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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이종호
요즘 뉴스의 중심은 다시 노무현 대통령이다. 정국 한복판에 그가 서 있다.

김병준·문재인, 이른바 '왕의 남자'들이 잘려나가자 노 대통령은 '그렇다면 내가 나서겠다'고 작심이라도 한 모양새다. 비록 수족은 잘려나갔지만 인사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임을 상기시키며 '령(令)'을 세웠고, 정국 운영에 있어 '무대 마이크'를 쥐는 효과를 거뒀다.

당·청 갈등의 분수령이 된 지난 6일 청와대 오찬 이후, 오는 20일 예정된 여당 지도부와 오찬에 이르기까지 최근 보름여 동안 노 대통령은 누구보다도 바삐 움직였다. 일관된 흐름 또한 포착된다.

# 6일. 여당 지도부 오찬 "당에 끝까지 남겠다"

노 대통령은 이날 "인사권은 대통령에게 남은 유일한 권력"임을 강조하며 당·청 권한의 차이를 분명히 했다. 또한 이 때 나온 발언("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도 열린우리당에 백의종군하겠다")으로 탈당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점도 드러났다.

그러면서 "바깥에서도 선장을 데려올 수가 있다"고 말해 차기대권과 관련 '외부인사영입론'을 촉발시켰다.

이와 맞물려 제기된 '오픈프라이머리'(개방형 국민경선제)라는 대선 후보 경선 방식은 정치권의 대선 화두로 급부상했다. 노 대통령이 '기폭제' 역할을 한 셈이다.

# 13일. 언론사 간부 오찬 "지지율 고민한다"

노 대통령은 <한겨레> <경향> <서울> <한국> 등 일부 언론사 간부들과의 이날 오찬에서 "정말 어려움이 많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 "좌우 협공을 당하고 있다" 등등의 섭섭함과 어려움을 토로하는 발언을 했다.

하지만, 정가에선 '그 뒤엣말'에 더 주목하는 분위기다. 노 대통령이 "내 지지도는 전임자들보다는 낫다" "권력형 비리 같은 건 있을 수 없다" 등의 발언을 하면서 임기 말 발목 잡힐 게 없으니 "끝까지 장악력을 가지고 가겠다"고 되려 의욕을 보인 게 아니냐는 해석이다.

한가지 더 의미있는 말을 했다. 지지율이 낮아 옳은 정책도 훼손된다며 "지지율 고민을 하지 않았는데 최근에는 한다"는 발언이다.

이는 최근 노 대통령이 당쪽 인사들을 청와대로 불러 '식사정치'를 시작한 것과도 관련돼 보인다. 열린우리당과 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당·청 갈등으로 빚어진 측면이 있다는 점에서 "여권 내부 통합을 시도하는 것 아니겠냐"는 분석이다.

당의 한 관계자도 "당이든 청이든, 연말까지 지지도를 어느 정도까지는 올려놔야 내년 대선 국면에 대비할 수 있다"고 말해 이같은 인식을 드러냈다.

최근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소장 김헌태) 조사에서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부정평가가 6%p 높아져 70%를 넘어선 반면, 긍정평가는 정체 상태를 보이면 20%를 간신히 넘어섰다. 열린우리당 역시 재보선 후유증과 당·청 갈등의 문제로 12.9%로 추락했다.

# 15일. 광복절 경축사 "좌우 극단 배제, 통합노선 추구"

▲ 노무현 대통령이 15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린 제61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미국과의 FTA는 또 하나의 도전"이라며 한미FTA 계속 추진할 뜻을 분명히했다.
ⓒ 연합뉴스 백승렬
이날 경축사의 키워드는 '통합'이었다. 노 대통령은 "극단주의 비타협 노선이 나라를 분열시켜 왔다"며 "해방 후 하나의 나라를 이루고자 했던 통합주의 노선은 좌절하고 말았다"고 말했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벌어질 정계개편과 관련해, 노 대통령이 구상하는 '통합'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를 두고 정치권에선 설왕설래가 오간다.

영·호남 통합? 좌·우 통합?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통합? 노 대통령은 아직 "미래와 과거의 통합"만 역설한다.

이에 대해 '친노' 직계로 통하는 이화영 의원은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정치세력의 통합"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경축사에서 "대화와 타협을 말하는 사람은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한 대목과 일치한다. 일단 그물은 크게 쳐놓고 솎아낼 모양이다.

고리는 두 가지다. 한미FTA 체결과 전시 작전통제권 환수. 노 대통령은 최근 이 두 가지 현안을 입에 달고 산다. 경축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미FTA와 작전통제권은 우리 사회 최대 화두인 '경제'와 '통일(대북)'을 향해 있다. 둘 다 미국이 걸려있다. 전자는 '개방'이고 후자는 '자주'의 문제다. 진보와 보수가 엇갈려 지지·반대를 표명하는 극명한 사안이기도 하다. 노 대통령은 좌우 협공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면서도 물러설 생각은 없어 보인다.

이 두 사안에 대한 "대합과 타협이 가능한 세력"이 노 대통령의 통합 노선을 가름할 바로미터일 것이라는 얘기는 그래서 나온다.

# 20일. 다시 여당 지도부 오찬 "'비전 2030' 제시, 의제 주도하겠다"

보름여 만에 다시 노 대통령과 지도부가 마주 앉는다. 다음주 정부가 공개할 중장기 재정운용계획에 대한 최종조율을 위해서라고 알려졌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비전 2030' 토론회다.

노 대통령은 임기 초반부터 이른바 '2030 프로젝트'를 준비해왔다. 국민연금, 저출산·고령화 등 우리 사회가 당면한 중장기 과제들이 담긴 국가비전에 관한 보고서다. 21일 한명숙 국무총리가 국무위원들을 상대로 '비전 2030' 브리핑을 하는 것에 앞서 당의 협조를 구하겠다는 의지다.

청와대 소식통인 한 의원은 "출산율이 세계 최저(1.1%)인데 현재 재정운용 체계로 버틸 수 있겠냐"며 "당에선 달가워하지 않겠지만 증세 계획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연초 노 대통령은 양극화 의제를 내세워 '증세'의 운을 뗐지만 지방선거를 앞둔 당측 반발로 수그러진 바 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오찬에 대한 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근태 의장 측이나 김한길 원내대표 측 모두 "우리가 받은 자료도 초안 수준이라 막연하다, 우리가 '교육' 받는 자리 아니겠냐"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번 회동은 '문재인 법무부장관 불가'를 설득하기 위한 당쪽의 바람이 간절했지만 이번엔 청와대 쪽의 설득 의지가 강한 사안이다.

더욱이 지난 '김병준 교육부총리 낙마' 과정에서 주도권을 쥐었다고 판단한 당 지도부는 향후 국정운영에서도 주도권을 쥐겠다는 의지를 보였지만 다시 주도권은 노 대통령에게 쥐어지는 형국이라 달갑지 않을 수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이 6일 청와대에서 김근태 당의장 등 열린우리당 지도부와 오찬을 마친 뒤 밖으로 나오고 있다.
ⓒ 연합뉴스
구상과 현실의 차이... '바다이야기'가 발목잡나

최근 '친노' 진영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백원우·이화영 의원 등은 원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논의를 주도하고 있고, 이기명·강금원씨 등 측근 인사들도 언론을 통해 '발언'을 하고 있다.

외곽 세력도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이다. 국민참여연대는 '1219 포럼'이라는 정치아카데미를 발족시켰고, 참여정치실천연대는 오는 27일 전국회원총회에서 새 대표를 뽑은 뒤 당원이 아닌 사람에게도 회원 자격을 부여하는 등 외연 확대를 시도할 계획이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당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우는 데 관심이 많다"며 ""내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이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배가 튼튼해야 안이든 밖이든 노크를 하지 않겠냐"며 당·청 결속, 친노 그룹의 연대 등 '내부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미래로 향한 '구상'과 처한 '현실'의 간극은 크다. '민 컨설팅'의 박성민 대표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만큼 어젠다(의제) 세팅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면서도 "국가경영자로서 힘을 잃었고 국민의 동의를 끌어낼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당장 임기 말까지 손발을 맞춰야 할 정부 내에서도 '누수(레임덕)'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진룡 문화부 차관의 인사 문제가 그 한 사례다, 노 대통령도 자신도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공무원들의 기강해이를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전임자들에 견줘 자식 문제나 권력형 비리가 없다는 점을 자신하면서도 "내 집권기에 생긴 문제는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뿐인데 청와대가 직접 다룰 사안은 아니다"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선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언급하며 '친인척 게이트'로 공세 수위를 높일 태세다.

당에선 곤혹스런 눈치다. 한 당직자는 "사실 당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부풀려진 측면이 있겠지만 상대방(언론과 야당)이 있는 게임이라 사태 파장을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통합 노선'에 대해서도 "통합과 잡탕의 차이가 뭐냐"고 말해 불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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