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 화가 정하수씨가 안기부에서 고문 받을 당시를 재현한 그림.

“자장면이나 한 그릇 하자”며 화가 정하수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여기저기 탈이 난 곳이 많아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 대구로 왔다 했다.

두런두런 사는 이야기 하다가 마침 그가 지니고 있는 두툼한 서류뭉치들 가운데서 이 그림을 발견했다. ‘남산 안기부에서 1989. 5. 2 ~ 8. 22까지 그 당시 기억을 스케치 한 후 3차에 걸쳐 완성시키다. 정하수’

울컥거리며 치밀어 오르는 뭔가를 느꼈다. 남북한의 통일을 열망하고 양심의 자유를 지녔다는 사실 때문에, 고립무원의 지경에서 고문을 당하며 인간의 존엄을 해체 당해야 했던 시절의 그. 대체 무슨 짓들을 한 건가?

이후 그의 여름은 참으로 모질다. 매년 새로운 여름이 다시 오지만, 그는 이렇듯 버리지 못하는 이 그림을 보듬으며 늘 17년 전 1989년의 여름으로 돌아가서 살고 있었다. 그는 비틀어진 역사 때문에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최악을 경험한 그때 이후 낯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렵다.

예술가는 체험을 통하여 생생한 작품을 생산한다고 한다. 그러나 하지 않아도 될 체험으로 만들어진 이 암울한 풍경의 그림은 차라리 없어도 될 것이리라. 스산함과 음산함이 뒤엉키고 그를 둘러싼 시선들의 냉소와 비아냥거림을 곁에서 보는 듯 안타까워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제는 그가 당한 것 같은 일이 반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그가 치열한 싸움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양심과 표현의 자유’와 ‘남북통일의 당위성과 그것들을 향한 노력’들은 얼마나 진전되어 있는 것일까?

유난히도 더웠던 이 여름의 끝에서, 화가 정하수씨가 올해도 어김없이 맞이한 1989년의 여름이 이제는 반복되지 않고 끝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하수는 누구?

1989년 ‘대구민중문화운동연합’ 대표와 ‘민족민주예술운동연합 건설준비위’ 공동대표 역임하다.

노동자 출신의 민중미술화가로서 대구지역에서 활동하다가 현재는 대구 근교에 있는 청도로 낙향하여 벌을 치며 살아가고 있음.

1989년 슬라이드로 제작되어 임수경을 통하여 평양축전에 전달된 대형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도)' 사건에 연루되어 화가 홍성담 등과 함께 안기부에서 고문을 받고 투옥된 전력이 있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