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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청에 근무하는 문인천씨는 자신을 중독자라고 말한다. 더는 자기 의지로는 끊으려고 해야 끊을 수도 없는 '달리기'라는 마약에 그는 중독됐다.
지난 19일 부산에는 태풍 '우쿵'의 영향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장대비가 내렸다. 비는 밤 11시가 넘도록 계속 내렸다. 이날 문인천씨는 이 비를 맞으며, 오후 6시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이날 부산에서는 섬머비치 울트라마라톤대회가 열렸다. 섬머비치 대회는 부산 해운대에서 출발해 15시간 내에 울주군 진안을 돌아 다시 해운대에 이르는 100km 구간을 달리는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경기다.
온몸에 퍼붓는 장대비를 맞으면서 쏟아지는 잠과 싸우며 70여 km를 달리다 보니 몸이 의지를 벗어나고, 80km 구간을 넘어서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엄습했다. 쏟아지는 잠과 떨어지는 체력은 정신을 혼미하게 하고 이대로 계속 달리다가는 온몸의 진기가 빠져나가 쓰러져 영영 일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그를 두렵게 했다.
하지만, 새벽빛이 어스름하게 밝아오자 해낼 수 있다, 아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멀리 골인지점이 보이면서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나긴 레이스의 끝이 보인다. 힘을 내 달려보지만 물먹은 솜처럼 축 처져 말을 듣지 않는 몸은 달리고 있는 건지 걷고 있는 건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골인지점에 도착해 눈물범벅이 된 아내의 얼굴이 보이는 순간, 온몸이 '해냈다'는 쾌감으로 짜릿해졌다.
100km를 달리면서 문인천씨는 내내 '내가 왜 이런 짓을 할까?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너무나 힘이 들어서, 너무 힘들어 죽을 것만 같아서다. 하지만 그뿐.
그는 벌써 오는 12월 31일 강진에서 열리는 100km 강진 해맞이 울트라 마라톤대회에서 달릴 기대감에 부풀어 있다.
15시간 안에 100Km를 완주해야 하는 울트라 마라톤은 인간한계에 도전하는 극한의 스포츠다. 일반 마라톤대회와 달리 울트라 마라톤은 코스를 분석하고 전략을 짜고 페이스를 조절하고 몸에 수분과 영양을 공급하는 일부터, 코스 곳곳에 산재한 위험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일까지 혼자서 해내야 한다.
문인천씨는 그러기에 울트라 코스를 완주했을 때 느끼는 쾌감과 성취감은 다른 어느 경기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처음 마라톤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하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마라톤을 하고 있었기에 그들과 어울리기 위해 지난해 5월부터 마라톤을 시작했다. 처음 5km 코스를 달렸을 때 그는 '죽는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달릴수록 자신감이 생겨 5km 코스에서 10km 코스로, 다시 하프코스로, 풀코스로 도전하게 됐고 지난해 60km 울트라 코스 완주에 이어 이번에 100km 울트라 코스까지 도전하게 된 것이다.
화순군청마라톤클럽 훈련부장이기도 한 문인천씨는 일주일에 서너 차례 이상 너릿재와 안양산 등지를 달리며 꾸준히 자기의 몸을 단련해 왔다. 한 달에 두어 번은 화순읍에서부터 안양산을 가로질러 이서면소재지까지 30여km에 이르는 도로를 따라 달린다. 도곡과 도암면을 지나 운주사를 거쳐 나주 다도댐을 돌아오는 구간도 그가 즐겨 찾는 훈련코스다.
문인천씨는 지난 9월부터 마라톤일지를 기록하고 있다. 일지에는 그가 참가한 대회와 달린 거리, 코스에 대한 분석은 물론 평소 훈련하면서 달린 거리와 그날의 컨디션 등이 꼼꼼히 기록돼 있다. 이런 자기관리가 마라톤을 시작한 지 1년여만에 울트라 코스를 완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인지도 모른다.
문인천씨는 마라톤을 하면서 완주를 해야겠다는 욕심을 갖지 않는다고 말한다. 완주할 수 있으면 좋고 못하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겠는가. 다만 달리는 것을 즐길 뿐이다. 코스 주변의 경관과 달리는 사람들과의 슬쩍 스쳐지는 만남 등 달리면서 느껴지는 모든 것이 즐겁다.
주변에서는 그런 힘든 일을 왜 하느냐고 말리지만 그는 골인지점에 도착하는 순간 느껴지는 성취감과 한 가지를 더 해냈다는 자부심이 좋아서 마라톤을 한다고 말한다.
지금은 몸도 길이 들었는지 처음엔 5km를 뛰고도 힘이 들었지만 이제는 100km 울트라 코스를 완주하고도 거뜬하다. 평생에 한 번 42.195km 풀코스를 완주하지 못하는 사람도 부지기수인 것에 비하면 달리고 또 달려도 지치지 않고 그의 의지대로 따라주는 그의 몸이 한편 고맙다.
문인천씨는 각종 대회에 참가할 때마다 일부러 '화순군청'이라고 적힌 운동복을 입고 달린다고 한다. 마라톤을 통해서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에게 '화순'을 알리고 싶은 작은 소망 때문이다. 달리는 동안 '화순'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있으면 뿌듯하고 동향이라도 만나면 그 대회가 더욱 기억에 남는다.
그는 마라톤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공식기록으로 700km를 달렸다. 1년여 동안 각종대회에서 60km 울트라 코스는 1번, 42.195 풀코스는 5번, 하프코스는 11번, 10km 코스는 10번 이상 완주했다. 훈련하면서 달린 거리까지 합하면 1년여 사이에 1800km를 달렸다.
문인천씨는 앞으로 공식대회 기록으로 5천km를 완주하고, 훈련거리까지 합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거리인 4만49km를 달리고 싶다고 말한다. 물론 무모한 도전일 수도 있다. 죽을 때까지 달려도 못 이룰 꿈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달리는 것이 즐겁고 그 꿈이 있기에 그는 지금 행복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화순의 소식을 알리는 디지탈 화순뉴스(http://www.hwasunnews.co.kr)에서 볼 수 있습니다. SBS U포터 뉴스에도 송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