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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찬양 구호가 요란한 두만강 건너 농촌마을
김정일 찬양 구호가 요란한 두만강 건너 농촌마을 ⓒ 윤병두
백두산 방문길에 안내를 담당했던 연변처녀가 어릴 적 북한에 갔던 얘기를 해주었다.

요즈음 연변처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연속극이 이곳 연변에도 인기가 대단했다. 연속극 주인공만큼이나 예쁘고 해맑은 25살의 연변처녀 상미가 정겨운 사투리로 북한의 외갓집을 다녀온 이야기로 백두산 가는 길의 지루함을 덜어주었다.

도문이 고향인 상미는 어린시절을 두만강 가에서 국경을 넘나들며 썰매를 타고 놀던 추억도 가지고 있었으며, 지금도 부모님은 그곳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어린 시절 북한 교과서와 만화책을 통해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며 자라왔다. 북한은 지상낙원이고 못사는 남조선 인민을 살리기 위해서는 조국통일을 해야 된다고 늘 그렇게 들어왔다.

상미가 어렸을 때, 어느 날 북한의 회령시에 살고 있는 외삼촌이 상미네 집을 찾아왔다. 남루한 옷차림에 깡마른 얼굴을 하고 온 외삼촌은 보기만 해도 가난이 줄줄 흘려 보였다. 외삼촌은 보름간 집에 머물다 식량과 가재도구 등 한보따리를 싸가지고 북한으로 돌아갔다.

삼촌이 돌아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식량이 떨어져 살기 힘드니 도와달라는 편지가 왔다. 외삼촌의 간절한 부탁에 가슴아파했던 엄마는 아빠랑 함께 식량과 옷가지 등 한차를 마련해서 외갓집을 방문하게 되었다. 상미에게는 북한에 있는 외갓집의 첫 나들이였다.

국경을 잇는 두만강의 작은 다리 하나만 넘으면 어머니의 고향인 북한 땅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통행절차를 마치고 국경을 넘자마자 상미는 깜짝 놀랐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7~8명의 어린이가 몰려와 차를 가로막고 1원만 달라고 손을 내밀었다. 할 수없이 엄마는 사탕봉지를 나눠 주고서야 떠날 수 있었다.

회령에서 한 시간 거리의 농촌에 살고 있는 외갓집은 너무나 초라하고 가난해 보였다. 가재도구는 거의 보이질 않고 방에는 작은 이불하나에 엄마가 사서 보낸 흑백TV 한대가 당랑 남아 있었다.

코 흘리개 5살 외사촌 동생은 우리가 사간 과자를 먹으며 "아버지! 수령님은 왜 이렇게 맛있는 사탕은 못 만드나요?"라고 말했다.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점심때가 되어 식당을 찾았으나 식당은 찾을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길옆 나무그늘에 차를 세우고 가지고온 빵과 음료수로 점심을 때우기로 했다.

상미가 빵을 건네 받아 한입 무는 순간 누군가 빵을 번개처럼 낙아 채어 도망 가버렸다.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니 검정 치마를 입은 중년의 아줌마였다. 엄마는 남은 빵이라도 주고 싶어 소리쳐 불러 보았지만 아줌마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멀리 사라지고 말았다.

이것이 상미가 어릴 적 외갓집 방문길에 체험한 북한의 실상이었다. 외갓집 나들이는 가난과 배고픔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게 해준 소중한 체험이었다. 그리고 외갓집 꼬마 동생이 남긴 그 말이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맴돌고 있어 가슴 아프게 한다고 말했다.

남한 사람들이 잘살고 있다는 사실은 88올림픽 중계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서울의 번화한 거리와 사람들의 활기찬 모습을 보면서 북한의 선전이 모두 거짓말이란 것을 알게 되었고 북한의 가난한 사람을 위해 계속 도와 달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북한을 지원하면 핵무기를 만드는 데나 사용한다면 누가 지원하겠는가라는 질문에 그녀의 생각은 달랐다. 북한에 직접지원이 어렵다면 연변 조선족을 도우면 그것이 북한의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녀는 한민족에 대한 자긍심도 대단했다. 한국이 발전한 것에 대한 긍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한국어를 잘하는 덕분에 지금도 친구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좋은 직장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상미를 포함한 조선족에게는 분명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발견했다. 흰옷을 즐겨 입는 백의민족이기에 조선족이 살고 있는 주택은 흰색으로 도장을 하여 중국의 한족과 차별화하고 있으며 음식을 포함한 생활문화 모두가 우리와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열아홉 순정>이란 드라마 속의 연변처녀가 멋지게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또한 한국에서 고생하는 많은 조선족 교포에게도 따뜻한 성원을 보내줄 것을 거듭 당부하는 상미의 눈빛을 보면서 가슴이 찡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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