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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처는 상훈법 중서금지조항에 따라 재심의가 불가하다는 입장이다.
ⓒ 오마이뉴스 선대식
313명의 순국선열과 애국지사가 국가보훈처의 포상을 받은 지난 광복절. 민영방(77)할머니는 아버지인 고 민찬호(1903~1950)씨의 무덤 앞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올해로 아버지 민찬호씨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신청한 지 13년이 됐지만 아직 인정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민찬호 선생은 3.1 만세운동당시 독립선언식에 참석하고 거리행진에도 적극 참여한 인물. 이후 그는 1950년 9월27일 한국전쟁당시 폭격에 맞아 사망했다. 이와 관련 국가보훈처는 사망시기와 독립운동활동 후의 행적이 불분명 하다는 이유로 민찬호 선생을 포상수상자에서 제외했다.

유일한 유족인 민 할머니는 "호적에 분명 사망했다고 나와있는데 호적이 위조가 가는하다는 이유로 사망시기를 인정하지 않는다"며 "주변에 도와줄 사람도 마땅치 않아 더 이상 무슨 자료로 어떻게 입증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독립유공자, 광복 이전 행적으로 심사해야"

민 할머니의 경우처럼 광복 이후 행적이 불분명할 때는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포상심사기준에 따라 보류상태로 분류돼 추가 자료가 나올 때까지 포상이 미뤄진다.

독립유공자 포상심사 일반기준에는 '행방불명이나 재이북 등으로 독립운동 이후 행적이 확인 되지 않는 경우는 독립운동 활동 당시의 연령 등을 고려해 변절가능성 등을 판단하고 포상여부를 결정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백범 김구 선생의 주치의로 대한민국 광복군 총사령부 군의처장을 지낸 류진동(1908~?) 선생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류진동 선생은 임시정부 관련 사료를 뒤지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익숙한 얼굴이다. 게다가 백범일지에도 '생명의 은인'이라고 밝혀진 인물이지만 해방 이후인 1959년, 고향인 북한으로 간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류진동 선생의 독립유공자 포상을 추진하고 있는 김인수 백범사상실천연구회 대표는 "북한 체제에 동조하지 않았다는 것을 추가 자료로 입증하라는 것"이라며 "해방 이전에 주로 활동을 한 독립운동가의 경우, 해방 이후 행적이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독립유공자 서훈 등급 논란... 종합적 평가의 실체는?

▲ 1941년대 충칭 소재 광복군 총사령부 본부에 모여있는 광복군 간부들의 모습. 맨 오른쪽의 인물이 류진동 선생
ⓒ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 류진동 선생의 아들이 류수현씨가 부병 간호를 위해 이북에 갔다는 것을 보여주는 체류증
ⓒ (사)백범사상실천운동연합
우여곡절 끝에 독립유공자로 선정돼도 몇몇 유족들에겐 또 하나의 긴 싸움이 남아있다.

지난 3.1절 조부의 건국포장 수상을 거부한 허춘근(47)씨. 허씨는 조부의 포상 등급이 낮다며 현재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행정심판청구를 진행하고 있다. 허씨의 조부 허원용 선생은 1910년 3월10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독립 만세 시위를 주도했다. '성진시위'는 함경북도 3.1운동의 시발점이 된 민중봉기로 허원용 선생은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되어 1년 1개월 15일의 옥고를 치렀다.

허씨는 "조부의 서훈 등급은 1년 이상 수형 및 복역을 한 경우로 건국훈장 애족장(5등급)이지만 국가보훈처는 이를 무시하고 한 등급 아래인 건국포장을 줬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또한 “종합적 평가 결과 서훈 등급이 하향조정 될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지만 심사과정을 공개하지 않아 왜 건국포장이 수여됐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독립유공자 포상기준에 따르면 훈장의 등급은 옥고를 치른 햇수 외에도 ▲독립운동 공헌 정도 ▲운동의 역사적 의의 ▲이전 포상자와 훈격상 균형 등 종합 평가된 공적에 따라 결정된다.

그러나 허씨가 입수한 공훈심사위원회 의사록을 보면 한 위원이 '건국포장으로 했던 예가 있었죠'라는 말 한마디로 허원용 선생의 서훈 등급이 건국포장으로 의결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허씨는 "이런 사례 하나를 들어 종합적 평가라고 하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정관회 국가보훈처 공훈심사과 팀장은 “허씨의 경우 의사록에 간단히 기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전문심사단 사이에서는 이미 어느 정도 전문적인 의견이 교류된 후 나온 말일 것”이라며 심사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등급 하향 조정 비공개, 개선돼야"

1980년부터 1996년까지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심사위원을 역임한 이현희 성신여대 사학과 명예교수는 "심사단이 포상대상자에서 제외시킨 경우가 결과적으로 포상자로 변하는 등 보훈처의 임의적 평가가 적용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보훈심사단에 보훈처 전담직원이 포함되는 점이나 등급이 하향 조정된 부분에 대해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는 점은 개선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잘못 추서된 훈장이나 포장은 현재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재심의 관련 법규조차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재심사에 대해 공훈심사과 정관회 팀장은 "3차에 걸쳐 공정한 심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상훈법에 동일한 공적에 대해서는 서훈을 중복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에 재심사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다.

애국선열유족회 방병건(60)씨는 "유족들은 조상이 훌륭한 일을 했다는 자부심만으로도 만족하며 지냈는데 막상 심사가 불합리하게 운영되거나 형평성에 맞지 않아 억울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수장고에 훈장이 넘쳐나는 것은 발굴을 강조한 국가보훈처가 '숫자보도'로 생색내기를 거듭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며 근본적인 발굴포상 시행을 촉구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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