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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이나 사명감 때문이 아니다. 난 그냥…, 단지 이 일이 즐겁다."

문화연대 송수연(34) 시민자치문화센터 팀장이 한 보따리 짊어지고 쉴 틈 없이 전국을 누비는 이유이다.

문화연대 활동 5년차. 전국의 문화 현장이라면 두 말하지 않고 달려가는 그의 주특기는 '소통'이다. 그는 억지로 감동을 주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 자신이 가진 그 무엇을 준다기 보다는 만나는 사람들과 그냥 소통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배우는 것이 더 많단다.

트럭은 그의 보따리 운반 차이자, 영화관 또는 공연장이다. 우연한 기회에 한 기업이 '나눔의 영화관' 프로젝트 후원금으로 마련한 트럭이 보배인 셈이다. 그는 "이 트럭이야말로 그 무엇과 만나면 내용물이 생성되기도 하고, 또 다른 무언가를 '소통' 속에서 전달하는 '달리는 매체'다"라고 규정했다.

지금은 문화연대의 '달리는 놀이터'라는 이름 아래 폐광촌, 도서 지역 등을 돌며 영화를 상영하기도 하고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최근에는 100시간 릴레이로 이어진 반FTA 거리 퍼포먼스, 안티 월드컵 스티커 부착 시위 등을 벌이기도 했다.

후텁지근했던 지난 광복절 정오 무렵, 약속 장소였던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 마당에 한 짐 짊어지고 나타난 송씨. 1주일 동안 서울을 떠나 활동을 마치고 돌아와 하루 쉬고 또 다시 짐을 꾸려 어디론가 이동하는 길이란다.

열기와 습기가 한 치도 물러설 것 같지 않은 눈살 찌푸려지는 날씨였지만 떠날 채비를 한 그녀의 모습은 왠지 여유롭고 편안한 분위기였다. 한 발 한 발 움직임도 차분하다. 서울 도심 한가운데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하고 나타난 송수연씨와 나눈 이야기다.

전국 방방곡곡을 떠도는 문화활동가

▲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송수연씨. 1주일간의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기 무섭게 또 다시 떠날 채비를 했다. 더위에도 가방을 끌어 안았지만 활동가와 배낭이 함께한 모습은 오히려 편안해 보인다.
ⓒ 박성진
- 어제 1주일간 활동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고 들었는데, 또 어디로 가는 길인가?
"밤에 부산에 가야 한다. 떠나는 게 일상이 되다 보니 이젠 익숙하다. 갔다 와서 하루 있다가 또 다른 데로 가야 한다."

- 예전부터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했는지, 대학에서 문화 관련 동아리 활동을 하거나 사회 운동을 했었나?
"같이 일하는 활동가 중에는 운동했던 사람도 꽤 많은데, 난 운동권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한 학생이었다. 특별히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서 콘서트나 영화 보러 잘 가고…. 아르바이트하고 가끔 책 읽고 뭐, 그런 혼자 놀기 좋아하고 독립적인 성격이 강했다.

대학 시절에 문화와 관련된 책을 탐독하면서 이해도 못하는 말들을 메모해 두곤 했는데 아마 그랬던 게 지금 일과 가장 닮은 모습이랄까. 대학 때 읽었던 책의 저자들이 문화연대에 많이 계신데 처음엔 책으로 이름만 듣던 분들과 직접 만나고 일할 수 있다는 것도 무척 기뻤다."

- 문화연대에 일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면.
"아마 2000년이었을 텐데, 문화연대 원용진 교수를 통해 소개 받았다. 처음 1년 동안은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당시 다니던 직장이 문화연대 맞은편에 있었는데, 두 곳이 가깝다 보니 두 사무실을 오가며 일을 할 수 있었다. 대학 졸업 후 다니던 직장은 일종의 종합 기획사 같은 것이었는데 문화연대에서 하는 일과는 성격이 달랐다.

아무래도 그 기획사는 철저하게 영리 차원의 일일 수밖에 없었다. 당시 모 통신사 홍보 기획 일에 참여해 고등학생을 상대로 홍보하는 일을 하게 됐는데, 아무것도 없고 그냥 이윤을 남기기 위한 홍보이고 기획이었다. 두 가지 일이 너무 달라서 갈등했고, 결국 2001년에 문화연대 상근직으로 일할 기회가 생겨서 문화연대를 택했다."

영화도 보고 콘서트도 하는 '만능' 트럭, 보셨나요?

- 3년이면 서당개도 풍월을 읊는다는데(웃음) 5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기획력이나 아이디어가 좋다는 평을 듣는 걸로 알고 있다. 이번 여름 문화연대에서 벌인 월드컵 광풍에 저항하는 '안티월드컵 스티커 4종 세트'도 인상적이었고, 반FTA 시위 때도 다양한 거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제 풍월이나 좀 읊는 수준이다(웃음). 같이 하는 작가들이나 활동가들의 노력, 아이디어가 결합돼서 좋은 기획안이나 활동이 나온다고 본다. 안티 월드컵 스티커는 활동가 김원씨의 아이디어였다. 처음에는 개인 차원의 반대 시위로 출발했는데 문화연대 차원으로 바뀐 거다. 반FTA 퍼포먼스에 참여한 작가들이나 활동가들의 아이디어도 아주 좋았다."

▲ 월드컵 당시 거리에 붙었던 문화연대 '안티 월드컵' 스티커. 작가 김완씨의 아이디어로 탄생했다.
ⓒ 문화연대
- 문화연대의 트럭 한 대가 여기저기 출몰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반FTA 거리 퍼포먼스나 '나눔의 영화관' 프로그램 같은 문화연대의 '달리는 놀이터' 프로젝트를 할 때 말이다. 이런저런 일을 훌륭히 해내는 만능 트럭인 것 같은데, 어떤 트럭인가?
"시민자치문화센터 일은 '달리는 놀이터'와 대부분 연계돼 있다고 보면 된다. 트럭은 한 기업이 나눔의 영화관 프로그램을 후원하면서 생겼다. 이주노동자들 만나고 기지촌 주민 만나면서 한 짐 짊어지고 다녔는데 누가 옆에서 보더니 차를 살 형편은 아닌 것 같으니 오토바이라도 한 대 사는 게 어더냐고 말하더라.

우연인지 때마침 한 기업에서 달리는 놀이터의 '나눔의 영화관' 프로젝트를 후원하겠다고 나섰고, 후원금 중 일부로 트럭을 마련했다. 어떤 기반이 될 수 있는 걸 하나 마련해서 계속 무언가를 하자는 생각에서였다. 트럭 위에서 공연도 하고, 영화도 상영하고, 거리 퍼포먼스 때도 쓰고, 짐도 싣고 다녔다. 이거저거 할 수 있는 하나의 인프라가 만들어진 거다. '달리는 놀이터' 트럭은 하나의 '매체'다. 규정된 무엇이 아니라 트럭과 뭔가가 만나면 내용물이 생성되기도 하고 또 무언가를 전달하는 하나의 매체다."

- 지역에 내려갔을 때 갑자기 출현한 낯선 트럭 때문에 마을 주인들과 마찰을 일으킨 적은 없었나?
"사전에 답사를 마치고 그 지역 활동가나 이장님 같은 분들과 사전 준비를 하기 때문에 그런 경우는 거의 없고 오히려 호응이 높은 경우가 많다. 트럭이 가는 날은 마을잔치가 되기도 한다. 콘서트도 볼 수 있고 영화도 볼 수 있는…."

▲ 2004년 12월 경기도 여주 밀머리미술학교에 등장한 달리는 놀이터. 콘서트를 위한 무대로 변신하고 있다.
ⓒ 문화연대
▲ 경북 산청에 나타난 '달려라 놀이터' 트럭(일명 '달차')과 할머니.
ⓒ 문화연대
- 기업의 스폰서로 트럭을 마련하게 됐고 활동 기반도 얻게 된 건데, 한편으로는 후원을 받으니 제약되는 것들도 있지 않나. 대기업의 후원 때문에 자유롭지 못한 부분도 있을 텐데, 문화연대 내부의 갈등은 없나?
"사실 '나눔의 영화관' 프로젝트는 트럭 한 대 몰고 가서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한 번에 10명은 족히 움직여야 일이 된다. 그러다 보니 돈이 들어가고 후원이 필요한 게 사실이다.

그런데 정작 고민하는 건 대기업 후원을 받을 거냐 말 거냐가 아니라 운동 전체의 정체성에 대한 것이다. '어떤 운동이어야 하느냐'하는 건데 미래에 어떻게 발전할 수 있고 어떤 모습을 만들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보람? 의무? 단지 이 일이 재미있을 뿐

- 소외된 지역을 찾아다니는 활동이 많던데 폐광촌이나 기지촌 등에서 보람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이나 지역을 찾아다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또 내가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보람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사실 내가 누구에게 '감동을 줬다'는 표현이 싫다. 어느 날 동료가 '나눔이 뭐냐'고 물으면서 '그게 혹시 상호보완적 게 아닐까'라고 했다. 그 친구의 말처럼 나눔은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것의 일부를 주는 게 아니라 서로 소통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거라고 하지 않는 건, 그게 곧 내가 '상대를 대상화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다. 상대를 대상화 해 그들에게 뭔가 베풀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걸 늘 경계한다. 가뜩이나 내가 기획자이고 활동가니 그럴 위험성이 더 크다. 그걸 피하기 위해 소외된 지역 사람을 만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떤 지역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다닌다고 생각한다."

- 보람이나 의무 그런 것보다는 스스로 즐거운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다. 난 이 일이 재미있다. 그러니까, 무슨 보람이 있어서 이 일을 하는 게 아니다. 일방적으로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내가 보람을 느끼고 그런 게 아니라, 나도 만나는 사람들에게 배우는 게 많다. 상호보완적인 나눔, 소통을 하는 거다."

▲ 도끼라는 별명을 달고 'I Imagine'이라는 문구가 적힌 있는 송수연씨의 명함 한쪽면.
ⓒ 박성진
- 문화연대가 주축이 돼서 뭔가를 이끌어 내고 여러 지역을 다니며 활동을 하다 보면 지역 활동가라든지 지역주민, 행정 관계자 같은 사람과의 연대나 호흡도 중요할 것 같다.
"문화연대가 주최하고 무엇을 한다는 것보다는 사실 '문화연대'라는 이름도 잘 모르고 굳이 그걸 알려야 할 의무도 없다고 본다. 어쨌든 지역마다 활동하는 지역 활동가들이 있고, 그 분들이 지역 상황을 잘 알기 때문에 지역 활동가의 도움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지역 문화 행사 같은 데 보조자처럼 도움을 줄 수 있는 걸로 충분하다.

예컨대 지난 달 전북 장수마을에서 열렸던 논실마을 학교 캠프 프로그램에 문화연대가 참여한 것처럼…. 문화연대가 앞에 나서서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화연대가 힘을 실어줄 수 있고 함께 참여해서 더 즐거운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면 된다."

- 별명이 '도끼'라고 하던데 왜 그런 별명이 붙었나?
"5년 전쯤 '평화캠프'라는 데 갔다가 옆에 있던 한 활동가 친구가 붙여준 거다. 그때는 별명을 하나씩 붙여서 불렀는데 나 스스로 정적인 분위기를 깨보라는 의미에서 친구가 붙여줬다."

- 정적인 분위기라고 하면 성격 얘긴가?
"많이 움직이는 일을 하지만 원래 성격은 조용한 편이다. 일을 할 때도 부산하게 움직이기 보다는 조용히 꾸준히 티나지 않게 움직인다. 그게 에너지를 조정하는 데도 좋긴 하다. 요즘은 주변에서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며(웃음) '조심해야 할 도끼'라고 말하기도 한다."

- 한 짐 짊어지고 나타난 것을 보니 또 어디론가 떠날 채비를 한 것 같은데 늘 어디론가 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활동하다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요즘은 나이 탓인지(웃음) 만났던 사람을 잘 기억 못한다. 그렇게 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다음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성과를 종합해 발전시킬 것인가, 다음 단계로 어떻게 고양 시킬 것인가…. 이런 걸 어떻게 실현 시킬 수 있을지 요즘은 특히 고민하고 있다."

▲ 에어스크린을 설치해 상영하는 나눔의 영화관. 상영 전 트레일러.
ⓒ 문화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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