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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판에는 다소 멀게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깝다.
안내판에는 다소 멀게 보이지만 생각보다 가깝다. ⓒ 양중모
모 기관에서 주관하고 있는 ‘중국 비즈니스 전문가 과정’에 참여하기 위하여 중국 상하이에 온지 이제 두 달이 조금 넘어가고 있다. 두 달 동안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강의를 들었다. 분야는 다양했지만 강의를 듣고 나서 드는 마음은 늘 한결 같았다. 내가 살고 있는 '한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열정이 끓어오르곤 했다.

세계 각지의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몰려드는 상황을 보다 자세히 느끼게 되는 강의를 들을 때마다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우리 나라가 중국보다 경제적으로 앞서 있지만 그런 상황이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싶은 위기감이 많이 들었다. 특히 중국에 와서 미래를 대비하기 보다 현재 상황만 보고 거만한 태도를 보이는 한국인들이 많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그 위기감은 더해졌다.

나 역시 그렇게 변해 가는 듯 한 느낌을 받으면서 자극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바로 루쉰 공원이다. 물론 중국의 저명한 문학가 루쉰을 보고 자극을 느끼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루쉰 공원의 예전 이름은 홍커우 공원이다. 그렇다. 바로 윤봉길 의사가 우리나라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폭탄을 투척했던 바로 그 곳이다. 미래를 제대로 보지 못했을 때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가를 분명히 느끼게 해주는 장소다. 그렇기에 내게 무언가 커다란 자극을 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무척 더운 날씨 때문에 갈까 말까 조금 망설였다. 게다가 상하이는 서울처럼 전철이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르는 곳을 외국인이 혼자 찾아가려면 다소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기에 더욱더 망설여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도상으로 루쉰 공원을 찾아보니 홍커우 축구장역이 그다지 멀지 않게 보였다.

그러나 이게 웬 일인가? 막상 내려서 주변 약도가 그려진 안내판을 보니 나도 모르게 ‘맙소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지도상에서는 바로 옆에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안내판 약도에는 꽤나 멀게 느껴지게 나와 있는 것이었다. 루쉰 공원까지 가는 버스 번호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아직 젊은데 걸어가 보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길을 묻기 시작했다.

정작 문제는 루쉰 공원에 도착한 후에 생겼다. 공원이 생각보다 넓어서 막상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가려고 하니 막막했다. 아무리 안내판을 보아도 윤봉길이라는 한자가 없어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윤봉길 의사 추모 비석.
윤봉길 의사 추모 비석. ⓒ 양중모

윤봉길 의사 기념관을 찾아 헤매다 돌 하나가 세워져 있는 매표소를 발견했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윤봉길 의사 관련 전시관이 맞았다. 매표소 위를 보니 매원 윤봉길이라고 씌어져 있었다.

안내판에 아래 입장료가 15원이라고 표기되어 있는 것을 보고 입장권을 사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다. 밖에서 보기에 오로지 돌 하나가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 곳에 오기로 한 건 윤봉길 의사의 숨결을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니 돌 하나를 보고 가도 15원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일텐데 그저 돌 하나로 기억된다는 사실을 본다면 더욱더 조국을 위해 애써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것만 같았다.

그랬기에 15원을 내고 들어가면서 윤봉길 의사를 기념하는 것이 돌 하나 뿐이라면 무척이나 서럽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작은 집 같은 것이 하나 눈에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윤봉길 의사 사적을 전시해놓은 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서두에 말한 한 문장을 보고 가슴이 탁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이다.”

글을 보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글을 보고 나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 양중모

자신의 목숨을 바쳐 억울한 나라의 사정을 알리고자 하는 윤봉길 의사의 마음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만약 지금까지 우리가 독립하지 못했다면 윤 의사가 테러리스트로 몰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더욱더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라의 힘이 약하면 아무리 억울하더라도 그 억울함을 제대로 풀기 어려운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 곳에 찾고 나서 가슴이 뭉클해진 것은 나뿐만이 아닌 듯 했다. 전시관 한 편에 마련된 모금함에는 한국 돈이 가득했다. 그리고 방명록에는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같은 비장한 각오가 담긴 말들도 종종 보였다.

가슴이 뭉클하긴 했지만 모금함에 돈을 넣으려니 망설여지기는 했다. 모금함에 돈을 넣어도 결국 중국인들에게 좋은 일 해주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전시관이 유지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은 생각에 적은 돈이나마 넣어두었다.

모금함에는 한국 돈이 많았다.
모금함에는 한국 돈이 많았다. ⓒ 양중모
국내에서 이런 전시관을 봤더라면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해외에서 윤봉길 의사의 전시관을 만난 느낌은 사뭇 달랐다. 총칼로 나라를 빼앗는 시대는 아니지만 경제 전쟁에서 패배하면 나라를 잃은 설움처럼 약한 나라의 힘을 한탄하게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했고, 올림픽과 월드컵을 유치하는 등 나름대로 국제 사회에서 위상을 높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부족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니 부족할뿐더러 위험하다는 생각까지 한다.

잠자는 사자 중국이 깨어났다. 아니 깨어났을 뿐 아니라 머지 않아 포효를 할 것이다. 그 때쯤이면 우리가 버텨내기란 무척이나 버거울 것이다. 그러기 전에 그 사자의 등을 타고 달리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지금도 잘 하고 있는 기업이나 개인들이 있지만 더 많은 이들이 중국에 기회를 뺏기는 것이 아니라 확실히 기회를 잡아야만 한다.

물론 그런 일은 정부나 기업에서 주도면밀하게 해나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우리 선조들이 목숨을 바쳐 가며 지키려고 했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며 열심히 살고 싶다. 각자가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때 그 힘이 모여 한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에는 이런 말도 씌어 있다.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사는가? 이상을 위하여 산다."

중국 상하이에서 내가 가진 이상은 내 조국의 온 국민이 힘을 합쳐 감히 무시할 수 없는 나라로 성장시키자는 것이다. 비록 윤봉길 의사처럼 목숨을 바칠 수는 없더라도 나라와 겨레에 바치는 뜨거운 사랑을 하고 싶다.

돌아오는 길 역시 덥기는 했지만 방황하던 내 삶의 목표를 확실히 할 수 있었기에 무척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행복한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던 조상들이 있었음을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루쉰 공원 입장료는 없고, 윤봉길 의사 생애 사적 전시관만 15원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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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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