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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마트에서
대형마트에서 ⓒ 나관호
어머니 가출 사건 이후 기회가 있는 데로 내가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을 한다. 대형마트에서의 피서, 예식장에서의 몸보신, 여동생 집에서의 휴가, 미장원에서의 젊음 만들기, 그리고 강아지와 함께 하는 저녁 산책도 내 몫이다. 특히 주말 예식장 몸보신은 내 스케줄에 따라 어머니에게도 예약되어 있는 셈이다.

요즘 같이 무더운 날은 어머니의 외출도 잦아진다. 특히 여름나기 외출은 밤과 낮이 없다. 어머니의 여름나기는 늦은 밤, 무더운 한낮 대형마트에서 시작된다. 쇼핑을 빙자한 피서? 피서를 빙자한 쇼핑? 정확히 어느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 나의 지출이 많아졌다는 사실만큼은 정확하다.

오늘도 어머니를 모시고 대형마트에 다녀왔다. “너무 덥다”하시는 어머니의 간접 시위에 내가 또 손을 들었다. 대형마트에 가시면 어머니의 자리는 대부분 에어컨 바람이 위에서 직통으로 내리는 곳, 신선코너, 빵가게 앞이다.

자주 다니는 빵 가게는 어머니의 시식 코너이기도 하다. 시식이라기보다 거의 빵 한 개를 다 준다. 오늘은 그 여직원이 없었다. 어머니는 아쉬운 표정이다. 왜냐하면 우리 어머니 같은 분들은 반복된 새로운 기억이 최근 현실 감각으로 기억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치 아이들에게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물으면 아이들은 아빠라고 대답한다. 마지막 말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좋아”라는 말을 듣고 싶으면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질문 순서를 바꿔야 한다. 치매를 가진 노인들에게 기억정보는 최근 것만 남는다. 그래서 반복이 중요하다. 치매는 기억을 어린아이로 만들기 때문이다.

얼음 물로 발 씻겨 드리면 좋아하시는 어머니

강아지 간식을 챙기시는 어머니.
강아지 간식을 챙기시는 어머니. ⓒ 나관호
어머니가 더위에 유난히 약하신 이유가 있다. 어머니는 젊은 날 아기를 갖지 못했다. 말로만 듣던 ‘상상임신’ 경험도 있으시다. 그 정도로 자식을 갖는 것은 당시 어머니 삶의 모든 것이었다. 거품이 가득 찬 배를 몇 개월 동안 애지중지 하다가 임신이 아닌 것이 밝혀졌을 때 어머니의 절망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 절망은 아버지에게 씨를 받아 아기를 갖게 하자는 어른들의 엄명이 어머니의 귀에 들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럴 수 없다고 하셨다.(이것은 어머니가 평생, 아버지 돌아가신 후에도 고맙다고 하신 부분이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어머니는 보약 세례를 받으셨다.

몸보신 한약은 물론 흑염소, 홍삼, 자라, 지네, 붕어 등 몸에 좋다는 것은 거의 다 드셨다. 그 후 자식을 낳았지만 몸에 열이 많아지셨다. 그렇지만 어렵게 자식을 낳았어도 몇 개 월 만에 아이를 잃었다. 그런 자식이 넷이다. 나는 원래 다섯째야 하는데 하늘은 나를 장남으로 택했다. 이런 어머니만의 가슴앓이는 더더욱 몸을 불덩이로 만들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우리 집에서는 에어컨 바람이 어머니 건강에 좋지 못하다고 해서 선풍기를 사용한다. 어머니 몸의 열을 내리기 위해 에어컨에 노출되어 체온이 급격히 하락할 수 있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당신 스스로 “너무 춥다”라는 표현을 놓치면 그것은 적신호다. 지우개를 가지신 분들은 몸으로부터 오는 감각신호에 무딘 경우가 많다.

어느 날은 더위에 지쳐 눈 주위가 너구리(죄송한 표현) 눈처럼 빨개지셨다. 그래서 아이스 팩을 등에 놓고 수건으로 묶어 드렸다. 시원하다고 하신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하고 식구 모두 아이스 팩의 존재를 잊어버리고 있었다.

거의 한 시간 후에야 어머니 등에 있는 아이스 팩을 생각했다. 깜짝 놀라 어머니 등에 손을 대보니 북극이다. 그렇게 몸이 차가워졌는데도 말씀을 안 하신 것이다. 아니 표현을 못하셨다는 말이 옳다. 지우개가 그런 것조차도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치매 노인 가족들의 주의사항)

그런데 치매를 앓고 있는 어르신들에게 감각의 속도가 빠른 경우가 있다. 그것은 ‘아픈 감각’이다. 살짝 부딪치거나, 손이 붓거나, 입속이 헐거나, 누군가 살짝 건드려도 어린아이처럼 아프다는 표현이 과해진다. 건드려진 것이 당신을 때렸다거나 무시한 태도로 이해하실 수 있다.(치매 노인 가족들의 주의사항)

어머니는 이제 수건에 싸진 아이스 팩을 좋아하신다. 등에 올려 드리면 “시원하네”하신다. 아이스 팩을 잡고 있는 내가 힘들까봐 더 걱정하신다. 어머니의 마음은 못 말린다. 그래서 잡고 있지 못한다. 수건에 싼 다음 등에 고정시켜 묶어 드린다. 그리고 10분마다 점검한다.

그리고 발을 씻겨 드릴 때 얼음을 넣은 차가운 물로 씻겨 드리면 좋아하신다. 처음에는 발을 씻겨드리면 부끄럽고 미안해 하셨다. 그런데 이제는 일상이 되었다. 좋아만 하신다. 발을 차갑게 하는 것은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다.

자식 위해 열나고 답답한 마음을 숨긴 어머니

어머니의 또 다른 여름나기는 모시옷이다. 모시 여름 잠옷은 시원함을 준다. 다른 옷을 입혀 드릴 때는 더 덥다고 하신다. 그리고 나서 어머니에게 아이들이 먹는 얼음이 씹히는 아이스크림을 드리면 좋아하신다. 그래서 우리 집 냉장고에는 얼음과자가 가득하다. 모두 어머니 것이다. 오늘도 얼음과자 20개를 샀다. 덤으로 받은 2개는 어머니와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어머니가 챙겨주신 것이다. 집에서는 내가 먹을 차례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 어머니의 특이한 여름나기는 ‘자식을 걱정해 주는 마음’에서 나온다. 어느 날은 잠을 못 주무신다. 그러면 나도 피곤해진다. 내가 곁에 있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식구들에게서는 평안함을 못 찾으신다. 그래서 언제나 이런 경우는 내 몫이다. 그런데 그날은 내가 몹시 피곤했다. 그래서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어머니가 안 주무시면 제가 못 자요?”

그 말 한마디에 덥다는 말도 안 하시고 잠을 청한다. 가만히 보니 거짓말로 자는 척하며 숨소리를 내신다. 그것은 자식을 위한 희생의 숨소리였다. 미안한 마음에 선풍기 바람을 예약해 놓고 방을 나왔다. 걱정이 되어 어머니 방을 들러보니 뒤척이신다. 문소리가 나자 다시 콧소리까지 내시며 아직도 자는 척하신다. 내 마음이 너무 아파 왔다.

어머니는 자식의 피곤함을 덜어주기 위해 당신의 열나고 답답한 마음을 숨긴 채 뜨거운 몸으로 여름나기를 하신다는 생각에 죄송스러웠다. 그래서 나는 아이스 팩을 가지고 어머니 방에 들어갔다. 침대가 땀으로 적어 있었다.

“어머니, 일어나세요.”
“아들 자야지?”
“아니에요. 저도 잠이 안 오네요. TV보세요.”
“난 괜찮은데.”
“얼음 가져왔어요. 등 대보세요.”
“아유 좋다. 시원하네.”

그날 밤 나와 어머니는 텔레비전과 아이스 팩을 벗삼아 날이 밝을 때까지 함께 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나에게서 피곤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은 하늘도 아는 모양이다.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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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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