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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4일. 애인 같은 아들 현익이가 입대를 하였다. 우리 현익이는 4대독자여서 공익근무나 방위산업체에 취업을 해 군생활을 안 해도 됐지만, 어려서부터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 한다’는 말을 한결같이 하더니 본인이 현역으로 신청을 하였다.
입대 날이 정해지자 친구들 만나는 시간까지 줄여가면서 부쩍 더 집안일을 도와주었고, 입대하기 며칠 전부터는 자꾸 혼자 훈련소에 가겠다고 했다. 아마도 내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기엔 맘이 아팠던 모양이다. 입대 전날 본인이 집에서 머리를 깎고 나름대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훈련소 들어가던 날 남들도 다하는데 아무 걱정 말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는 말 한마디 건네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총총히 걸어가던 모습…. 그 때는 야속하다고 생각했는데 첫 번째 편지에 뒤를 돌아보면 울고 있는 엄마모습에 맘이 약해질까봐 일부러 꾹 참고 걸어갔다고 적혀 있었다.
편지를 보낼 때마다 열심히 해서 ‘상점’ 많이 받아 전화도 하고 꼭 사단장표창 받아서 퇴소식 날 특박 받아 엄마를 보겠다고 하였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더 힘든 건 아닐까 싶어 걱정이 되면서도 내심 꼭 그래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8월6일 오전 10시 7분. 마침 그날은 오랜만에 친정집에서 잤는데 휴대폰에 033지역번호가 떴다. 나는 너무도 상기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고(210명 중 두 명이 ‘상점’을 잘 받아 전화한다고) 그렇게 기다리던 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날도 여전히 현익이는 “열심히 해서 꼭 엄마 볼 수 있도록 할께”라는 말을 해 주었고, 마침 계셨던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통화를 할 수 있었다. 아빠도 내색은 안하셨지만 내심 손자를 기특해 하시는 것 같았다.
사실 지난주 초부터 은근히 부대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렸지만 화요일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아마도 우리 현익이보다 더 열심히 잘한 아이가 있나 보다 생각하고 포기했었다. 그런데 8월9일 오전 10시경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혹시나 하며 받았는데 훈련병 67번 장현익이 우수한 성적으로 표창을 받게 되었다고 초청장을 보내드리니 올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정말 우리 현익이가 자랑스럽고 고마웠다.
11일, 아들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아침부터 설레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들을 축하해주기 위해 작은 꽃다발을 준비하고, 특박을 나오지 못하는 다른 동료들을 위해 초코파이 4박스를 차에 실고 신병교육대대로 향하였다. 3시쯤 도착을 했다.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해서 준비한 초코파이는 반입이 안 된다고 하여 그냥 차에 두었고, 입구에서부터 너무나 친절한 군인들 때문에 기분이 한층 더 좋았다.
들어가는 입구 초소에서 아드님이 누구냐고 묻는데 사실 약간은 자랑스런 아들 덕에 어깨가 으쓱하였다. 4시부터 퇴소식이었다. 퇴소식 전 부모들을 위해 마련한 각 생활관 별로 준비된 사진에서 먼저 아들을 만날 수 있었고 틀어주는 비디오에서 현익이의 훈련모습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드디어 식장으로 가보니 초대받은 부모들의 자리는 바로 사단장 자리 뒤편에 마련되어 있어 한눈에 일사불란하게, 절도 있게 움직이는 씩씩한 210명의 군인을 볼 수 있었다. 앉자마자 아들의 모습을 찾느라 분주했는데, 쉽게 아들을 찾을 수 있게끔 미리 대열의 위치를 알려준 배려가 너무 고마웠다. 그 기쁜 자리에 앉자마자 나는 눈물이 울컥 나오고 말았다.
퇴소식이 절도 있게 진행되었고 드디어 표창 대상자들 앞으로 나오라는 구령이 끝나기 무섭게, 너무나 열을 잘 맞춰 뛰어 나오는 자랑스런 아들…. 눈이라도 빨리 맞추고 싶었는데…. 아들들은 모두는 정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군인의 모습인가보다. 순간 운동장에 서있는 200여명의 군인들의 엄마들에게 미안한 맘이 들었다. 그리고 감사한 마음과 함께….
퇴소식이 끝나고 호명과 함께 드디어 아들의 손을 잡을 수 있었고 몇 가지 주의사항을 듣고는 우리는 부대를 나왔다. 뭐가 먹고 싶은지 뭘 하고 싶은지 계속 물었지만 아들은 내 손을 꼭 잡고 그저 아무거나 괜찮다고 한다. 부대에서 잘 먹기 때문에 특별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고 하면서…. 그저 연신 우리 엄마 만나서 너무 좋다는 말만 한다.
난 갈 때 아들의 전화기를 충전을 해서 가져갔다. 아마 꽃보다도 전화기가 현익이에게는 가장 좋은 선물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현익이는 동료들에게 자랑을 했다 ‘우리 엄마 센스 끝내주지?’
문자를 보내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환하게 웃으며 전화 받는 모습에서 예전의 현익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군인은 흐트러진 모습도 안 되고 웃어도 안 된다고 하면서 조심하는 눈치다.
그 다음날에는 계곡이 있는 음식점에 모여 부모님들과 4명의 동료들과 편안한 시간을 가졌다. 현익이는 가장 하고 싶었던 것이 음악을 듣는 거라고 했는데 마침 차에는 입대 전에 즐겨 듣던 CD가 있어 차문을 다 열어놓고 크게 음악을 틀었다. 마냥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다.
문뜩 벗어놓은 구두와 현익이 러닝 뒷면의 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너희들 번호인생이구나 했더니 모두들 웃는다. 67번 훈련병 장현익…. 나머지 군생활도 지금처럼 잘 해주렴.
헤어질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자기네들끼리 모여 있던 신병들이 부모님들과 기념사진도 찍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엄마들의 표정도 조금씩 어두워지는 듯했다.
서로 자대가 어딘지 주특기가 뭔지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월요일이면 다 헤어질 테니 주소와 이메일을 적어놓자며 모두들 분주하다. ‘엄마 내 싸이월드 미니홈피 관리해줘서 고마워’하면서 12중대 싸이월드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저녁 8시까지 귀대하면 되었지만 착한 아들은 어두우면 엄마 집에 가는데 힘들다며 6시에 저녁 먹고 일찍 들어가겠다고 했다. 부대 앞에 도착하자 5명의 자랑스런 아들들은 부모님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절도 있게 인사를 하고는 들어갔다. 거기서 또 눈물이 났다. 잘할 거라고 믿고 있지만 더운 날씨에 훈련 받을 것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부산에서 오셨다는 현승이 엄마와 서로를 위로하면서, 또 감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서울역에 도착했다. 현승이 엄마를 배웅하고는 사무실에 들려 아들의 미니홈피에 몇 자 남기고 집으로 갔다.
오늘 오후 아들의 전화를 받았다. 걱정 말라는 중대장님의 전화와 함께…. 현익아 이제 엄마 걱정 그만하고,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군생활 잘 하길 바란다. 사랑한다. 우리 아들…. 그리고 자랑스럽다
덧붙이는 글 | 군에 아들을 보낸 모든 어머님들께….
우리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자식들은 더 많이 성숙해져 있는 것 같습니다.
모두들 잘 해 낼거라는 믿음을 가지세요.
더 강인하고, 씩씩하고 건강한 모습으로 곧 찾아 뵐테니까요.
저만 다녀와서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