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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앞에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마니산'의 끝자락들입니다.
집 앞에 너른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앞에 보이는 산은 '마니산'의 끝자락들입니다. ⓒ 이승숙
2004년 봄에 우연히 들길 걷는 재미에 빠지게 된 나는 매일 저녁 무렵이면 들길을 걸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걷기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슬며시 뛰어 보았어요. 200m도 채 못 뛰어서 숨이 찬 나는 뛰는 걸 멈추고 다시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걷다가 뛰다가를 반복하다가 6월쯤에는 쉬지 않고 뛸 수 있는 경지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차츰 뛰는 재미를 느낀 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혼자서 들길을 뛰었습니다. 마니산 입구까지 뛰어갔다가 다시 돌아오면 약 4km 정도 되는 거리였는데 어느 날부터는 그 정도까지도 뛸 수 있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러는 겁니다.
"여보, 고인돌 광장에서 마라톤이 열린다는데 당신도 한 번 참가해 볼래?"
그런데 저는 그 때까지만 해도 마라톤은 아무나 못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저처럼 그냥 '무가다'로 뛰는 사람은 정식 마라톤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에이 내가 어떻게 뛰어? 나 10km 못 뛰어."
그랬더니 남편이 자꾸 부추기는 겁니다. 당신 정도의 실력이면 얼마든지 10km 뛸 수 있다며 그냥 시험 삼아 한 번 뛰어 보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강화해변 마라톤에 참가했어요.

고인돌 광장에 가니까 얼마나 사람이 많이 왔는지 나는 그냥 막 흥분이 되는 거예요. 기분이 으쓱해지고 나도 저 대단한 무리에 끼어서 달릴 수 있다는 마음에 기분이 하늘을 날아오를 것 같았어요.

준비 운동을 하고 드디어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을 했습니다. 그 다음 하프, 10km 순서로 출발을 했습니다. 출발선을 지날 때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그냥 들길 걷다가 조금씩 달리기 했던 내가 이 마라톤의 엄청난 행렬 속에 끼어서 달릴 수 있다니, 저는 그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어요.

저는 그 날 좋은 성적으로 들어왔어요. 1시간이 될락말락하는 시간으로 들어왔으니 처음 출전치곤 아주 잘한 거였어요. 10km를 다 뛰었는데도 하나도 힘이 안 들었어요. 이대로 얼마든지 더 달릴 수 있을 거 같았어요.

2004년 10월에는 서울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쌀사랑 마라톤'에도 출전했습니다. 같이 출전한 제 고향 후배는 하프를 신청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고만 10km 밖에 못 뛰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마라톤 연습을 해서 그 다음 해, 2005년에 풀코스를 두번씩이나 완주했습니다.
2004년 10월에는 서울 상암 운동장에서 열린 '쌀사랑 마라톤'에도 출전했습니다. 같이 출전한 제 고향 후배는 하프를 신청했다가 길을 잘못 들어서 고만 10km 밖에 못 뛰었습니다. 그래서 무척 아쉬워 했습니다. 하지만 계속 마라톤 연습을 해서 그 다음 해, 2005년에 풀코스를 두번씩이나 완주했습니다. ⓒ 이승숙
그 해 10월에 상암동에서 열린 '쌀 사랑 마라톤'에도 출전했습니다. 상암동은 강화와는 달리 코스가 그다지 좋지 못했습니다. 오르막도 많고 길도 잘 몰라서 1시간하고도 15분이나 걸려서 들어왔던 거 같습니다.

어쨌든 그 해 저는 두 번씩이나 10km를 뛰었습니다. 그렇게 뛰고 나니까 뛰는 거에 대해서 어려운 마음이 별로 안 들더군요. 10km쯤은 언제든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해 겨울을 넘기면서 달리기에 소홀해졌습니다. 밖이 너무 추워지니까 그만 달리기도 유야무야 넘어가게 되더군요. 다시 봄이 왔지만 예전처럼 그런 열성을 가지고 다시 달려지지는 않더군요. 옆에 누군가가 있어서 같이 밀어주고 당겨주면서 달린다면 아마도 나는 달리기를 계속 할 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들길을 나 혼자 달리다 보니 비 오면 비 온다고 못 하고 눈 오면 눈 와서 못 하고 추우면 추워서 못 하고 그렇게 하다보니 그만 달리기와 멀어지더군요.

하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달리기가 살아 있습니다. 언제든지 또 시작하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숨어 있습니다.

언젠가 남편은 저더러 그랬어요.
"당신 참 대단해."
"뭐가 대단해? 대단할 거 하나도 없구마는…."
"왜 안 대단해? 나는 마라톤 10km 뛴 여자를 아직까지 보지를 못했다. 그러니 당신이 얼마나 대단해."

그 말 듣고 보니 그 말도 옳다 싶었습니다. 저 정말로 대단합니다. 10km를 세 번씩이나 뛰었거든요.

다시 9월이 오고 있습니다. 고인돌 광장에선 또 마라톤이 열리겠지요? 그러면 저는 또 참가할 겁니다. 10km를 다 못 뛰더라도 괜찮습니다. 해마다 참여한다는 그 쪽에 의미를 두려고 합니다. 쉰이 되고 예순이 되어도 내 마라톤 행진은 계속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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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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