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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편지글을 올리는 이유 | | | | 휴가이면 어김없이 일부 피서지의 바가지요금으로 불만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그러나 전남 고흥을 다녀온 저희들에게 바가지요금은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들렸습니다. 처음으로 그 곳을 찾았지만 그곳에서 만나본 고흥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 씀씀이와 정갈한 미소는 제 무딘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그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이 편지를 씁니다. 특히 지역감정으로 남해안을 찾지 않던 분들이 남해안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희망도 가져봅니다. | | | | |
전남 고흥에 살고 계시는 여러 어르신들께 삼가 올립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경상남도 창원에서 살고 있는 40대 후반의 공무원입니다. 저는 동료가족과 8월 7일부터 9일까지 2박3일 일정으로 고흥을 다녀왔습니다.
그곳으로 떠나지 못할 위기도 있었습니다. 동료 부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서 여행에 합류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4명의 아이들 뒤치다꺼리를 생각하던 아내는 '가까운 곳이나 다녀오자'며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습니다. 그러나 남자들이 '일을 다 하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김일 선수의 고향으로 알려진 고흥 거금도(금산)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2시간 가량 더 차를 몰아 고흥의 녹동항에 도착했습니다. 뱃삯은 차 1대에 8천 원, 사람은 1인당 1천 원인데 차를 실을 경우 두 명은 제외되어 1만9000원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금진항에 도착했는데, 우리는 잠시 갈 곳을 몰라 차안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연세가 지긋한 할아버지께서 조용히 창문을 두드렸지요.
저희는 '민박집에서 손님으로 끌고 가려는 것'으로 지레짐작을 하고는 밝지 않는 얼굴로 창문을 내렸습니다.
"처음이신 것 같은데, 아이들이 놀기는 익금해수욕장이 좋고 조용하기는 연수해수욕장이 좋아요. 또 낚시를 하려면 공고지 쪽으로 가는 게 좋은데, 어디를 생각하고 오신 건가요?"
"그냥 한번 둘러보고 결정하겠습니다."
"둘러보려면 이쪽이나 저쪽 길, 어느 쪽으로 가도 됩니다."
제 짐작이 빗나가서 저는 적이 당황했습니다. 응당 내려서 감사의 말씀을 올려야 되는데 그냥 차에서 앉아서 겉치레로 인사를 드렸던 점, 참으로 죄송합니다.
어떤 명목의 입장료도 받지 않는 곳
저희는 할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아이들이 물놀이를 즐길 수 있는 익금해수욕장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면서 저희는 깜짝 놀랐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다닌 휴가지의 경우 마을노인회에서 입장료, 마을청년회에서 주차료, 마을부녀회에서 청소비 명목으로 텐트 당 얼마씩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는 어떤 명목으로도 돈을 받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길가에 차를 세우고 솔숲에다 나란히 텐트를 쳤습니다. 코발트 빛 바닷물과 넓은 황금빛의 모래사장, 깊지 않는 해수욕장은 아이들이 놀기에 참으로 좋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있었습니다. 샤워장 물에 소금기가 너무 많아서 머리를 감자마자 뻣뻣하게 굳어버렸습니다. 도회지 사람들은 여름이면 거의 매일 샤워를 하는데 몸도 개운하지가 않았습니다.
'바닷물이 흘러 들어온 것이 아니냐?'고 묻자 그곳에 있던 아주머니는 소류지(?)에 물을 모아서 공급을 받는 것이라며 '물은 괜찮다'고 하는데 저희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건설 중인 연도교가 완성되면 고흥에서 수돗물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물 문제는 해결이 되겠지요.
가게의 물건값은 휴가지이고 섬인 점을 감안하면 그리 비싼 편은 아니었습니다. 1.8ℓ의 물이 1000원, 페트병 맥주가 5500원 정도였습니다.
8월 8일 이른 아침, 동네 아주머니들의 쓰레기 수거가 시작되더군요. 쓰레기봉투를 들고 백사장을 돌고 나서 야영지의 쓰레기를 수거했습니다. 소나무 곁에 쌓아놓은 쓰레기는 물론, 저희가 봉투에 담아 놓은 쓰레기마저 들고 가셨지요. 저희는 당연히 다시 가져오려고 생각했는데 너무 고마웠습니다.
아무런 돈도 받지 않는데 무슨 돈으로 쓰레기봉투를 사는지 참으로 궁금했습니다. 아마 고흥군에서 지원을 해주는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게 열심히 쓰레기를 줍고 치우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연도교 다리가 놓이더라도 그 푸근한 마음은 계속 지니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리가 놓인 일부 섬 주민들은 관광객과 낚시꾼이 버린 쓰레기와 나쁜 손버릇 때문에 수천 년 동안 열어놓았던 대문에 자물쇠를 채우는 모습을 보였으니까요.
카센터 아저씨, 그리고 타이어가게 총각 그리고 수 많은 아주머니들
아주머니들의 노고 덕분에 깨끗한 바다에서 물놀이를 마친 아이들이 계곡에 가자고 성화를 부렸습니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길이 좋지 않은 소익금해수욕장에 가면서 난 것인지 동료의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 있었습니다. 우리는 스페어 타이어를 갈아 끼우고 고흥군청을 지나 카센터를 찾았습니다.
트렁크의 짐을 모두 내리고 타이어를 교체해야 한다고 하자 카센터 사장님은 '갈아드릴 수는 있는데 앞에 타이어전문점이 있으니 그곳에 가면 싸게 갈 수 있다'고 하더군요. 우리는 그곳 가게에 짐을 내려놓고 앞에 있는 타이어 가게로 향했습니다.
타이어를 교체하는 총각 기술자의 친절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타이어의 편마모의 원인을 지적해주고, 차량점검의 유의사항을 빠짐없이 일러주었습니다. 그 가게 사장님은 가까운 계곡을 묻자 종이에 그림을 그리면서 세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가게를 나서는 저희에게 가게 입구까지 따라 나와서 환한 미소로 손을 흔들어 주었습니다. 카센터 사장님도 잠시 동안 머물다 가는 저희를 웃음으로 배웅해 주셨지요.
땡볕에 낚시를 해서인지 머리가 아팠습니다. 약국을 찾아가자 약사님은 증상에 대해 묻고 조심해야 할 사항을 친절하게 일러주더군요. 또 염색약을 찾는 할머니께도 '이문이 많이 남는 비싼 약 대신 싼 약을 권하면서 효과는 별반 다르지 않다'고 설명하는 그 마음에 진심이 담겨 있어 보였습니다.
팔영산 도립공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야영장을 찾는 저희에게 어떤 세 분이 친절하게 길을 일러주었습니다. 할머니께 할인점을 물어도, 아이들에게 약국을 물어도 모두 웃으며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동료는 '너무 친절해서 묻기가 겁이 난다'고 너스레를 떱니다.
아직 휴가 떠나지 않은 분들께 고흥을 추천합니다
팔영산 휴양림에 텐트를 치고 저녁밥을 해 먹은 후에 우리는 매점 아저씨와 많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는 지역감정에 대해, 특히 정치에 대해 마음을 열고 진솔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선생님인 따님이 방학을 맞아 아버지를 돕기 위해 와 있다는데 자식농사를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저씨의 푸근한 마음 씀씀이를 가슴에 채워 넣었습니다.
제가 전남 고흥 사람들을 '아름답다'고 하는 것은 단지 친절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항상 웃으며 응대해 주었고, 그 웃음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제 주변에는 아직도 호남 지역으로 휴가 가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저는 그 분들께 여름 휴가지로 전남 고흥을 추천합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경치와 함께 아름다운 고흥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의 부족한 글로 어찌 제가 본 고흥의 경치를 그릴 수 있겠습니까? 언제 여유가 나면 저는 다시 고흥을 찾아서 찬찬히 그 따스한 인정과 눈부신 풍광을 느끼렵니다. 고흥에서 만난 아름다운 분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드리며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