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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자유무역협정(FTA), 미군기지 문제 등을 둘러싸고 한국 내에서는 반미 대 친미의 대립구도가 날이 갈수록 첨예해지고 있다.
그런데 반미냐 친미냐 하는 것은 결코 고정불변적인 것이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한국의 민족적 이해관계에 따라 향후 얼마든지 조정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선악의 가치기준이 존재하지 않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상태'(토마스 홉스) 하에서, 국가 간의 동맹 혹은 대결은 현실적 이해관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이 친미이건 반미이건 간에, 미국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끊임없이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끊임없는 의심을 통해 미국에 대한 최선의 태도를 강구하는 것이 현실 국제관계를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반미냐 친미냐를 결정할 때에는 '미국이 과연 우리 자신에게 신뢰할 만한 나라인가' 하는 점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미국이 아무리 부강하고 쓸모 있는 나라일지라도 우리에게 아무런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면, 그런 나라와 동맹까지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럼, 미국의 신뢰성 여부를 판단할 때에 무엇을 핵심 기준으로 삼아야 할까? 많은 기준이 있겠지만, 그 무엇보다도 '미국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과연 신뢰감을 주었는가'라는 기준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미래에 대한 합리적 예측은 과거 및 현재의 데이터에 대한 엄밀한 분석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과연 신뢰감을 주었는가 하는 점을 판단할 때에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될 사례가 있다. 그것은 해방 직후 대마도 귀속문제와 관련하여 미국이 한·일 양국 앞에서 취한 태도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럼, 이 사례를 한 번 검토해 보기로 한다.
미국의 '일본편향성'
대한민국 건국 직후인 1948년 8월 18일 및 9월 9일에 대마도 반환 요구를 제기한 바 있는 대통령 이승만은 그 이듬해인 1949년 1월 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문제를 또다시 거론하였다. 대마도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일본에 대해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이승만의 발언은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국내 언론은 이승만의 발언 내용을 상세히 보도하였고, 국회에서도 향후 대일강화회의에서 대마도 반환을 관철할 것을 촉구하는 건의안이 제출되기도 하였다.
대마도 반환 요구는 한국 국내에서뿐만 아니라 당연히 일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때 일본의 태도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가 아니었다. 일본측은 이승만의 태도에서 위협을 느끼고 즉각적인 대응에 들어갔다. 일본 요시다 내각은 한국측 주장에 대한 반대 자료를 준비하기 위하여 외무성 산하에 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한국 정부를 상대로 강력한 항의의 뜻을 표시하였다.
그런데 단독의 힘으로는 한국에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던지, 요시다 내각은 미국에 'SOS'를 타전했다. 이승만의 요구를 막아 달라고 연합군최고사령부(SCAP) 맥아더 장군에게 부탁한 것이다. 미국의 힘을 빌려 한국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무마하려 했던 것이다.
그럼, 이에 대해 미국은 어떻게 반응했을까? 미국은 한·일 양국 사이에서 과연 어떠한 태도를 취했을까? 역내 패권국가인 미국은 공정한 재판관이 되어 '솔로몬의 지혜'를 발휘했을까? 아니면, 양국과의 관계를 고려하여 입장 표명을 보류했을까?
이때 미국이 취한 태도는 너무나도 '일본 편향적'인 것이었다. 맥아더 사령부측은 이승만의 발언이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방해한다는 판단 하에 한국 정부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동시에 유감을 표시하였다. 미국에게 그럴 권한도 없겠지만, 미국은 대마도 문제에 대한 최소한의 검토 작업도 거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일본의 입장을 두둔한 것이다.
이 같은 미국의 태도에 놀란 이승만도 '미국이 반대하는 상황에서는 대마도 문제를 거론하기 힘들다'는 판단 하에 그 후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더 이상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미국의 고압적인 태도가 한국 정부의 대마도 반환 요구를 무마시켜 버린 것이다.
향후 보다 더 많은 사례들이 제시되어야 하겠지만, 이승만 당시의 이 사건은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던지고 있을까? 여기서는 2가지만 살펴보기로 한다.
일본은 미국의 '지역 대리점'
첫째, 미국은 한국의 국익을 고려하는 나라가 아니라는 점이다. 한 국가에 있어서 영토문제는 핵심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대마도 문제도 당시의 한국 정부에게는 핵심적인 문제 중 하나였다.
그런데 당시 미국 정부는 이러한 한국의 입장을 무시한 채 한국의 요구가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을 방해한다는 판단 하에 일본이 아닌 한국에게 유감의 뜻을 표시하였다. 1948년 10월 7일 '미국의 대일정책에 대한 권고'라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문서를 채택한 이래 일본을 패전국이 아닌 동맹국으로 대우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미국의 입장에서는, 일본에게 '함부로' 대하는 한국을 그냥 묵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있겠느냐"고 하지만, 미국에게 있어서 일본이라는 나라는 '아픈 손가락'이고 한국이라는 나라는 '안 아픈 손가락'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미국은 한국의 핵심 국익이 걸린 대마도 문제에서 일본의 입장을 일방적으로 두둔하였다. 이 점은 오늘날 독도 영유권과 관련한 미국의 태도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미국은 한국보다는 일본과 더 가까운 나라라는 점이다. 일본은 영국·이스라엘과 함께 미국의 '지역 대리점' 역할을 하고 있는 나라다.
일부 한국인들은 '향후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미국의 역내 대리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런 '꿈'은 결코 쉽사리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19세기 중반 이래 미국인들은 한국보다는 일본이 자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더 유용한 나라라는 판단을 해 왔기 때문이다. 150년 넘게 형성된 미국의 동아시아관(觀)이 하루아침에 수정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국의 일본 편향은 우리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의 씨앗을 내포하고 있다. 왜냐하면,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갈등과 대립이 점차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중재력이 약화됨에 따라 한·일 양국 간에는 독도 영유권과 배타적경제수역(EEZ) 등을 둘러싼 갈등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그리고 금년 4월 동해 EEZ 탐사계획 당시 일본이 해상보안청 소속 탐사선을 파견하고 한국도 이에 대응하여 해경을 파견한 것처럼, 한·일 양국은 상호간 문제의 해결을 위해 군사력까지 사용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한·일 양국이 군사적 대결의 조짐까지 보이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앞으로도 계속 일본을 일방적으로 두둔한다면, 이는 한국의 안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던지는 일일 것이다.
특히 이는 전작권 문제와 관련하여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다. 한·일 양국 간에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군사적 대립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군 전작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을 반드시 생각해 두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이 한국편? 그것은 착각
2005년 3월 일본 자위대 정찰기가 독도 상공에 근접했을 때, 윤광웅 국방장관은 "독도에 군을 파견할 수도 있다"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 물론 평시작전통제권만으로도 한국 정부가 독도에 군대를 파견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 양상으로 발전할 경우에는 미국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갖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일본을 편들 것인가, 아니면 한국을 편들 것인가? 이제까지 미국은 어느 쪽을 두둔해 왔는가?
이러한 점들을 본다면, 일본으로부터 한국 영토를 제대로 지키기 위해서라도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자주적이 될 필요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점들을 바탕으로 미국의 신뢰성 여부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이 글에서 설명한 이승만의 대마도 반환요구 사례에서도 나타나는 바와 같이, 미국은 한국의 핵심이익을 배려하는 나라도 아니며 또 한일관계와 관련하여 공정한 입장을 취하는 나라도 아니다. 그러므로 미국은 한국에게 신뢰감을 주는 나라가 못 되는 것이다.
이처럼 미국에게서 별다른 신뢰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에 한국 내에서 반미감정이 고조되는 것도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미국이 정의로운 나라인가 아닌가를 떠나서 미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반미운동이 고조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에게 별다른 신뢰감을 주지 못한 미국이 미래에는 우리에게 신뢰감을 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재론의 필요도 없을 것이다. 과거 및 현재에 발생하지 않은 사건은 특단의 변화가 없는 한 미래에도 발생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게서 별다른 신뢰감을 느낄 수 없다면, 전작권 문제나 FTA 혹은 미군기지 문제 등과 관련하여 한국의 국익을 보다 더 확실히 챙기는 것이 합리적이고 지혜로운 태도가 될 것이다. 또 미국을 신뢰하기 힘들다면, 한미동맹도 끊임없이 재검토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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