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의 원수연과 <순정만화>의 강풀이 토크쇼에서 만났다.
19일 부천 복사골문화센터에서 이른바 '토크쇼 만화만담'이 열린 것. 초대손님은 원수연과 강풀.
두 사람은 자신의 만화인생은 물론 작품세계, 근래 들어 이어지고 있는 만화원작사업에 대한 생각, 더불어 예비만화가들에 대한 충실한 조언까지 아낌없이 들려줬다.
20일 폐막한 부천국제만화축제의 주요 행사이기도 했던 이 이색 토크쇼는 두 작가의 새로운 매력에 다시 한 번 빠져들 수 있었던 색다른 행사였다.
"만화가가 될 줄 몰랐다" 이구동성
첫 화제는 두 작가의 조금은 늦은 등단 시기. 그다지 만화가가 되고픈 생각은 없었던 두 사람은 늦깎이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원수연은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를 좋아했지만 만화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었다. 그는 사회생활을 하던 중 "갑자기 만화에 빠져" 만화가가 된 경우.
원 작가는 "사회인이 돼 빠지게 된 만화는 어릴 때와는 또 달랐다"며 "너무 마력적이어서 24시간 그 속에서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고 돌아봤다.
올해 서른셋인 강풀은 스물아홉에 만화가로 데뷔했다. "고등학교 때에도 심지어 대학졸업 때에도 만화가가 될 줄 몰랐다"며 "언제 시작하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다만 하고 싶은 걸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욕플'은 사양하겠어요"
팬들의 사랑을 먹고 사는 만화가. 당연히 팬들과의 교류, 교감을 통해 그 사랑을 확인한다. 물론 그 확인방식은 다소나마 차이가 있다.
인터넷을 통해 등단, 지금껏 활동하고 있는 강풀 작가에게 힘을 주는 것은 단연 팬들의 리플. 그는 "욕도 듣곤 하지만 응원도 많이 해주고 있어 힘이 된다"고 말했다. 또 그는 "나이든 팬들은 리플보다 이메일을 선호하더라"는 분석까지 곁들였다.
그는 무조건 작가들을 욕하는 '욕플'에 대해 "처음 1, 2년간은 쫓아가 때리고 싶을 정도였다"며 "지금도 작가에 대한 애정이 실린 악플은 감사히 받지만 '욕플'은 정말 사양하고 싶다"고 말했다.
올해로 데뷔 17년을 맞는 원수연은 리플보다는 팬레터가 교감의 원동력. 물론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매체변화에 따라 팬들의 반응을 다양하게 접한 터. 편지나 이메일 모두 그에게 값지지만 특히 감사한 것은 오래된 팬들이다.
"내 만화를 읽었던 소녀팬들이 어머니가 되고, 아직도 서로 연락하고 만나 수다를 떨기도 한다"며 "오랜 시간 변치 않고 사랑해주는" 팬들에게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온라인은 강풀의 비상구였다
한편 온라인만화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면서 만화 팬들이 궁금해 하던 강풀 작가의 데뷔와 활동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2002년 봄, 당시 대세를 이루던 에세이툰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를 선보인 그는 웹툰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강풀은 스펙터클 넘치는 주제의식을 담은 작품들로 온라인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더욱이 청춘, 멜로, 코디미, 순정, 역사 등 다양한 장르를 자유로이 넘나들고 있어 더욱 많은 세인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그러나 강풀 작가의 온라인 데뷔와 그 성공은 일종의 궁여지책의 결과였다. "온라인 말고는 원고를 실을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
그는 "경력도 전무하고 그림도 별로인 나를 써주는 곳은 없었다"며 "졸업후 오프라인 쪽을 알아보며 1년을 백수 생활을 했었는데 급기야 내 만화를 대중에 직접 보여 인정받자는 생각에 온라인 쪽으로 데뷔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화가 원작인 작품, 별개로 취급해야"
영화, 드라마, 게임 등 만화를 원작으로 한 다양한 관련 사업이 발전하면서 원작만화가 각광받기 시작한 지 오래. 두 작가의 작품들도 드라마, 영화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분명 만화가로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일도 없을 수 없다. 그들은 원작자로서의 기대와 우려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원수연은 "드라마 <풀하우스> 제작 당시 만화가 드라마화 하는 과정에서 양측 팬들 간의 캐릭터와 캐스팅을 둘러싼 트러블도 있었던 게 사실"이라며 당시의 상황을 들려주기도 하고, "그러나 각각의 작품은 서로 다른 별도의 작품으로 취급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캐스팅의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단지 원작의 충실성을 위해 현장에서 이러쿵 저러쿵 작가가 개입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풀은 그간 발표한 6편의 작품이 이미 영화로 제작됐거나 계약이 끝마쳐진 상태. 강 작가는 "<순정만화>와 <바보>의 경우 원작에 충실하기를, <아파트>와 <타이밍>과 같은 경우엔 원작과 다른 이야기로서 영화적 장치가 힘을 더해주길 바란다"며 여기에는 작가의 개입도 적당히 필요하다는 뜻을 내비쳤다.
"저도 순정만화예요"
이어 그동안 팬들이 궁금했던 질문들에 대한 솔직담백한 답변도 이어졌다. 그 중 하나가 원수연의 작품을 빛내는 인물들의 패셔너블한 의상들.
이에 대해 원수연은 "사실 인물이 같은 옷을 입고 나와야 리얼리티가 사는데 아무래도 순정만화로서의 미학을 추구하다 보니 작가적인 욕심을 부리게 되는 것 같다"며 "새로운 것을 그리고픈 욕심"과 "순정만화가로서 사소한 디테일에 집착하게 되는 점"을 그 이유로 들었다.
여기에 첫 회부터 줄곧 같은 옷만 입고 나오는 자신의 만화 캐릭터가 염려(?)됐는지 강풀 작가가 슬며시 "저도 순정만화예요(웃음)"라고 대답해 참석자들이 박장대소하기도 했다.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두 작가는 만화가가 되고 싶은 만화가 지망생들을 위해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핵심은 두 가지. '그림보다는 스토리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을 갖는 것'.
원수연 작가는 "매순간 충실한 감수성으로 사는 게 좋은 만화가가 될 수 있는 길인 것 같다"며 "테크니션 보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만화에서 그림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림은 스토리를 전달하는 수단일 뿐"이라고 밝혔다.
평소 원 작가는 친한 후배였던 강풀에게 "그림 좀 잘 그리라"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지만 어느날 강풀 작가의 작품을 보곤 "글과 그림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것에 놀랐다"며 "그림 보다는 스토리가 중요하고, 그림은 스토리를 떠받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강풀은 "원수연 선배님처럼 평소 그림 잘 그리는 작가를 너무도 부러워했지만 고수는 그림을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게 이제껏 만난 선생님들의 공통점이었다"고 말했다. 더불어 그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면 자기가 그린 그림을 대중에 발표하고, 인정받고 인기를 모으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번 행사를 기획하고 사회를 맡기도 했던 박성식 부천국제만화축제 운영위원은 "기존의 축제 행사들과는 다르게 만화문화를 보다 대중화하자는 의도로 마련된 행사"라며 "토크쇼 참가자 모두 궁금하고 가렵던 부분을 잘 긁어내고 끌어내 일반에 더욱 친숙한 만화행사가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 이 만화토크쇼가 축제의 킬러콘텐츠로 자리잡는 것은 물론, 앞으로 독립행사로서 이어지길 기대해본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 CT News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