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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정부는 한미FTA 협상 개시를 위해 주무부처들이 난색을 표한 '4대 선결조건' 수용을 밀어붙이고 그 시기도 2005년 10월로 못박은 것으로 드러났다.
ⓒ 오마이뉴스 김연기
"4대 선결조건의 해결이 없는 경우 한미FTA 추진 공식화는 어려울 전망…. 따라서 4대 선결조건의 해결에 최대한 노력하되 이 경우 미측도 한미FTA를 확실하게 공식화하도록 외교적 협의 강화." (2005년 9월 12일 열린 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 자료 중)

정부가 한미FTA(자유무역협정)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으로 미국측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을 들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이를 추진하려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4대 선결조건과 관련 있는 부처들이 "이해관계 집단의 반발로 단기간 내 현안 해결은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는데도 정부는 "(2005년) 10월까지 해결 추진"을 밀어붙였다.

이 같은 사실은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10일 공개한 5차 대외경제위원회 회의자료를 통해 확인됐다. 이는 그동안 "4대 선결조건은 없었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온 정부측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대경위는 관계부처 장관들이 참석해 대외경제전략을 논의하는 회의로 대통령이나 경제부총리가 직접 주재한다.

관련 부처 줄줄이 '난색' 표명에도 정부 "해결하라"

그동안 미국측은 한미FTA 추진을 위해 한국이 4대 선결조건을 수용할 것을 끈질기게 요구했다. 결국 정부는 이를 위해 지난해 9월 12일에 열린 5차 대경위 회의에서 4대 선결조건 수용여부를 논의했다. 4대 선결조건은 스크린쿼터 축소, 쇠고기 수입 재개,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 자동차 배기가스 허용 기준 완화 등으로, 그동안 정부가 조속한 협상 개시를 위해 미국에 일방적으로 양보했다는 비판을 받아왔다.

5차 대경위 회의자료를 보면 정부가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확연하게 드러난다. 특히 관련 부처들이 "단기간 내 4대 현안 해결은 어렵다"는 입장을 표시했는데도, 자료를 작성한 통상교섭본부는 "선결조건 해결 추진"을 밀어붙였다. 결국 우리 정부의 이 같은 태도를 근거로 미국으로부터 협상개시 약속을 받아낸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대목이다.

또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지난해 11월 작성된 대경위 내부 문건을 보면 아예 각 부처가 구체적으로 언제까지 4대 선결조건 해결을 추진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이 문건에 따르면 "(우리 정부는) 미측이 제기하는 주요현안 해결은 어떤 형태로든 매듭을 지어야 할 사안이므로 주무부처들이 10월까지 해결 추진"이라고 돼 있다.

정부의 "10월까지 해결추진" 결정 이후 관련 부처들도 잇따라 '행동'에 나섰다. 지난해 10월 정부는 약값 재평가 제도개정 중단을 선언했고 같은 해 11월에는 배출가스 강화 기준 수입차 적용 유예안을 발표했다. 그리고 올해 1월에는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해제했으며 또 같은 달 스크린쿼터를 146일에서 73일로 축소했다.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은 "4대 선결조건은 한미간 핵심 통상현안으로 이는 곧 사실상 한미FTA의 핵심적인 쟁점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며 "그러나 정부는 주요 쟁점사안을 오히려 선결조건으로 미국의 요구를 사전에 수용하는 절차를 밟아왔다"고 말했다.

정부 "미국에 양보한 것 아니다"... 대경위 회의자료와 배치

5차 대경위 회의 자료에 나타났듯이 정부는 한미FTA 협상개시를 위해 미측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정부는 그동안 "4대 선결조건은 통상 현안일 뿐 한미FTA 협상과 연계해 미국에 양보한 것이 아니다"라고 강변해 왔다. 즉 대경위 회의자료 내용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입장을 견지해온 셈이다.

논란이 커지자 심지어 노무현 대통령까지 나서 지난달 21일 "4대 선결요건 논란과 관련해 더 이상 진위논란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실제로 협상 정지 차원에서 통상현안을 해결하고자 한 것인 만큼 대통령의 결정으로 4대 선결조건이라는 표현을 수용한다"고 한 걸음 물러서기도 했다.

정부는 의약품 문제를 예로 들며 "이는 여전히 통상현안일 뿐 선결조건으로 수용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정부는 그 근거로 보건복지부가 지난 7월 미국측 우려에도 불구하고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입법예고한 사실을 들고 있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도 "약제비 적정화 방안에서 알 수 있듯이 미국측이 4대 통상현안 해결을 요구해왔지만 우리는 스크린쿼터 외에 들어준 것이 없다"고 여러 공식석상에서 밝혀왔다.

문제는 현 시점에서 미국측 요구를 수용했느냐는 여부를 떠나 협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우리 정부가 이 문제 해결을 위해 전력을 다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미 미국측 요구 수용을 기정사실화 하고 협상을 이끌어냈다는 것과 맥을 같이 한다. 게다가 관련부처의 이견에 대한 충분한 의견수렴 없이 '위'로부터 해결을 강행하려 했다.

위 자료에서 정부는 4대 선결조건과 관련 미국측 요구사항과 우리 정부 주무부처의 입장을 대비해 가며 해결방안을 찾았다. 미측은 스크린쿼터 축소와 쇠고기 수입재개는 '완전해결', 자동차 배출가스 허용기준과 의약품 관련 투명성 제고는 '상당한 진전'을 우리측에 요구했다. 그러나 주무부처는 대부분 '불가능' 또는 '추가 검토 필요' 등 난색을 표명했다.

그럼에도 회의자료를 작성한 통상교섭본부는 "주무부처의 적극적 조치 없이는 4대 선결조건의 해결 또는 진전이 어려울 전망"이라며 "10월 중순까지 4대 선결조건의 최대한 해결 또는 진전 필요"하는 입장을 밝혔다.

미국 집요한 요구에 정부 '수용의지' 표명... 협상개시

미국은 한미FTA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으로 일관되게 4대 선결조건 해결을 요구했다. 대경위의 내부 문건에 따르면 "2005년 6월 APEC 통상장관회담에서 미국의 포츠만 USTR(미국통상대표부) 대표는 한미FTA의 체결 필요성에 동의하면서도 주요 통상현안의 사전 해결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견지"한 것으로 적고 있다. 이에 따라 "통상교섭본부장이 7월과 9월 두 차례 방미해 미 행정부 및 주요 인사를 만난" 것으로 돼 있다.

또 "스크린쿼터 등 통상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해결을 모색함으로써 한미FTA를 성공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우리 정부의 의지를 표명하고 협상출범에 필요한 미측의 지지를 확보"한다고 적고 있다. 미측은 이 같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김현종 본부장으로부터 전달받고 이를 근거로 2005년 11월 부시 미 대통령에게 한미FTA 추진의 필요성을 알리는 공식서한을 보내게 됐다.

결국 우리 정부가 '4대 선결조건 수용의지'를 적극 표명함으로써 한미FTA 추진에 대한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여 협상이 공식적으로 개시된 셈이다.

심상정 의원은 "4대 선결조건의 수용이 졸속 추진의 대표적인 사례임에도 이에 대한 정부측 책임이 젼혀 없이 한미FTA 협상이 강행되고 있다"며 "4대 선결조건 수용에 대한 진상규명 및 책임자 처벌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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