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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체험' 기사를 기획할 때만 해도 자신감에 부풀어 있었다. 바닷가에서 옥수수 장사를 해보겠다는 계획이 생각대로 착착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일단 지인을 통해 옥수수를 파는 할머니 섭외에 쉽게 성공했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학생인데요, 옥수수 장사를 직접 해 보고 글을 써야 해서요."
"그려~ 그런디. 내가 도움이 될지 모르겄네."


할머니께서는 내 부탁에 쉽게 응해주셨고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8월 11일~12일 이틀 동안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 근처에서 민박을 하기로 하고 11일 오전부터 '룰루랄라'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느끼면서 '거상(巨商)'이 되어 돌아올 내 모습을 맘껏 상상했다. 커피숍, 편의점, 카메라 가게 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경험이 있는 터라 '옥수수 파는 일 쯤이야'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아르바이트 경험 앞세워 우쭐 "옥수수 쯤이야"

드디어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파랗고 맑은 바다와 청명한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보는 바다가 너무나 반가워 넋을 잃고 바라보던 내 앞에 자그마한 할머니 한 분이 다가오셨다.

"오느라 수고했다. 밥 묵꼬 옥시시 따러가야제?"

할머니는 나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총총 걸어나가셨다. 은근슬쩍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옥수수를 따러 간다고? 삶아져 있는 걸로 파는 게 아니고?'

솔직히 말해서 그때까지만 해도, 옥수수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눈 앞에 보이는 바다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 옥수수밭에서 옥수수를 따고 있다.
ⓒ 오타쇼고
'후딱 팔고나서 들어가면 되지 뭐'

스스로를 위안하며 옥수수 밭으로 향했다. 20여 분쯤 걸어 옥수수밭에 도착했다. 자그마한 동산에 많은 옥수수들이 빼곡히 서 있었다. 쭉 도시생활을 해왔던 내게 옥수수밭 풍경은 문화 충격(?) 그 자체였다. 뭘 어떻게 할지 몰라 서 있는데 할머니가 곁에 와 시범을 보여주셨다.

"작은 놈은 따지 말고, 요렇게 큰 놈만 따서 담아야 혀."

내다 팔 수 있을 만큼 잘 여문 옥수수들을 따서 양동이에 가득 채우고는 낑낑대며 할머니댁 마당으로 날랐다.

▲ 옥수수 손질을 위해 집안으로 옮기고 있다.
ⓒ 오타쇼고
마당에 펼쳐놓고 옥수수 껍데기를 벗겨내기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잘 벗겨지지 않았다. 게다가 농약을 뿌리지 않고 키운 천연 옥수수에는 개미와 진드기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었다. 아프고 따갑고…. 하지만 쭈글쭈글 갈라진 손으로 묵묵히 껍데기를 벗겨내는 할머니의 손을 보니 차마 힘들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묵묵히 일을 하는 수밖에.

"얇은 속껍데기는 남겨놓고 삶아야 옥수수가 마르지 않어."

할머니의 설명을 들으면서 옥수수를 솥에 넣고는, 소금과 설탕을 알맞게 넣은 물에 삶아내기 시작했다. 30분 가량 지났을까? 마당에 고소한 옥수수 냄새가 폴폴 퍼져나기 시작했다.

"옥수수 좀...",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이제는 팔러가는 일만 남았다. 커다란 대야에 옥수수를 넣고, 뜨거운 김이 빠져나가지 않게 종이를 덮었다. 손님들에게 나눠줄 때 쓸 비닐봉지까지 챙긴 후에, 혹여 옥수수가 금방 식을까봐 종종걸음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할머니께서는 나보다 훨씬 빠른 걸음으로 저만치 앞서 걷고 계셨다.

▲ 고소한 냄새를 풍기며 삶아진 옥수수
ⓒ 오타쇼고
▲ 삶은 옥수수를 꺼내고 있는 모습
ⓒ 오타쇼고
드디어 인파로 가득찬 만리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그건데 이게 무슨 일. 나도 모르게 쭈뼛쭈뼛하며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알록달록 예쁜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에 열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옥수수 사세요!"라고 외칠 생각을 하니 괜시리 쑥쓰럽고 창피했던 것이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저기, 옥수수 사세요" 하고 소리내 보았다. 하지만 내게 시선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다들 삼삼오오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거나, 비치발리볼을 즐기거나 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해수욕장에 선 수완 없는 장사꾼

갑자기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거상'이 되겠다는 꿈이 저만치 사라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예전 아르바이트 할 때에는 집 근처의 익숙한 장소에서, 또래 동료들과 함께했 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낯선 장소에서, 옥수수에 관심조차 보이지 않는 사람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려니 시작부터 힘이 빠졌다. 언제나 세상은 내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며 공주처럼 살아왔는데…. 옥수수 대야를 머리에 인 나는 수완 없는 장사꾼일 뿐이었다.

▲ "옥수수 좀 사주세요..." 소리가 크게 나오지 않았다.
ⓒ 오타쇼고
그렇게 십 여분이 흐르고, 흐리멍텅하던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이 있었으니 바로 얼음과자 파는 아저씨가 큰 소리로 "아이스 께~끼~" 하고 외치는 모습이었다. 목이 터져라 '아이스 께~끼~'를 외치는 아저씨는 손님이 별로 없는데도 땀을 흘려가며 이리저리 뛰고 계셨다.

시작도 하기 전에 주저하고 있는 내 모습과 굉장히 대조적이었다. 창피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아저씨 덕분에 내 안 깊숙이 또아리를 틀고 있던 의욕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자존심이고 뭐고... 다 팔기 전엔 집에 안가!

오후 5시가 될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옥수수를 팔러 다니기 시작했다. "싸게 줘야 잘 팔리제" 하시는 할머니 말씀에 "세 개 천원!"이라고 외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30개 가까운 옥수수를 이고 움직이려니 목도 아프고 팔다리도 아프고 안 아픈 곳이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팔아야 했다.

'꼭 다 팔아서 가벼운 몸으로 민박집에 돌아가리!'

몇 번이고 되뇌었다.

"옥수수 사세요. 밭에서 따다가 삶은 거라 진짜 맛있어요. 가격도 세 개 천원이에요."
"방금 밥먹어서 배부른데… 근데 세 개 천원이라고요?"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는 손님이 생겼다. 가슴이 조마조마 두근두근 했다.

"음, 철아 너 옥수수 먹을래?"
"응! 나 옥수수 먹을래 엄마."

▲ 꼬마 아이가 '개시'한 뒤부터 옥수수를 찾는 피서객들이 늘었다.
ⓒ 오타쇼고
아이고 귀여운 것! 꼬마손님 덕분에 드디어 개시를 할 수 있었다. 대야를 내려놓고 옥수수 세 개를 조심조심 비닐봉지에 담아 손님에게 건네주었다. 천 원을 받아들고 "감사합니다" 하고 외치는데,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옥수수 얼마에요? 맛있겠네~"
"네! 맛있어요. 세 개 천원이에요."
"이천원 어치 주세요."

감격의 순간이었다. 한 번 물꼬가 트이자 쭉쭉 뻗어나갔다. 결국 한 자리에서 열다섯 개의 옥수수를 팔았다. 손에 쥐어진 5000원이 그리도 귀중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평소 같았으면 점심 한 끼 사먹을 돈이었겠지만, '옥수수 장수' 변지혜에게는 몇십 만원 부럽지 않을 값어치가 있는 돈이었다. 너무 좋아서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날이 서서히 저물기 시작했지만, 나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금 외쳤다.

"옥수수 사세요~ 방금 삶은 거라 맛있어요~"

가장 보람된 순간, 값진 천 원짜리 열한 장

어둠이 피어오르는 해변가를 열심히 누볐다. 신발 속으로 모래가 자꾸 들어와 간지럽혔지만, 땀에 절은 티셔츠가 눅눅해져 샤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몇몇 손님들은 퉁명스런 말투로 안 산다고 쏘아붙였지만 그럼에도 마음만은 힘들지 않았다.

점점 가벼워지는 대야를 품에 안고는, 짭쪼름한 바다 내음을 깊이 들이마시면서 저물어가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운 좋게도 민박집에 돌아오는 길에 맘씨 좋은 아주머니를 만나, 식은 옥수수도 판매할 수 있었다.

▲ 옥수수를 다 팔고 할머님과 함께 돌아오는 모습. 내 생애 가장 보람있는 순간이었다.
ⓒ 오타쇼고
일이 끝난 후 지쳐있는 내게 할머니께서 다가와 "힘 들었제" 하시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힘든 일을 해보지 않아서 말랑말랑한 내 손과 달리 할머니의 손은 건조하고 까끌까끌했다. 검게 그을린 손에 박힌 굳은살이 내 손에 와닿자 가슴이 뭉클했다.

꼬깃꼬깃 접어 전대 속에 넣어두었던 천원짜리 열한 장을 할머니께 건네드렸다. 하루종일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이었지만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내 꺼야!'란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욕심 많은 내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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