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자전거 때문에 제가 살았습니다. 지난 10년간 제게 자전거가 없었다면 아마 자살했을지도 모릅니다. 위암 수술과 두 번의 장수술, 그리고 척추 수술을 받으면서 참 힘들었는데, 그것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것은 우울증이었습니다. 우울증을 이길 수 있었던 것은 자전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울증을 앓는 분들에게 꼭 자전거를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10일 오전 김숙자(66세·일산 주엽동 문촌마을)씨를 일산호수공원에서 만나 '자전거와의 소중하고 특별한 10여 년간의 인연' 이야기를 들었다.
고난을 극복해낸 강인함이랄까. 60대라는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곱고 단단한 모습과 자신있는 한마디 한마디가 무척 강하게 느껴졌다.
"우울증, 자살 충동... 약 먹어도 무기력해지기만"
김숙자씨는 1996년에 위암 수술을 받았다. 이듬해인 1997년과 1998년엔 두번에 걸쳐 장수술을 받았고, 이후 척추 협착증으로 또 한번 수술을 받은 5급 장애인이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보다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 수술로도 치료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허리가 아픈 날이 있지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의욕적인 날들을 보내고 있단다.
월·수요일에는 컴퓨터를 배우고 화·목·금요일에는 수영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3일은 반드시 자전거를 탄다.
재미삼아 동네 주위를 잠깐 타는 수준이 아니다. 일산 호수공원에서 통일동산까지 왕복한다. 시속 20km로 달릴 때 한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 왕복 40km가 넘는 거리다. 의정부까지 왕복할 때도 있는데, 이 때 거리는 60km가 넘는다.
자전거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지방이나 해외에 나갈 때도 있다. 1996년에 처음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으니 올해로 11년째다. 온갖 병으로 고생하는 상태에서 왜 하필 자전거를 선택했는지 물어보았다.
"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습니다. 청량리 정신병원에서 약을 타다먹으며 치료를 해야 할 정도였고 자살 충동도 자주 느꼈습니다. 몇년 동안 약을 먹어도 되풀이될 뿐 전혀 나아지지 않더군요. 무기력해지면서 몸이 자꾸 부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선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갑자기 자전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학생 때 육상을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자전거를 선택하는데 영향을 끼친 듯 싶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밟기 시작한 자전거 페달. 자연 속에서 맘껏 달리면서 답답하던 가슴이 비로소 확 뚫리고 스트레스가 말끔히 해소되었다고 한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지 6개월 만에 우울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정 쪽 병력인 위암이 찾아와 위암수술을 하게 된다.
자전거를 타기 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었을 병들이 차례로 나타났고 4번 대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우울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고. 김숙자씨는 수술 후 회복방법으로 약에 의존하는 대신 자전거를 열심히 탔다. 결과는 효과적이었다.
"이것 보우, 이 근육이면 전국투어 거뜬하겠죠?"
그런 자신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지금도 누가 아프다고 하면 자전거를 적극 권한다고 한다.
불과 몇달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 없이는 꼼짝 못하던 친구가 자신의 말을 믿고 자전거를 시작, 지금은 날아다닐 정도로 좋아졌다는 전화를 받은 날 제일 행복했다고 한다. 주변 사람 중에도 자신의 말을 믿고 자전거를 타면서 효과를 본 사람들이 많다며 "건강을 위해선 자전거만한 것이 없다"며 끝없는 자전거 칭찬을 펼쳤다.
한 때 자전거타기 운동을 주도하였던 김씨는 그간 여러 자전거 대회에서 1등을 하거나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못해본 것이 있으니, 바로 자전거 전국 일주다.
"10년 동안 자전거를 타면서 전국 방방곡곡을 달렸습니다. 그러나 부분 부분만 달렸지 전국일주를 하진 못했습니다. 가능한 하루빨리 전국투어에 도전해보고 싶습니다."
놀라워하는 기자에게 김씨는 "며칠 전에 건강지수를 체크했는데 54세라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자신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 "이것 보우, 이게 모두 자전거를 타면서 얻은 두둑한 덤 아니겠어요, 이 근육이라면 전국 투어를 거뜬하게 할 수 있겠지요?"라고 환하게 웃으며 탄탄한 다리 근육을 서슴없이 자랑한다.
건강 때문에 시작한 자전거 타기. 그에게 자전거 타기는 자연을 사랑하는 또 다른 방법이기도 하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생태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갖고 관련 행사에 참가해왔다.
"점점 갈수록 환경과 생태계의 중요성이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2030년쯤 되면 대부분의 에너지가 고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전거는 어떤 에너지도 필요없는 가장 효율적이고 현명한 교통수단입니다. 공해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자연과 인간에게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자전거가 레저 아닌 생활 되어야 진정 자전거선진국"
김숙자씨는 최근 중앙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자전거 전용도로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그는 "새로 자전거 도로를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운을 뗀 뒤, 갓길을 활용할 것을 주문했다.
"자전거를 안전하게 탈 수 있도록 갓길을 조금만 더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만 돼도 충분히 타고 다닐 수 있습니다. 물론 자전거 타는 사람들은 안전장구 등을 갖추는 등 좀 더 세심하고 적극적인 주의가 필요하겠죠.
버스중앙차로 도로에서는 자전거 타는 것이 많이 편해졌지만 일반도로에서는 아직 많이 불편하고 위험합니다. 버스기사들이 조금만 더 배려하고 신경써준다면 적은 비용으로 충분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는 자전거가 레저용 도구에서 벗어나 생활 수단이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비쳤다. 이어 하루빨리 우리나라가 자전거 선진국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그가 말하는 자전거 선진국이란 미국·일본·유럽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베트남과 중국의 자전거 문화는 우리보다 훨씬 선진국입니다. 그들에게 자전거는 생활의 한 부분, 우리처럼 일부러 시간을 내야하는 레저가 아니기 때문이죠. 우리도 하루빨리 자전거가 생활의 한 부분인, 자전거 선진국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현재 김숙자씨는 일산에서 자전거타기 모임을 이끌고 있다. 회원은 40여명. 이들 중에는 자전거로 병을 극복하고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도 있고, 아픈 몸으로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대부분 고령자들이다. 김숙자씨는 자신보다 더 큰 병을 이긴 사람도 있다고 귀띔했다.
시종일관 옆에서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를 지켜보던 박병곤(86세)씨와 천기태(74세)씨도 자전거를 통하여 건강을 지켜가고 있다.
박병곤씨는 자전거를 타면서 당뇨를 물리쳤고, 천기태씨는 신경통과 관절염을 이겨냈다. 게다가 박병곤씨는 얼마 전 한강에 빠진 사람 두 명을 구해낼 만큼 체력이 강하다.
인터뷰가 막바지에 이를 즈음 두 분은 어서 이야기를 끝내고 통일동산까지 달리고 싶다고 기자를 재촉했다. 그러면서 "자전거만한 것이 없다"고 활짝 웃었다. 김숙자씨와 이들에게 자전거는 어떤 보약이나 영양제보다 훌륭한 치료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