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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이산
우리집에서 내려다 보이는 마이산 ⓒ 한재철
그리고 백로 대 여섯 마리가 연신 고개를 물 속에 처박는 작은 방죽이 집 앞에 퍼질러 누워 있다. 집에서 멀리 내려다 보면 가까운 발치에 바둑판처럼 잘 정돈된 논들이 한 뼘 가량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바로 논 너머로 섬진강의 상류인 마령천이 허연 거품을 내뿜으며 바위 사이로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흘러간다. 그래서 천연적으로 우리 집은 시원한 여름을 나는 최적의 장소다.

우리 집도 아픔이 있었다. 13년 전 부모님은 어머님이 몸이 좋지 않아 눈물을 흘리며 고향을 떠나 인천에서 한 10년 정도 도시생활을 하였다. 그래서 시골집은 폐허가 되었고, 고향은 말 그대로 머나먼 시골일 뿐이었다. 그러나 3년 전 아버님의 “이제 고향이 고프다”던 말씀 한마디에 다시 귀향을 하시게 되었다. 이때부터 우리 집 여름나기는 시골집에서 이루어졌다.

여름휴가의 보고, 시골 고향집
여름휴가의 보고, 시골 고향집 ⓒ 노태영
한 마지기 정도 되는 집터에 아담한 조립식 주택을 짓고 넓은 앞마당에 잔디를 심었다. 집 주위로 화단도 만들고 넝쿨장미와 철쭉으로 담장을 만들어 놓으니, 작은 정원도 생기고 엄마의 공간인 작은 텃밭도 생겼다. 집 거실에 앉아 있으면 멀리 시냇물이 흘러가고 신기하고 영적인 모습을 한 마이산이 살짝 고개를 내밀고 있다. 그래서인지 시원하다는 느낌이 드는 집이다.

우리 가족은 8월 둘째 주 토요일이면 여름휴가가 시작된다. 그래서 8월 둘째 주가 되면 인천에서 서울에서 경기도 고양에서 전주에서 익산에서 하나 둘씩 모여든다. 올해는 대구에 사시는 한 분밖에 계시지 않은 이모님도 오셨다.

각자 하나씩 음식과 과일을 준비하여 모이다 보면 우리들의 잔치를 성대하게 벌일 정도의 음식과 고기가 준비된다. 전주에서 막걸리 공장 공장장을 하는 큰 매형의 아주 특별한 막걸리 역시 준비된다. 여기에 어머님이 미리 준비하신 옥수수며 김치, 고구마, 오이, 무공해 상추와 부추 등이 곁들여지면, 우리들의 마음은 풍요로움의 사치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소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동네에 큰 기쁨을 주는 뒷동산에 어둠이 내리면 저녁준비가 시작된다. 전등불을 마당에 달고, 잔디밭 위에 돗자리를 깔면 보신탕 수육도 파리들을 끌어들이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여름휴가가 시작되는 것이다. 모깃불을 멀리에 피워놓은 여름밤은 어둠을 주위로 불러 모아 작은 성을 만들어 놓고, 더위를 십리 밖으로 물러나게 만든다. 전등불 주위로 모여드는 온갖 매미며 여치, 방아깨비, 하루살이, 귀뚜라미들이 이름 모를 날것들과 한데 어울려 긴 여름을 짧게 마무리한다.

더위를 잊은 채 한 잔 두 잔 마시면서 고단한 생활 이야기며 자식들 자랑,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머님과 아버님은 어느새 무거운 눈꺼풀과의 싸움을 포기하고 짬짬이 기도를 하신다. 여름을 잊은 채. 온갖 걱정과 시름을 놓은 채.

새벽 2시 도착하는 막둥이 동생 가족을 기다리다 보면 반달을 조금 못 채운 달은 우리 머리 위를 훌쩍 지나 내동산 자락 8부 능선에 걸려 있다. 멀리서 달려오는 두 개의 불빛이 우리 집 마당에 짐을 부리면 다시 2차가 시작된다. 일에 치여 고단한 얼굴로 피곤한 길을 달려온 막둥이 내외와 막걸리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면 어느새 동쪽하늘에는 여명이 일기 시작한다. 가족들은 내일의 피서를 위해 아쉬움을 털어내듯 자리를 털며 일어나 집 앞에 있는 모정(정자)으로 방으로 졸음을 눈에 담아간다.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조카들
물놀이에 여념이 없는 조카들 ⓒ 노태영
매미 울음소리에 도저히 잠을 잘 수 없는 시간이 되면 모두 일어나 아침을 준비한다. 해는 어느새 뜨거운 하루를 준비하고 아침은 넓은 잔디마당에서 이루어진다. 강렬한 태양빛이 다소 따갑기도 하지만 오늘 하루 물놀이에는 안성마춤이다. 우리 마음은 어느새 내동산 자락을 훑고 내려온 시낭골 계곡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이를 어쩌나. 시낭골 계곡물은 너무 차가워 아이들이 물놀이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선발대 큰 형님과 큰 매형의 비보가 들려온다.

사실 시낭골 물은 상수도원으로 사용된다. 우리 마을의 오래된 상수도원이다. 물이 당뇨에 좋다는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전해져 요즈음은 전주나 인근 지역에서 식수로 받아가고 심지어는 대구에서도 식수를 받아가는 실정이다.

시낭골 물은 차갑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백중날이면 수제비죽을 끊여 먹으면서 땀띠를 이겨내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물이 너무 차가워 어른들도 3분 이상을 견디지 못한다. 숲이 우거진 시낭골은 원시림의 모습으로 사람들의 접근을 멀리하고 있어서 그런지 올 여름에는 더욱 더 물이 차갑다.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시낭골 산딸기
우리의 시선을 잡아끄는 시낭골 산딸기 ⓒ 노태영
그래서 하는 수없이 동네 앞에 있는 섬진강 상류인 마령천으로 장소를 변경했다. 대형 파라솔 네 개를 이어 만든 커다란 천막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은 어느새 고무보트와 튜브를 이용해 여름의 열기를 잊고 있다. 아버님을 비롯한 어른들은 막걸리잔과 소주잔을 비우면서 한 여름의 더위를 냇물에 흘려보내고, 누님과 형수님은 다슬기 잡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다슬기가 커다란 플라스틱 바가지에 다 채워질 즈음에 점심 삼겹살 파티가 시작된다. 이글거리는 참숯불에 구워낸 삼겹살은 셋이 먹다가 넷이 죽어도 모를 지경이다. 오고가는 술잔이 늘어가면서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나올 즈음에 아버님은 서서히 자리를 접기 시작한다.

다슬기를 잡고 있는 형님 내외
다슬기를 잡고 있는 형님 내외 ⓒ 노태영
짐을 싸들고 집에 오면 어느새 석양이 보기 좋게 물들인 우리 집은 그렇게 멋있을 수가 없다. 서울로 갈 사람은 서울로, 인천으로 갈 사람은 인천으로, 전주로 갈 사람은 전주로 가고 남은 사람은 올 여름의 휴가를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 밤 잠을 청한다.

남은 음식을 자식들에게 골고루 다시 챙겨주시는 어머님의 손등에 주름은 많지만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햇빛에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서 번져나오는 아버님의 미소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을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우리 가족끼리만 보내는 휴가도 좋지만 부모님을 비롯하여 온 가족이 모여 보내는 여름휴가는 더욱 좋다. 만나기 어려운 형제자매들을 만날 수도 있고, 수많은 친조카와 외조카들을 만날 수 있는 만남의 장이 더욱 좋다. 사촌도 멀게 보이는 요즈음 세태를 생각해 보면 부모님이 엮어 놓은 수많은 인연들이 모여 서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현재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서 지금보다 나은 미래의 가족들 모습을 예견하는 것도 어렵지만은 않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향 시골집에서 뚝배기 냄새 나는 휴가를 보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내년 여름이 벌써 기다려지는 것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우리 가족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2006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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