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구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회)는 사회 각계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현대판 노예제도라는 비판을 받던 산업연수제 유지와 고용허가제 도입 반대를 주장해 왔다. 독점했던 산업연수생 연수추천단체의 지위를 유지하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중기회는 산업연수생 제도가 폐지되고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자 고용허가제로의 편입을 위한 대책을 마련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민단체들의 반발에 부딪치고 있다.
금년 1월 중순 시민사회단체들은 중기회가 산업연수생 관리 업무에 이어 고용허가제 사후관리업무에 개입하려 하고 있다며 이를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정부측은 중기회의 고용허가제 편입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해명했으며 지금도 그러한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노동부 외국인력 고용팀이나 중기회, 고용허가제 시행기관인 한국산업인력공단, 국제노동재단 관계자들은 한결 같이 중기회가 고용허가제 관리 단체로 편입되는 것을 기정사실로 여기고 있다.
이에 대해 박천응 안산외국인노동자센터 대표는 17일 '국제엠네스티 한국이주노동자 인권보고서 발표 및 인권보장 촉구 공동 기자회견'에서 "정부가 이미 중기협, 농협 등의 연수추천단체들을 고용허가제 사후관리 단체로 편입시키기 위한 작업을 끝마쳤다. 이렇게 될 경우 고용허가제는 옷만 바꿔 입은 산업연수제가 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중소기업중앙회 등 연수추천단체를 고용허가제로 편입시키게 된 부분에 대한 국정감사가 필요하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부는 외국인력 정책의 공공성을 훼손하지 말라
중기회의 고용허가제 사후 관리기관 편입 시도에 대한 논란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과연 상식이 통하는 사회인지 묻게 된다. 각종 인권침해와 송출비리, 그로 인한 국제적 망신 등을 해소하기 위해 산업연수생 제도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를 도입하자고 했을 때 이를 반대했던 단체가 새로 도입된 제도의 관리 주체로 들어가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려는 정부 입장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중기회의 고용허가제 사후 관리기관 편입을 용인하겠다는 정부측 입장은 간단하다. 외국인력 정책 관계자는 "산업연수제가 폐지되는 마당에 중기회를 떼놓고 가기엔 정부에 부담이 되는 게 사실이지 않느냐"고 말한다.
박천응 대표는 기자회견을 통해 "중기회는 과거 외국인력 도입을 통해 막대한 수익을 챙겨왔다. 고용허가제 편입시도는 외국인력 관리를 수익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고용허가제는 차별금지와 이주노동자들의 권리를 인정하기 위한 입법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는 차별과 학대에 대한 제한적 보호와 사업장 이동의 제한 등으로 인한 인권침해가 늘어나면서 고용허가제의 전면적 재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때에 과거 산업연수생 제도하에서 빈번하게 발생했던 강제적립금 문제, 여권과 외국인등록증 등의 신분증 압류, 근로계약의 임의 변경 등의 문제가 여전히 행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 있어서 "산업연수생제도 관련기관의 고용허가제로의 편입은 외국인력 정책의 공공성을 훼손할 수밖에 없는 일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이 관련 시민단체들의 중론이다.
참여정부는 치적이라고 자평하고 있는 고용허가제를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꼴로 변형시키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중기회의 고용허가제 관리단체 편입 논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17일은 고용허가제 도입 2주년으로, 관련단체들의 비판적 기자회견과 보고대회가 곳곳에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