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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나 탄천 등 자전거도로를 달리다 보면 이동식 자전거 수리점을 흔히 볼 수 있다. 트럭에 공구를 싣고 나와 고장난 자전거를 수리하거나 부속품 등을 판매하는데, 거의 매일 한 자리에 거의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고정 수리점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두바퀴로 곳곳을 이동하며 말 그대로 이동 자전거 수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 벌써 5년째 자전거 이동수리를 하고 있는 신성호(58)씨다. 지난 28일 자전거를 수리하려고 강남구의 한 아파트단지를 방문한 그를 만났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대상자인 신씨는 지난 2001년 삼천리자전거 대리점을 하다가 자리가 좋지 않아 사업에 실패했다. 이후 2002년 강남자활후견기관 소속 자전거 이동수리사업단에 들어가 2년간 교육을 받았다.
서울 강남구·송파구 아파트 단지와 한강 둔치 등을 다니면서 고장난 자전거를 고치고 버려진 자전거를 수거해 나눠주기 5년째. 지난 7월 봉고차 한 대를 구입한 후 자전거 이동수리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일 하기 전에는 자전거 탈 줄도 몰랐어요. 한마디로 자전거 문외한이었는데 이제는 전문가가 됐네요"라며 웃음짓는 신성호씨.
13평 영구임대아파트, 중고자전거 보관장소가 없다
신씨가 자전거 이동 수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장기간 방치되거나 버려진 자전거다. 지천에 깔린 그 자전거들을 보면 고쳐서 판매하거나 나눠주고 싶다. 하지만 자전거를 보관할 장소가 없단다. 13평짜리 영구임대 주공아파트에 거주하는 그에게 자전거 보관은 언감생심이다.
특히 요즘은 중고자전거 문의가 많이 늘어 그런 아쉬움이 더욱 크다.
"요즘 자전거 도둑이 많아서 그런지 중고자전거 문의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어요. 그런데 보관할 장소가 없어서 문제지요. 예전에 제가 몸담았던 강남자활후견기관에 얘기하곤 하는데 수월치가 않네요. 그 곳에서 하는 후견사업이 워낙 많다 보니…."
신성호씨가 아파트에 나타난 게 오후 1시쯤. 기자는 벌써 한 시간째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런데 한 사람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땡볕에서 신성호씨 부부는 연신 부채질만 하고 있었다.
원래 아파트 단지 내에 들어오려면 부녀회에 3만원 정도를 내야 한다. 그럴 형편이 안 되는 신씨는 후견기관에서 아파트 관리실로 공문을 보내도록 부탁해서 비교적 쉽게 들어온다고. 그렇지만 사람이 없으니 그런 노력도 헛수고다.
"경비실에 방송 부탁은 하셨나요?"
"네, 자전거 무상 수리 등을 한다고 부탁드렸는데, 사람들이 안 나오네요."
이번엔 기자가 직접 관리실을 찾아 다시 한번 방송을 부탁했다. 확인해보니 신씨가 부탁한 안내 방송은 나가지 않았다. 취재 때문에 수리하는 장면을 촬영해야 하니 다시 한번 방송해달라고 부탁했다.
8천원 짜리 페달 교체, 나머지는 모두 무상수리
방송이 나가자 대여섯 명이 자전거를 끌고 나왔다. 대부분 자전거 기능에 약간 문제가 있어 수리했고, 새 부속품을 교체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8천원짜리 페달 두 개를 교체해주고, 나머지는 모두 무상수리. 이 모습을 지켜본 신씨 아내가 한 마디 했다.
"제가 반대 많이 했어요. 담석으로 간 3분의 1을 잘라내 몸도 안 좋은데 거의 무상수리 위주로 하다 보니 사실 돈은 안 되고 힘은 힘대로 들고…. 하지만 남편이 이 일을 좋아하니 어쩔 수 없지요. 사실은 지금도 수술 후 쉬어야 하는 상황이거든요."
매출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다. 토요일 오후가 가장 잘 되는데, 그런 날엔 10만 원까지 벌기도 한다. 하지만 평일엔 공치는 날이 많다고. 신씨는 10만원 벌어봐야 부속품값, 기름값 빼고 나면 5만원 안팎이 남는다고 했다. 지난달에는 28만원, 8월엔 28일 현재까지 35만원 정도 수익을 올렸다.
여기다 사업자 등록하고 세금신고를 하다 보니 수급대상자 생활보조금은 사라졌다. 지금은 의료지원 등 일부 혜택만 받고 있었다.
어떤 품목이 가장 많이 나가는지 물었다.
"요즘에는 야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이 많은지 야간등이 많이 나가는 편이에요. 펑크 나더라도 때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안전 차원에서 튜브를 통째로 교체하지요."
튜브 교체비용은 1만 7천원선. 일반 수리점하고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중고자전거 활성화 차원에서 브레이크나 기어 변속기에 들어가는 줄·공기 흡입구 등 작은 부품들은 돈을 받지 않는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비싸게 받기라도 하면 주민들 입소문 때문에 견딜 수 없다고 한다.
"수리 자전거가 달리는 모습 보면 기분 좋아요"
일반 자전거 수리점엔 꽤 다양한 수리장비가 있지만 신씨에게는 조그만 공구통이 전부다. 그 초라한 수리도구에 신씨 가족의 생계가 달려 있는 셈이다.
"조금 있으면 선선해지는데, 그 때 되면 사람들이 자전거 타고 많이 나오겠지요. 지금은 힘들어도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겠지요."
그래도 신씨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자신이 수리한 자전거를 탄 손님이 씽씽 타고 달리는 모습을 볼 때면 마음이 뿌듯해진다는 그.
그런데 기자는 은근히 걱정이 됐다. 다른 아파트에 갔을 때 자전거 무상 수리 왔다고 방송 부탁을 잘 할 수 있을지 말이다. 방송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거의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생계에 가장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은 방치됐거나 버려진 자전거를 수리해 판매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 일이 쉽지 않다. 마땅히 보관할 장소가 없는 신씨는 입맛만 다실 수밖에. 신씨는 구청이나 단체가 이런 문제에 도움을 주길 바란다.
어쨌든 신씨의 손을 거쳐 쌩쌩 달리는 자전거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