 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