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설이 '근거 없음' 쪽으로 기울고 있다.
정부 고위당국자는 31일 "중국 어느 곳에서도 김정일 위원장이 다녀간 징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숀 매코맥 미국 국무부 대변인도 30일 "그(김정일)에 관한 언론보도는 봤으나, 나로선 어떠한 정보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정부 당국자가 말하는 '징후'란 김 위원장이 탄 특별열차가 통과할 것으로 추정되는 도시와 역의 변화를 말한다.
과거 예로 보면 우선 국경 지대인 신의주와 단둥(丹東) 역 주변에서 경비가 강화되고, 일반인의 출입이 통제되는 등 평소와 다른 움직임이 포착된다. 그러나 현재까지 그런 움직임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 방중설은 지난주부터 외교가에 돌기 시작했다. 진원지는 중국 베이징으로 추정된다. 지난 30일 김 위원장을 태운 것으로 추정되는 특별열차가 위성에 포착됐다는 얘기가 흘러나오면서 관계 당국과 언론들을 긴장시켰으나, 더 이상 추가 정보가 나오지 않으면서 방중설은 급속히 수그러들고 있다.
지금 왜 방중설 도나
왜 이 시점에 방중설이 돌게 됐을까.
방중설은 진원지가 베이징이라는 점이 말해주듯 우선 중국 정부의 움직임에 대한 분석에 근거하고 있다. 다음달 19일이면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합의'가 나온 지 꼭 1년이 된다.
그러나 1년 동안 합의 이행은커녕 북한을 둘러싼 정세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어디에 딱히 규정한 것은 아니지만, 교착상태 1년을 넘기면 9·19 합의는 휴지조각이 돼버린다는 것이 관계국들의 공통된 인식이다. 6자회담의 수명도 사실상 다하게 되는 것이다.
의장국인 중국이 6자회담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해 9·19 이전에 어떻게든 국면을 전환시켜 보려고 움직이고 있다는 관측이 김 위원장 방중설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지난 21일 조지 부시 미국대통령과 전화회담을 갖고 북한을 둘러싼 현안들에 대해 논의했다. 이후 27일 나온 북한 외무성 담화에는 눈길을 끌 만한 내용이 들어있었다. "9·19 공동선언이 이행되면 우리가 얻을 것이 더 많으므로 6자회담을 더 하고 싶다"고 밝힌 대목이다.
이는 상투적인 발언이라는 평가도 있지만, 뉘앙스가 미묘하게 달라진 게 사실이다. 앞서 미-중 정상간 전화회담과 연결지어 보면, 중국이 미국과 북한 사이에서 모종의 중재를 시도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가능하다.
북한, 중국에 미워도 다시 한 번?
그러나 중국의 역할에 대해 회의적 견해도 만만치 않다. 미국이 북한 미사일과 핵 문제는 물론 금융제제에 있어서도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중국이 중재를 시도할 여지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김 위원장이 미사일 발사 후 유엔안보리 결의로 인해 중국에 '배신감'을 토로할 만큼 악화된 상황이고 보면 정상회담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만약 이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한다면 유엔안보리 제재에 동참한 중국에 굴복한 모습으로 비춰질 가능성이 높다. 과연 '체면'을 중시해온 북한이 이런 선택을 할까? 중국으로서도 김 위원장을 베이징에 '유인'할 정도로 매력적인 선물을 내놓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이 실제로 중국을 방문한다면 이는 북한의 커다란 '방향전환'일 가능성이 높다. 극단적인 대결자세를 풀고 중국을 통해 국제사회에 타협의 메시지를 보내는 상황 외에는 상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결국 김 위원장 방중설은 북한의 극적인 방향전환 가능성에 대한 기대론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김 위원장 방중설은 당분간 계속 군불이 남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달 5일부터는 크리스토퍼 힐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어서 북·미 접촉의 가능성에 계속 시선을 떼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힐 차관보는 10일까지 비교적 장시간 중국에 체류할 예정이다. 김 위원장의 방중은 아니더라도 북한 고위인사가 이 기간에 중국을 방문, 전격적으로 힐 차관보와 만나는 시나리오도 그럴듯하게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