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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정신과 열정을 잃어갈 쯤 백제 한국어 중심 오은석 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 정신과 열정을 잃어갈 쯤 백제 한국어 중심 오은석 원장의 강의를 들었다. ⓒ 양중모
그러다 오 원장의 특강을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리고 특강을 들은 후 그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그가 수강생 500~600명, 강사 20명의 규모로 학원을 만드는 과정의 출발점이 되었던 것은 제대로 된 한국어 교육을 하고 싶다는 그의 열정 때문이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류’라는 말을 우리나라 언론에서 연일 보도하고 있기에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이 ‘뭐 대단해’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중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쳐서 먹고 살겠다는 결심을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중국 상하이는 더욱 그렇다. 한 중국 친구가 이런 말을 해주었다.

“상하이에는 수많은 외국 기업이 있다. 일본 기업 등 한국 기업보다 돈을 많이 주는 곳도 많은데 굳이 배울 것이라면 한국어를 배울 필요가 있겠느냐?”

그것이 2006년 8월에 들은 얘기다. 이처럼 비 등 가수 뿐 아니라 <대장금> 등 드라마까지 인기를 누리는 등 한류가 절정 상태에 이른 지금도 막상 중국 학생에게 한국어를 배울 생각 없냐고 물으면 부정적 대답이 나오곤 한다. 그런데 오원장은 ‘한국어를 가르쳐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3년 전인 2003년에 했다고 한다.

학생들이 올린 게시판에 H.O.T라는 단어가 보여 한류가 중국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학생들이 올린 게시판에 H.O.T라는 단어가 보여 한류가 중국에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 양중모
당시도 한류가 몰아치고 있었지만, 막상 한국어를 전문적으로 가르치는 학원은 없었다고 한다. 그저 외국어 학원에서 ‘한류’, ‘한류’ 하니까 그냥 한 번 한국어 강좌를 열어볼까 하는 모양새만 보일 때였다. 그래서 그는 외국어 학원에 가서 과감한 제안을 한다.

한국어 강좌를 열고 50:50으로 수익을 나누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한국어 교재를 만들 생각을 하고 전단지를 돌리는 등 바쁜 생활을 시작한다. 그리고 드디어 첫 강의날이 왔다. 예상 밖으로 한국어를 배우러 온 학생은 17명. 사람에 따라 적게 느낄 수도 있겠지만, 수요도 적게 예측되었을 뿐 아니라 오 원장 혼자 뛴 결과라고 생각한다면 향후 수익성에 대한 기대가 생기는 대목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희망적인 상황은 불행인지 다행인지 오 원장과 학원을 갈라놓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첫 강의에 예상 외로 많은 수강생이 오자 학원 측에서 수익성을 생각해 그에게 새로운 계약 조건을 제시했다. 높은 강의료를 줄테니 50:50이 아닌 고정 임금제로 가자고 했던 것이다. 당시만 해도 그 조건이 그에게는 유리했지만 받아들이지 않았다. 경영진이 한국인이었기에 인간적인 배신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한국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조건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작은 나라이기에 외국어를 배워야 산다고 들어왔던 내게 외국인이 우리나라 언어를 보는 모습은 매우 신기했다.
작은 나라이기에 외국어를 배워야 산다고 들어왔던 내게 외국인이 우리나라 언어를 보는 모습은 매우 신기했다. ⓒ 양중모
결국 그는 스스로 한국어를 가르치자는 생각을 한다. 당시 상하이에서 중국인이 한국어를 제대로 배울 기회가 없다고 판단했기에 더욱더 그는 스스로 기회를 찾고자 하는 결심을 굳힌다. 한국어만을 가르치는 학원도 없었고, 상하이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대학들도 그리 높은 수준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제대로 된 한국어를 가르쳐보자’는 생각과 ‘한국어를 가르쳐서 먹고 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학원은 어느덧 3년이 되었고 이제는 분점까지 낼 정도로 제법 큰 규모가 되었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그가 아주 특출해서라기보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하나의 성과물을 이루었다는 사실이 무척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렇지 않은가! 누구나 어린 시절의 꿈이 있고, 젊은 시절의 꿈이 있지만 때로는 현실과 타협하는 경우가 더 많다. 눈앞의 이익이 때로는 훗날 가져올 과실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그는 내게 또 다른 자극을 가져다주었다.

“처음에 제가 하고 싶었던 것은 교수였습니다. 교환학생으로 중국에 온 이후에 교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교수님께 가서 상담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교수가 대뜸 하는 말이 ‘자네 돈 좀 있나?’ 이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이 없다고 대답했더니 ‘그럼 포기 하시게나’고 말을 하시더군요.”

그의 처음 꿈은 지금 하는 일과 비슷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돈이 있어야 한다는 교수의 말에 포기를 했다고 한다. 물론 일자리를 찾아보다 몇 몇 대학에서 강사를 해달라는 연락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생각보다 적은 임금에 만족할 수 없어 그 길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대신 무역 회사에 이른바 ‘묻지마 취업’을 하게 된다.

그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부심도 강해보였다
그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자부심도 강해보였다 ⓒ 양중모
상하이 옆에 있는 작은 도시에서 일을 시작했고, 가끔 상하이에 출장 오면서 한국어를 가르쳐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결국 회사를 나와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했다.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 과감히 도전을 택한 그를 보면서 그보다 어린, 아니 그가 한국어를 가르치기로 결심한 시절보다 어린 내 자신에 대한 많은 반성이 들었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게다가 이미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안주하려는 생각이 강할 법 한데도 여전히 보다 나은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육 기관을 꿈꾸는 그의 말에 가슴이 쿵쾅거리고 말았다. 그보다 어린 나라면 훨씬 더 많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나는 무엇이 두려워서 이토록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란 말인가. 다행스럽게도 때로는 기회를 잡아 성장하는 것보다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기도 하다는 그의 말에 격렬하게 뛰던 가슴은 조금씩 진정되었다.

“고급 중국어를 구사해야 하고, 한국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강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그가 제일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강사를 구하는 문제였다고 한다. 그가 원하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하는 인재를 찾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중국어와 한국어에 능숙하며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잘하는 능력까지 갖추기란 당연히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는 요구 조건 중 한 가지 정도는 서류 전형, 면접, 강사들 앞에서 시강, 학생들 앞에서 시강까지 다 통과한 사람에 한해서 조금 더 교육시킨다고 했다.

그 뿐 아니라 경쟁 학원이 생기는 등 여러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그는 여전히 학원이 커가는 과정에서 겪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고 있는 듯 했다. 그가 남들보다 앞서 기회를 잡고 발 빠르게 뛰어 하나의 성과물을 이룬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그의 꿈은 커가는 중이었다.

강의실에는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강의실에는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있었다. ⓒ 양중모
“지금껏 한류가 한국어 교육에 대한 수요에 긍정적 영향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 엑스포를 거치고 나면 중국의 경제력은 아마도 우리의 경제력을 앞설지도 모릅니다. 그때가 고비일 것입니다. 한국어가 중국인들에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지, 지금은 중국보다 잘 사는 나라라는 경외감이 있지만 만약 그 상황이 역전된다면 쉽지 않은 도전이 될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그 때쯤이면 정말로 더 큰 도전에 직면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한국어 교육에 대한 품질을 자신하고 있었고, 그 상황이 두려울지라도 비겁하게 몸을 숨길 생각은 전혀 없어보였다. 중국에 있다 보면 어깨에 잔뜩 힘만 들어간 한국인을 보기도 했기에, 중국에서 한국어를 뿌리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에게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어쩌면 그의 도전은 급속도로 발전하는 중국 경제와 맞서야 하는 우리들 도전의 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그 도전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오 원장이 해준 이 말을 마지막으로 기억해보는 것이 어떨까?

“공부해야 합니다. 중국어는 물론이고 역사, 철학 등을 공부해야 합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자면 중국에 와서 기회를 찾고자 한다면 바람을 피워도 중국 여자랑 피고, 술을 마셔도 중국 친구와 마시는 등의 노력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을 진심으로 이해하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한류라는 말만큼이나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국인들의 실수요가 있을지 궁금하여 오 원장을 인터뷰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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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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