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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 파문에 대해 한명숙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바다이야기' 등 사행성 게임 파문에 대해 한명숙 국무총리가 29일 오전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사과 데이(day)였다. 여권 수뇌부가 줄줄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한명숙 총리, 김근태 의장, 그리고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정동채 의원이 잇따라 마이크 앞에 서서 머리를 조아렸다.

같은 날, 같은 시점에, 같은 사안에 대해 사과를 한 것을 보면 사전에 조율을 한 것 같다. 사과 내용에도 그런 흔적이 묻어 있다. 사과 포인트가 나눠져 있다.

한명숙 총리는 "사행성 게임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제도적 허점과 악용 소지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김근태 의장은 "정부 정책을 점검·견제하지 못해서 비극적 사건을 만든 책임"을 인정했다.

얼추 얼개가 짜여진다. 한명숙 총리는 행정, 김근태 의장은 정치의 과실을 거론했다. 이로써 포괄적이나마 사과할 건 다 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이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단적인 예가 정동채 전 장관의 경우다.

핵심을 비켜간 대국민 사과

정동채 전 장관은 기자회견장에 들러 다섯 문장으로 구성된 대국민 사과문을 읽어내려간 뒤 기자 질문도 받지 않고 자리를 떴다. 정동채 전 장관이 사과한 내용은 단 하나, "국민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이다. 사태의 진상에 대해선 검찰 수사와 감사원 조사 결과가 나오면 명명백백하게 밝혀질 것이라고만 했다. 자진해서 밝힐 의사는 없다는 뜻이다.

주무부처 장관이었던 사람이 진상 공개를 사실상 거부했으니 다른 사람의 사과가 구체적일 리가 없다. 구체적이지 않을 뿐더러 핵심에서 비껴나 있기도 하다.

한명숙 총리는 제도적 허점과 악용 소지를 미리 '대비'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지만 세간의 의혹은 그것만이 아니다. 제도적 허점과 악용 소지를 '주도' 또는 '조장'한 의혹도 있다.

김근태 의장은 정부 정책을 '점검·견제'하지 못한 점을 사과했지만 정치권에 쏠린 의혹의 눈길은 더 넓다. 바다이야기와 같은 사행성 게임을 특별 단속대상으로 삼으려던 문화관광부의 정책을 '뒤집은' 의혹, 경품용 상품권 발행 금지 방안을 '저지'한 의혹, 더 나아가 경품용 상품권 업자들로부터 부적절한 로비를 '받은' 의혹 등이 제기되고 있다.

의혹 거리는 많고 넓은데 사과 내용은 단출하고 제한적이다. 한명숙 총리는 정부를 '관리자'로, 김근태 의장은 정치권을 '견제자'로 설정해 사과를 했다. 이런 식이라면 행위 주체, 사과 주체를 따로 설정해야 한다.

한 발 더 나아간 측면이 없는 건 아니다. 김근태 의장은 "깨끗한 정치"를 거론하면서 "불가피하면 읍참마속의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비리 의혹을 일정 부분 인정한 발언이다. 하지만 그 대상을 한정했다.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에 관련 의원들이 많은 것으로 아는데…, 책임질 부분은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이런 사과를 뭣하러 하느냐는 얘기가 나온다. 사과를 할 거면 대통령이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그래서일까? 노무현 대통령도 어제 한 마디 했다. 임채정 국회의장이 주최한 3부요인과 헌법기관장 만찬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부에서는 법과 제도의 미비점을 얘기하는데 게임 산업 진흥과 규제 완화가 '바다이야기' 문제를 초래한 배경이기도 하다."

좀더 솔직하고 진지해져라

노무현 대통령의 진단은 한명숙 총리와 김근태 의장이 사과한 행정적·정치적 과실의 정도를 완화시킨다.

게임 산업 진흥과 규제 완화가 배경이라면 행정적·정치적 과실엔 불가피성이 추가된다. 게임 산업 진흥은 문화콘텐츠 육성사업의 핵심 과제였고, 게임 산업 진흥을 위해 규제를 완화하는 건 어느 정도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좀 더 솔직하고 진지해질 필요가 있다. 지금은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 사법적 수사(搜査)가 필요한 때다.

수사가 완료되지 않았고, 사태의 진상에 가장 근접해 있다고 평가되는 사람은 입을 닫고 있는데 도대체 정부여당은 어떤 사실을 근거로 사과를 하는 것인가? '개도 짖지 않아 도둑 드는 것도 몰랐다'는 대통령이 검찰과 감사원의 보고도 받지 않은 상태에서 어떻게 사태의 배경을 단언하느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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