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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면에서 바라보이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정면에서 바라보이는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 양중모
때문에 상하이에 있는 성당 역시 안은 제대로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일단 발걸음을 옮겨보기로 했다. 지도상으로 보니 쉬자후이라는 전철역 근처에 있는 듯 했다. 룸메이트를 공항까지 바라다 주었을 때 공항까지 가는 리무진 버스가 두 번째로 들렸던 곳이다. 그래서 무척 가까울 것이라 생각하고 버스 노선을 찾아보았다. 그러나 찌는 듯한 더위에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을 하니 조금 걸어서 차라리 전철을 타자는 생각이 들었다.

쉬자후이까지 가는데 드는 돈은 최저 요금인 3원, 역시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나 상하이 전철은 환승이 그다지 편한 편이 아니기에 전철을 타고 가자니 제법 돌아가야 했다. 쉬자후이는 백화점들이 몰려있고 지하는 상가들로 가득 차 있어 제법 번화했다. 마치 서울의 명동을 거닐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이런 번화한 곳에 성당이 있다니 다소 의외였다. 내가 나가야 할 출구는 3번 출구, 번잡한 지하상가들을 지나치며 3번 출구 쪽으로 가니 무언가 느낌이 이상했다. 시끌벅적하던 느낌은 온데 간데 없고 이상할리 만큼 조용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계단을 올라서 나가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움찔하고 말았다. 노숙자들 같은 이들이 몇 명 앉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무언가 사회에 강한 불만이 있는 듯 분노에 가득 차서 바라보는 아저씨를 보는 순간 사실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생각해보라. 우리나라 사람들이 듣는 중국에 관한 이야기 중 살벌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던가. 소매치기 안 당하려고 잡아끌면 큰 칼로 팔을 잘라 버리고 만다든가 하는 이야기들을 기억해내고 보면 안 무서워할 수가 없다.

그러나 사나이가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잘라야 하는 법, 과감하게 출구 쪽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나오고 보니 바깥 역시 무척이나 조용했다. 저 멀리 백화점 등 번화한 거리가 보이긴 했지만 상권이 발달한 거리에 위치해 있는 것이 맞는가 싶을 정도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와서 뒤돌아서자마자 바로 성당이 눈 앞에 보인 것이다.

지하철에서 나와서 뒤돌아서니 바로 성당이 보였다.
지하철에서 나와서 뒤돌아서니 바로 성당이 보였다. ⓒ 양중모
생각보다는 웅장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일단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문 쪽을 향해 걸어가니 역시 굳게 닫혀있었다. 성당 안을 구경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 옆 쪽으로 쪽문 같은 것이 보였다. 다가가보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도 모르게 ‘아싸’라는 감탄사가 나오는 순간이었다.

소심한 성격상 들어가면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 싶어 아주 조심스레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조금씩 둘러보려는데 어떤 뚱뚱한 아저씨가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

역시 '안은 볼 수 없구나' 하고 포기하려는 순간, 아저씨의 질문이 이상하다. 구경을 할 것인지 아니면 기도를 할 것인지를 묻는다. 구경을 한다고 하자 조금 기다리라고 한다. 어느 정도 사람이 모이자 그 아저씨가 사람들을 이끌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어, 그런데 들어가기 전 아저씨가 하얀 천을 몇 명 여자에게만 주었다. 대체 무슨 의미일까 하고 하얀 천을 받은 여자들을 뚫어져라 쳐다보니 다들 민소매를 입고 있었다.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라는 의미인 듯 했다. 그걸 보니 성당 건물 안도 생각보다 재미있을 듯 해 허리춤에 있던 사진기를 손 안에 꽉 쥐었다. 그 때 들려오는 말.

“사진은 찍으시면 안 됩니다.”

사실 중국에서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사진을 찍어서 안 된다는 안내문이 늘 있다. 그러나 지키는 이를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관리인들조차 별 상관을 안했다. 그랬기에 이번에도 무시하고 사진을 찍을까 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누군가에는 성스러운 장소에서 그러기에는 찜찜한 감이 들어 사진기를 다시 허리춤에 있던 케이스 안에 넣었다.

무엇이 있을까 잔뜩 기대하며 들어갔더니 우리나라에서 봤던 성당들이랑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다. 안내하는 아저씨는 벽에 붙어 있는 ‘최후의 만찬’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이런 설명까지 듣게 되고 '정말 운 좋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잠시, 몇 분 지나지 않아 몸이 지쳐오기 시작했다.

성당 안에는 10개가 넘는 커다란 그림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것을 아저씨가 하나 하나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말을 알아듣는 것도 힘든데다가 에어컨까지 없으니 정말 미칠 노릇이었다. 사람들이 더워하는 것을 본 아저씨가 덥냐고 물어보는 순간 열심히 고개를 끄덕거려주었다. 혹시라도 시원하게 해줄까 싶어서였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오래된 건물이라 보호해야 합니다”라는 내 기대를 무참하게 깨는 답변이었다. 더위에 한없이 약한 나이기에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갔다. 그러다 문득 귀를 번쩍 뜨이게 하는 소리가 있었으니 바로 ‘일본’이라는 소리였다. (중국이나 한국이나 일본 발음은 비슷하다) 순간적으로 집중하는 내 표정에 안내하는 아저씨가 다소 조심스러운 듯 했다.

분명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은 아는데 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분간이 안 가는 듯 했다. 중일 전쟁 얘기까지 나오는 것을 보니 정확히 알아들을 수 없어도 분명히 일본에 대해 안 좋은 소리를 하는 듯싶었다. 나와 전혀 무관한 일이었지만 더워서 표정이 점점 찡그려지다보니 아저씨는 내가 혹시 일본인이 아닐까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상관없으니 계속 얘기하라고 싶었지만 좀 듣다 보니 무언가 마음이 좀 상하기 시작했다. 한 장도 아닌 여러 장의 그림을 설명하면서 바로 옆에 있는 우리나라 얘기는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야 어찌되었든 일본도 여기에 발자취를 남겼는데 우리나라는 그런 게 없나 싶은 아쉬움이 들었다. 이 아쉬움을 아셨는지 어느 한 동상 앞에 갔더니 ‘한국’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하기 시작했다. 대강 들렸던 단어들을 조합해보면 아마도 한국에서도 열심히 선교 활동을 했던 성직자였던 모양이다.

“그러지 마세요!”

열심히 설명하던 아저씨가 난데없이 의자에 앉아있던 중국 커플을 향해 무어라 했다. 예배보는 사람들이 앉는 의자 앞에 기다란 쿠션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거기에 발을 올려놓자 그러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기도하다가 무릎 꿇을 때 쓰라고 있는 것이니 그렇게 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쓰는 것일까 궁금했는데 마침 기도하던 한 신자가 그 곳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다. 의자에서 자연스레 몸이 내려오면서 기도하게 되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야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나라 망신시키는 것 같아서 간신히 참아냈다.

길고 긴 아저씨의 설명이 끝나고 성당 건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그야말로 날아갈 것만 같았다. 밖도 찌는 듯한 더위였지만 에어컨 없는 건물 안은 찜질방 같은 느낌이었다. 자 이제 돌아가자라고 굳게 마음먹은 순간 아저씨의 설명이 또 다시 이어진다.

설명까지 들을 수 있다고 좋아했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대체 언제까지 할 것인지 짜증이 서서히 밀려왔다. 그래도 참고 듣다가 아저씨 손이 가리키는 것을 보고 그 짜증이 다 사라져버렸다.

성당 지붕 위쪽에 특이하게도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알 수 없는 맹수 같은 조각상이 앉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나 중국 궁궐 또는 양반들 집안이었다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성당에 맹수 같은 동물이 조각되어 앉아있는 것을 보니 상당히 묘한 기분이 들었다.

가까이서 보니 용의 몸을 하고 있는 듯도 했다.
가까이서 보니 용의 몸을 하고 있는 듯도 했다. ⓒ 양중모
한참동안 예수와 성모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난데없이 용왕과 산신령 얘기를 듣고 나온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 조각에 대해 좀 더 물어보고 싶었지만 아저씨는 연신 사람들에게 성당 바깥의 이 곳 저 곳에 대해 설명 중이었다.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어보고 싶었으나 내 인내심은 바닥에 도달하고 말았다. 날씨도 더운데다가 아침부터 점심 때까지 굶었기에 더 이상 설명을 듣기가 힘들었다. 결국 지쳐서 몸을 돌려 성당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선택을 한 셈이다.

베이징에서는 문이 닫혀 있어 전혀 볼 수 없어 서운했고, 상하이에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봐야 해 지쳐버렸으니 역시 지나친 것은 모자란 것만 못한 법인가보다. 무엇인가를 구경한다는 일은 더욱더 그렇다!

덧붙이는 글 | 중국어 지명은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제가 늘 물어보는 그대로 쓴 것이라서 양해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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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넓게 보고 싶어 시민기자 활동 하고 있습니다. 영화와 여행 책 등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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