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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이 다 지나간 이야기인 줄 알았더니, 언론인 채명석(57)씨가 <단도와 활>(미래M&B)이란 신간을 통해 뒤늦게 이 논쟁에 뛰어들었다.

고작 일본에 2~3년 주재한 경험을 가지고 마치 일본을 속속들이 아는 듯이 혹세무민했던 일부 논객들을 떠올리면, 저자가 25년째 일본에서 살고 있는 언론인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다가오는 무게감이 다르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일본인들의 다테마에(겉으로 드러내는 모습)와 혼네(속마음)를 구분하지 못 한다"라는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오히려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을 높인다.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을 도입부에 끌어들인 것은 다소 상투적이라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겨갈수록 저자의 '충정'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 논쟁이 우리 사회에 끼친 해악과 그로 인해 향후 닥칠지도 모르는 나라의 불행이 이 '지일파' 언론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이다.

저자는 임진왜란 직전인 1590년 일본에 파견된 사절단의 정사 황윤길과 부사 김성일이 돌아와 정반대 내용의 보고서를 선조에게 올린 것을 첫 번째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으로 봤다. 널리 알려진 대로 서인 황윤길은 "왜가 반드시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봤으나 동인 김성일은 "왜는 평화롭기 때문에 쳐들어올 낌새가 없다"고 보고했다.

그로부터 300년 뒤인 1881년 고종은 어윤중과 박정양 등 12명으로 구성된 신사유람단을 일본에 파견했다. 한반도가 식민지화의 과정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어윤중은 돌아와서 "먼저 개화한 일본이 조선에 허세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한 반면, 박정양은 "일본이 서양과 통교한 뒤 부강해진 것처럼 보이나 외국에 진 빚이 많기 때문에 실상은 별로 없다"고 정반대의 의견을 올렸다. 이것이 역사상 두 번째 벌어진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이다.

일본의 정체성과 방향을 파악하는 것은 이렇듯 우리 민족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책 제목에서 '단도'는 일본 우익진영이 만든 중학교용 역사교과서에서 "한반도는 일본을 향해 돌출된 흉기"라고 기술한 것에서 따왔다. 저자는 일본열도가 오히려 언제 한반도를 향해 화살을 날릴지도 모르는 '활'이라고 주장한다. "일본을 똑바로 볼 수 있을 때 세 번째 화살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한반도에 언제 화살 날릴지 모르는 활"

그러나 역사가 증명하듯 일본과 일본인의 정체성을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저자는 역사상 벌여 온, 또 벌이고 있는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은 부질없는 짓이라고 단언한다. 일본은 "신기루처럼 수시로 모습을 바꿔왔으며, 또 바꿔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면서 "일본이 있다고 보이는 것은 그들의 '다테마에' 때문이고, 없다고 보이는 것은 그들의 '혼네'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다테마에-혼네'와 함께 저자가 일본의 정체성을 규명하기 위해 잡은 키워드는 '아이마이사(애매모호함)'과 '극장국가'이다. 이 3개의 키워드는 서로 연관된 속성을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가 수상기념 강연에서 언급한 '국가로서, 일본인으로서의 이중성'은 '아이마이사'를 설명한 것인데, 이는 다테마에와 혼네에서 유래한다는 것.

'극장국가'란 모범적 중앙(왕이나 지도자)이 극을 연출하는 방향에 따라 국민이 움직이며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치는 체제이다.

저자는 일상생활에서 느낀 일본인의 특성을 역사왜곡, 야스쿠니신사 참배, 전쟁피해배상, 대미추종외교, 심지어 한류 붐까지 한일관계의 광범위한 현안들에 대입시켜 이 3개의 키워드로 풀어낸다.

특히 강조하는 것은 "다테마에는 약자에게 적용되는 논리이며, 혼네는 강자에게 적용되는 논리"라는 점이다. "우리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인들의 다테마에 코드를 호의와 우호로 착각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왔다"고 개탄한다. 이것이 저자가 이 책을 쓴 이유인 것 같다. "약자인 것처럼 다테마에 코드로 위장하고 있을 때 일본과 일본인을 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3개의 키워드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다 보니, 군데군데 논리의 비약이 비춰지는 것은 아쉬운 점이다. 예컨대 전후 일본을 다테마에 코드로 설명하면서 "평화헌법으로 위장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대목이다. 평화헌법은 그 자체가 역사의 산물이며,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다면 저자는 강경 '배일론자'인가? 결코 그렇지는 않다. 저자는 '일본은 있다, 없다' 논쟁의 대안으로서 조선 초기의 명재상 신숙주가 530년 전에 남긴 말을 인용하고 있다. "왜의 동향을 예의주시하되 왜와의 우호관계는 끊지 말라"는 것. 저자가 서문에서 스스로를 규정한 '숙일파(熟日派)'다운 결론이다.

<시사저널> 도쿄주재 편집위원으로 10여년간 활동했던 저자는 현재 '자유아시아방송(Radio Free Asia)'의 도쿄 리포터로 일하고 있다.

단도와 활 - 지한과 혐한 사이

채명석 지음,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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