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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머니 고향은 전라도입니다. 광양 바닷가에서 나고 자라신 어머니는 지리산 아래 하동으로 시집오셨습니다. 바다에서 나는 것을 많이 드셨던 어머니는 지리산으로 오시면서 먹는 음식부터 바꿔야 했습니다. 입는 것과 자는 것은 비슷하겠지만 먹는 것을 바꾸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따라 하동 5일장에 구경을 간 적이 있습니다. 산골에서 나고 자라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아들에게, 어머니는 생선을 파는 곳으로 데려가서는 하나씩 설명해 주셨습니다. 처음 보는 것들이 신기하면서도 길을 잃을까봐 두렵기도 했던 저는 어머니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냥 어머니 손만 꼭 잡으며 따라다닐 뿐이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곳에서 생선을 사지 않았습니다. 시장 아줌마들은 물 좋다며 사라고 하지만 어머니는 그냥 구경만 할 뿐이었습니다. 어린 저는 어머니의 그런 모습을 보면서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철이 없었던 것이지요.
조금 자란 뒤에도 어머니는 저를 시장에 데려갔습니다. 산골에만 사는 아들에게 세상 구경을 시켜주려는 것이었나 봅니다.
생선을 파는 장터에 가게 되면 '저걸 사서 어떻게 들고 집에 가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비린내가 나기도 하고, 바닷물이 버스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는 장바구니를 들고 당당하게 집으로 오셨습니다.
그런 아들이 자라 군대에 다녀왔습니다. 다시 몇 년이 흐른 뒤 저는 일하는 데 필요해서 중고차를 하나 샀습니다. 그 차를 타고 시장에 가는 날, 어머니는 제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날만큼 들떠 있었습니다.
시장에 가는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두고선 함께 장에 가자고 하셨습니다. 차에 탈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인데, 어떻게 다 타라는 것인지…. 비좁지만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모두 태우고 갔습니다. 이제는 올 때가 문제입니다.
'한 보따리씩 짐이 있을 텐데, 어떻게 할까?'
동네 어른들은 참으로 눈치도 빠릅니다. 다들 좁을 거라는 눈치를 채고는 버스로 가신다고 합니다. 많이 아쉬워하시는 어머니와 달리 저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머니의 무거운 짐을 차에 싣고 집으로 오는 길에 백일홍(배롱나무)이 활짝 피었습니다. 그리고는 한마디 불쑥 내던집니다.
"배롱나무 꽃이 다 질 때꺼정 처갓지베 안 가는기다."
"왜? 엄마, 왜 안 가는 건데?"
"묵을끼 업써 그라제."
어머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되지 않는 아들은 자꾸만 물었습니다. 배롱나무 꽃은 봄에 수확한 보리가 떨어질 때쯤 핍니다. 힘들게 농사를 지어도 늘 먹을 게 모자랐던 시절에는 여름을 나기가 힘들었습니다. 가을이 되어 나락을 베어야 그나마 배를 채우기가 쉬웠을 시절에 사위인들 처갓집에 가고 싶을까요?
그래도 염치없이 처갓집에 가는 사위가 있었을 것입니다. 나물로 겨우 끼니를 때우는 처갓집에서는 백년손님인 사위가 왔다고 대접해야 하는데, 뭐 제대로 된 음식이 있었을까요?
석 달 하고도 열흘 동안 핀다는 백일홍을 보며 어머니는 꽃보다 음식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배고픔을 모르는 아들은 연분홍 꽃이 좋아 사진 찍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봄에 태어났습니다. 햇살 따뜻한 봄에 태어나서 어머니께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백일홍이 필 때면 어머니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들을 낳고 편히 누워 몸조리해도 모자랄 텐데, 아들에게 먹일 젖이 안 나온다며 이웃집에 모를 심으러 가셨습니다. 모를 심는 집에 가야 밥을 먹고 아들에게 젖을 줄 수 있으니까요.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는 한세상인데, 저 때문에 어머니께서 너무 많이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다르게 생각하면 그렇게 고생해서 키워주셨으니 제대로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토록 드시고 싶던 생선을 드시지 않고, 짠 게장만 드시며 바다내음을 맡으셨던 어머니께 보답하는 길은 저도 어머니처럼 사는 길일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백일홍의 꽃말이 '멀리 떠나간 친구 생각'이라고 합니다. 제게는 가장 좋은 친구이자 스승이었던 어머니를 생각하며 글을 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