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장항갯벌을 매립해 산업단지를 세우겠다는 계획이 지지부진해진 주된 원인은 환경단체와 어민들의 반대 때문이 아니다. 인근 군산 공단의 20% 입주율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사업 전망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정부가 손을 못 댄 것이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시화호의 오염과 새만금 간척 문제 등이 불거지면서, 국민 대부분이 갯벌매립을 반대하게 됐고, 이제 대통령이라도 쉽게 갯벌을 파괴할 수 없는 세상이 된 탓이다. 어민들과 환경단체가 한 것이라면, 기껏 서천 갯벌과 바다가 연간 3000억원의 수익을 낳는 황금어장이며, 서해에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생태계의 보고라고 밝힌 것밖에 없다.
1994년 1월 6200억원을 들여 만든 시화호는 어떻게 됐나. 2년도 채우지 못하고 죽음의 호수로 변한 애물단지는 아직도 쓸모를 찾지 못하고 있으며, 어민들의 생계를 파탄 낸 것도 모자라 매년 50여억원의 관리비만 축내고 있다. 이어 만들어진 화옹호(경기 화성), 석문호(충남 당진), 홍보호(충남 홍성-보령) 등도 결과는 같았다.
또한 동아매립지, 서산 간척지를 매립했던 동아건설과 현대건설은 막대한 손실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부도를 냈다. 특히 최근 연결된 새만금 방조제는 누구도 그 피해와 악영향을 예측하기 힘든 상황이다. 전북의 여론이 방조제를 연결하는 데까지는 밀어붙였지만, 시화호 등의 사례와 달리 그 쓸모를 찾아낼 수 있으리라고는 단정하기 어렵다.
결국 문제는 환경단체의 반대가 아니라, 그 이후를 장담할 수 없는 산업단지 계획의 한계다. 국민들이 시화호, 새만금 간척의 시행착오를 또다시 용납하지 않을 뿐더러, 낯 두꺼운 정치인들, 책임 회피 행정가들도 더 이상 뻔뻔해질 수 없는 상황에 왔다.
따라서 서천군과 정부는 보다 냉정하고 진지하게 판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만만한 환경단체나 때려, 자신의 부실한 공약을 감추고 책임을 떠넘기는 서천군 지도자들의 태도는 당당하지 못하다. 역시 잘못된 정책으로 확인된 산업단지를 스스로 철회하지 못하고 환경단체 뒤에 숨어 버린 정부는 무책임과 나약함에 대해 비난 받아야 한다.
바라건대, 서천군은 스스로 만든 주민동원 계획서에 있는 것처럼 부디 선진지 견학을 스스로 떠나보시길. 새만금뿐만이 아니라, 시화호와 화옹호까지도 둘러봐도 좋다. 그리고 허황된 전시관이 아니라, 삶터를 잃고 배회하는 주민들, 가슴에 대못을 박고 사는 민중들의 고통을 들으시라. 지금도 박수 치는 사람들이 있는지, 앞날을 장담하던 자 여전히 목소리 큰지 살피시라.
뙤약볕에 주민들 몰아 고생시키지 말고, 진정 서천군이 나갈 길이 그곳에 있는지 고민하시라. 어메니티(Amenity: 1990년대 중반부터 서유럽 국가에서 유행하고 있는 농촌개발 방식으로, 농촌의 자연 경관을 해치지 않고 주변의 자원들을 활용해 사람들에게 만족감과 쾌적성을 주는 정책) 서천을 선거 구호가 아닌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시라.
정부 역시 제2의 시화호, 제2의 새만금을 또 만들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책임지기 두려워 결정을 미루거나 속 보이는 타협책으로 불필요한 혼란을 야기하지 말아야 한다. 어민들을 꾀기 위해 알량한 지원금을 제시하거나, 환경단체들의 눈을 속이려 말장난 하지 말라. 그리고 17년간 서천군민들을 기만했던 책임을 느끼고, 서천군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라. 진정 산업단지가 필요하다면 갯벌이 아닌 곳에 없는지, 산업단지 대신 지역 발전을 위해 지원할 수 있는 게 없는지 고민하길 바란다.
그리고 서천군민들도 맘 단단히 먹고, 정황을 똑똑히 봐야한다. 위정자들의 구호가 과연 군민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진심인지, 그리고 그 공약이 충분히 합리적이고 실현가능한지 판단하시길. 이웃 어민들의 아우성에도 관심을 가지시고, 환경단체의 의견에도 귀 기울보면 좋겠다. 서천 땅의 영원한 주인으로서, 후회 없는 선택을 내릴 수 있도록….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염형철 환경운동연합 활동처장이 홈페이지(http://kfem.or.kr)에도 올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