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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꿈이라고 말했다. 잠을 깨면 가뭇없이 사라지는 꿈일 뿐이라고. 세상에 그런 마을들은 이미 훨씬 전부터 만들어지고 사라져갔을 뿐이라고, 그렇게 명멸해갔던 마을들 중에 하나가 될 것이라고, 진심 어린 표정으로 나의 삶을 걱정해주었다.
그것은 닿을 수 없는 것에 대한 절망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내 소중한 가족들의 인생에 대한 깊은 우려가 담긴 진정한 충고였다.
우리 마을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말을 한다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어 보였다. 어쩌면 인생의 소중한 가치가 다른 사람들의 관점의 차이를 단 몇 마디 말로 뛰어넘을 수 있는 능력이 내게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래서 어떤 날은 그저 그 사람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리는 것으로 그 시간을 회피하기도 했었다. 혹은 나 자신조차도 순간 내가 가진 꿈에 대한 회의에 빠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은 그 시작부터 그만큼 무모한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꿈을 꾸는 것조차 피하고 있었다. '내 삶이 내게 필요한 먹을거리들을 직접 가꾸어내는 건강한 노동, 같은 이상을 꿈꾸는 선한 사람들과 아름다운 연대, 진정한 전인교육이 펼쳐지는 학교 안에서 행복하게 공부하는 아이들의 숨결로 행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은 그저 꿈으로 끝날 가능성이 충분한 일이었다.
그런 꿈을 꾸기엔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했다. 밥을 사기 위한 돈을 버는 일에 시간을 쏟아부어야 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오로지 품격(?) 높은 생존과 질 높은 소비를 위해 다투어야 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자본의 가장 아름다운 윤리는 이윤이었다.
도덕도, 윤리도, 정치도, 법률도, 문화도, 교육도,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을 이어주는 그 어떤 법칙들도 자본의 아름다운 윤리 뒤에 서야 했다. 그것은 너무나 강고한 세상의 법칙이었다.
그 법칙이 정연히 줄 세워 놓은 질서 속에서 살아왔던 우리가 그 틀에서 벗어나는 일도 쉽지 않았다. 전혀 경험해 보지 않은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것이기에 더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공동체 마을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가야 했던 이유였을지도 모른다.
당연하게 알고 지내온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그나마 영성(종교)공동체가 그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데는 그런 새로운 질서를 분명히 집중시킬 수 있었던 질료가 분명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만큼 한 개인이 십 수년을 당연하게 알고 지내온 사고의 틀을 깨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 아무리 선한 사람도 양쪽의 추로 흔들리는 저울을 달고 있듯이 이기심과 이타심을 언제나 마음 속에 갖고 있다.
우리는 무모하게도 '공동체를 지향하는 마을'이다. '공동체 마을'이라고 당장에 결론짓지 않는 이유는 어떤 이데올로기나 지향에 대한 분명한 목표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직은 우리 마을 주민들의 각각의 삶의 미래에 대한 전체의 화합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금 대부분의 주민들은 전국의 도시에 흩어져 살고 있다. 우리는 어떤 공동체 성을 바로 지금 발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을이 들어서고, 각자 꿈꾸는 삶을 실천해 나가며 그때 공동체 성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제도교육이 아닌 '대안교육'으로 하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소비적 삶이 아닌 생태적 삶을 지향하는 것에 동의하는 수준일 뿐이다. 우리 마을은 무소유 공동체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을 안에서 작은 경제 공동체나 밥상 공동체를 따로 실천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이곳에 모인 다양한 삶의 이력을 가진 사람들은 '생태적 삶'과 '대안교육'이라는 두 가지 대 전제에 동의하고,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제외한 다른 부분에서 얼마든지 유연해야 한다는 전제에 동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마을에 대해 '생각 공동체'라고 표현한다.
지금까지 실패했던 공동체 마을들이 결코 좋은 마을 규약, 혹은 아름다운 질서정연한 법칙들이 없어서 실패했던 것은 아니다. 결국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다양한 이해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고, 발생한 다양하고 복잡한 관계들을 문서로써 혹은 규정된 법칙으로써 해결하기는 만무한 일이다.
공동체는 반드시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규정화한 실천양식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문제는 다양성에 대한 이해와 차이에 대한 관용의 임계점을 찾아나가야 하는 것이리라.
아무리 좋은 규약이나 일치된 선언도 그것을 지키는 것조차 버겁고 힘이 든다면 오히려 행복하기 위해 불행을 자초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사람은 누구나 같을 수는 없다. 심지어 생각은 물론이고 입맛도, 체력도, 혹은 잠을 자는 습관마저도 다르다. 누구든 선의의 합리성을 깨트리지 않는 한, 각자 나름대로 행복한 행동 양식을 따라야할 권리가 있다.
본질은 약속된 좋은 문서가 아닌 각자가 품고 있는 다양한 색깔들이 어떤 조화를 이루어내느냐에 있다. 한 마을의 문화는 각자 가진 선한 의지들이 전체의 화합으로 발현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서로 알아 가는 과정을 겪은 '생각 공동체'... '생태적 삶'과 '대안교육'이 대전제
대부분 인터넷을 통해 모였던 우리는 2년 전 온통 감나무와 밤나무만이 덮여 있는 1만5000평 마을 예정부지가 바로 보이는 산 정상에서 나무들처럼 푸른 희망만을 가슴에 담고 공인된 계약서 한 장 없는 마을 만들기에 동의했다.
그후 매달 서로를 알아가기 위한 모임을 가졌다. 모임에서 우리는 어떤 마을을 만들 것인가보다 '우리는 누구'이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차이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떤 다양성들을 가지고 있는지'를 서로 알아 가는 과정을 겪었다.
마을 주민들은 현재 사는 곳도, 하고 있는 일도 각양각색이다. 서울과 부산, 인천, 울산, 대구, 대전, 광주, 고흥 등 전국 각지에 살고 있다. 회사원, 사업가, 경찰 공무원, 교육 공무원, 방송인, 수의사 등 정말 다양한 직업군을 가지고 있다.
모두가 흔히 생각할 수 있는 과거 '운동권'이었던 사람들은 드문 편이고, 대부분의 주민들은 각자 사회 생활을 하며 스스로가 자연 안에서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생각에 눈을 뜬 사람들이다.
지난 2년 동안 우리는 차이를 인정하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좋은 문화를 만들었다. 이를 밑거름으로 우리는 마을의 대전제인 '생태적인 삶'과 아이들을 위한 '대안교육의 실천'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래서 앞길이 태산이긴 하다.
내가 지금 강자 독식의 도시 시스템을 벗어나 건강한 노동으로 필요한 만큼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고, 충분한 시간을 가족들과 관계를 갖는 데 집중할 수 있다. 이것만으로도 어쩌면 내가 꾸었던 꿈의 일부는 결코 꿈으로 끝나지 않을 개연성이 충분하다.
더불어 지금 내 가족들과 함께 같은 공간에 살고 있는 다른 한 가족들과 만들어 가는 관계에서 작은 차이를 극복하고, 서로의 긍정성에 집중하는 노력들을 하고 있다. 이것도 꿈들을 현실화하는 데 커다란 밑바탕으로 분명히 작용할 것이다.
이제 남은 꿈은 '마을 만들기'... 그러나 "비장하지 말자"
귀농 두 달여 동안 순전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아내는 서울에서 볼 수 없었던 웃음을 찾아냈다. 한결 여유 있는 시간 속에서 사색하고 독서를 즐겼다. 아이와 나에게 보다 더 편안한 마음을 열어주고 있다. 아이는 언제든 펼쳐진 자연 속에서 거침없이 뛰어 다니며 놀고, 아직은 자신의 신앙이라 할 수 있는 엄마와 교감하는 데 흠뻑 젖어 있다.
지금 나와 내 가족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서울에서 살면 상상할 수 없던 꿈 그 자체였다. 이제 남은 꿈은 '마을 만들기'이다. 하지만 이는 긴 시간과 더욱 큰 노력들을 수반해야 할 남은 숙제다. 다만, 우리 마을 주민들이 항상 염두에 두는 말이 있다.
"비장하지 말자!"
우리가 만드는 모든 것은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하는 일이다. 어떤 강박 관념이나 지나친 목적 의식을 가지고 마치 신세계를 건설하는 투사처럼 굴지 말자는 의미이다. 시간이 좀 더디더라도, 과정이 좀 피곤하더라도 언제 어디서나 재미있게, 행복하게 하자는 그런 뜻이다.
자신의 행복한 인생에 대한 꿈을 꾸는 것. 어쩌면 그것은 우리가 살아 있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이루어지든, 그렇지 못하든 꿈이 없는 것은 도무지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가장 불행한 경우일지도 모른다.
결코 꿈은 실체도 없이 가뭇없이 사라지는 것만도 아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