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간 흐지부지하게 진행돼 오던 '장항산업단지 조속 착공 촉구를 위한 군민궐기대회'가 충남 서천군청 산하 공무원, 서천군 마을 이장 및 부녀회장, 새마을지도자들 등 약 1천여 명이 모인 가운데 열렸다. 특히 서천군청 산하 공무원 대부분(최하 500여명)이 동원돼 참석했다.
이날 군민궐기대회는 '장항국가산업단지 조속착공추진위원회(상임공동대표 김중원·나우찬·문수곤)' 주관으로 7일 오전 10시 서천군 마서읍 금강하구 둑 관광단지 내 체육공원에서 강행됐다.
이 자리에는 나소열 서천군수, 류근찬 국회의원(보령·서천), 오세옥·송선규 도의원, 이상만 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13명의 군의원 전원이 참여해 격려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를 보였다.
이들은 지역 경제가 낙후된 상황에서 장항산단이 지역발전의 유일한 대안임에도 불구하고 착공이 지연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일부 환경단체들은 장항산단 착공에 대한 대안 없는 반대 즉각 중지 ▲중앙정부는 예정된 대로 착공될 수 있도록 강력히 추진할 것 등을 촉구했다.
나우찬 공동대표는 연설에서 "뜻이 관철될 때까지 군민 장항산단 착공 깃발 달기 운동 및 장항읍 상가 장항산단 착공 연등 달기 캠페인 등을 전개하겠다"며 "지역 내 장항산단 조속 착공 분위기를 고조시켜나갈 계획이다"고 밝혔다.
또 이날 궐기대회에서는 "이제 우리는 거짓말을 일삼고 있는 정부에 대해 더 이상 속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는 이제 누구도 믿지 않을 것이며, 우리의 권리는 우리가 쟁취할 것"이라는 내용의 결의문 낭독이 있었다.
결의문낭독 후 나우찬(서천군 발전협의회장), 오혁성(장항 발전협의회장), 김경제(장항 상인연합회장), 정석구(장항 발전협의회 부회장), 이갑복(장항 발전협의회 부회장), 안순성(장항 금강로타리 회장), 박원제(장항 서해포럼 회장)씨 등이 삭발식을 가졌다.
이어 신길식(장항 라이온스 회장), 이한성(장항 JC 회장), 신동국(장항 발전협의회 부회장), 구정환(장항 발전협의회 이사)씨가 장항산단 착공을 촉구하는 혈서를 썼다. 혈서는 해양수산부장관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이후 참가자들은 환경단체, 해양수산부, 정부에 대한 화형식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이어 금강철새전망대까지(약 1.5km) 평화행진을 벌이고 1시경에 해산했다.
군수, '속 다르고 겉 다른' 목적 불명 '관제데모' 주도
류근찬 국민중심당 의원은 격려사에서 "사업 예정지는 갯벌로써의 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안다"며 "환경보존도 중요하지만 서천군 실정으로 봐서 착공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같은 발언으로 어민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특히 나소열 군수는 격려사에서 "2004년도부터 교통 및 환경영향평가 주민설명회를 시작으로 착공에 필요한 행정적인 절차가 본격적으로 추진되어 현재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일부 반대세력에 의하여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이어 나 군수는 "이제는 정부에서 추진하겠다고 하니 극소수이긴 하나 우리 군민의 숙원사업을 우리 군민이 발목을 잡는 꼴이 되어 버렸다"고 덧붙였다.
또 나 군수는 "오늘을 계기로 우리 군민 모두가 장항국가산업단지의 조속한 착공을 위하여 더 큰 목소리와 더 큰 열정으로 우리 군민들의 역량을 한데 모으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 군수는 이날 궐기대회 시작 한 시간 전인 오전 8시 40분경 기자와의 면담에서 다른 상황임을 밝혔다.
나 군수는 "이제 와서 정부가 장항산단 대신 서천군 보고 대안을 내놓으라고 한다"며 "언론이 나서서 정부의 일관되지 못하고 무책임한 처사를 비판하는데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주문했다. 이어 그는 "대안을 내놓더라도 지금은 때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는 이미 장항산단 착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듯한 발언이다.
특히 '관제데모 구설수'에 오른 가운데 나 군수가 이날 궐기대회를 연 것은 장항산단 무산의 책임을 '환경단체'와 '반대하는 주민', '중앙정부'에 떠넘기려는 목적으로 악용한다는 비판을 다소 뒷받침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더구나 "중앙정부가 주민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한 나 군수가 오히려 주민 분열을 획책하는 발언을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안 되는 줄 알면서 어쩔 수 없이 동조한 '군의회'... 들러리
그 동안 서천군의회 의장을 비롯해 다수의 의원들은 "장항산단 착공은 이제 안 되는 것으로 안다"고 말해왔다. 이 때문에 궐기대회 참여를 놓고 의장단과 상임위원장 회의, 의원 간담회 등을 열고 의견을 교환했으며, 막판에 집회 참여를 결정했다.
조병진 군의회 부의장은 지난 5일 의회 전체 간담회를 가진 후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본인 외 2명의 의원은 산단 착공에 회의적이며 궐기대회 행사 참여 반대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다른 몇몇 의원들도 "다 끝난 일을 가지고 (궐기대회를) 하는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이 이날 궐기대회에 참여를 결정한 것은 '찬·반을 떠나서 군민들이 하는 행사에 인사차 참여한다는 것'과 '의회의 분열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안 된다'는 의견합의가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영규 서면김부류식협회장은 군의회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집행부가 이미 안 되는 일을 가지고 군민을 고달프게 하는 궐기대회를 한다면 군의회가 따끔하게 충고해야할 일"이라며 "군의회가 그런 식으로 산단 촉구 집회에 참여했다면 9일에 있는 반대 집회에도 참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제데모'로 군청 텅 비고.... 참여하지 않은 단체명 현수막 등장
궐기대회가 열린 7일 오전 내내 서천군청 산하 실·과 및 사업소는 물론, 읍·면사무소에는 공무원들 3∼4명을 남기고 모두 집회에 동원돼 민원인들이 헛걸음하는 일이 발생했다.
서천읍 두왕리에 사는 주민 김아무개(48)씨는 무더운 날씨 속에 서천읍사무소를 방문했다가 담당공무원들이 없어 발길을 돌렸다. 김씨는 "담당자가 없어서 그냥 돌아간다"며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씨 이외에도 이날 궐기대회가 열리는 사실을 모르고 찾아온 많은 민원인들은 업무를 처리하지 못하고 돌아갔으며, 불평이 이어졌다.
앞서 서천군은 지난 2일 확대간부회의(실·과·소장 및 읍·면장)를 갖고, '범서천군민 궐기대회' 내부지침을 내린 바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총 5천 명의 인원동원을 목표로 장항읍 1700명, 서천읍 900명, 서면 300명 등 13개 읍·면별로 동원인원을 배정했다. 또 실·과·소도 초소인원 2명(민원실 8명)을 남기고 모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3일 각 읍·면 별로 이장단협의회를 소집해 마을별로 인원을 배정했으며, 실·과·소는 소관 사회단체에 대해 참여할 것을 독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참여인원은 1000여 명으로 공무원과 마을 이장 부녀회장, 건설업협회 등 빼면 자발적으로 참여한 국민은 극소수라는 분석이다.
또 이날 궐기대회에서 '서면개발위원회'처럼 산단 착공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어민들이 대부분인 단체의 이름이 적힌 현수막이 동원돼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이에 대해 서면개발위원회 총무는 "상의한 적도 없고 참가한 적도 없다"며 "군이 입장을 밝혀야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장항국가산단 반대 장항갯벌살리기 서천주민대책위(공동대표 김영규, 방훈규, 이원문, 이우봉)'는 오는 9일 도청 앞 집회를 위해 7일 오전 집회신고를 마쳤다. 이들은 9일 집회 참가를 위해 대형버스 15대를 예약한 것으로 알려져 장항산단 착공을 놓고 서천군 내 찬·반 논쟁이 과열조짐을 보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서천지역 주간신문 <뉴스서천> 11일자에도 보도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