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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생산되었지만 사람에게까지 해로운 농약을 듬뿍 뿌려서 재배한 농산물이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소중하듯 벌레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단지 사람만큼 인정을 받지 못하고, 사람만큼 존중되지 못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하찮은 목숨을 파리 목숨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보십시오. 파리가 생태계에서 얼마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8월의 마지막 날에 시장에 나갔습니다. 농산물을 다루는 곳에서 일을 하다 보니 슈퍼나 마트 등에 갈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간혹 소주나 맥주를 사려고 갈 때가 있지만 그런 날이 자주 있는 것도 아니지요. 일터 사람들끼리 함께 저녁을 먹으려고 하는데, 마땅한 찬거리가 없어 열무를 조금 사려고 간 것이지요.
시골의 오일장 풍경을 감상하기보다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과 거친 손이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오래 있으면 괜시리 제 마음만 아플 것 같아 빨리 열무만 사고 돌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시장에 도착하자 빨리 열무를 한 단 샀습니다. 그런데 시장에 나온 김에 밭에 심을 배추 씨앗을 사려고 잠시 돌아다녔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바로 우리들 이웃의 모습이었고, 내 어머니의 모습이었습니다. 커다란 대야에 온갖 채소들을 머리에 이고 와서는 종일 아스팔트 위에 앉아 팔고 있는 할머니들. 저 할머니들에게도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손자에게 맛있는 것을, 좋은 장난감을 사 주고픈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열무 한 단을 들고 시장을 걷고 있는데, 저만치서 배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냥 무심하게 지나치려고 하는데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나무로 만든 작은 판 위에 배를 진열해 두고 있었습니다. 한눈에 봐도 배의 상태는 좋지 않았습니다. 까치가 쫀 듯한 자국도 있고, 바닥에 떨어져 상처도 났습니다. 웬만한 슈퍼나 마트에 가면 저 정도의 과일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것들이지요.
제가 자꾸 배를 바라보자 할머니는 눈치를 채고 제게 한마디합니다.
"총각, 배 좀 사가. 나가 일이 있어 빨리 좀 가야 허는디, 이거 떨이로 오천원에 줄게."
"할머니, 그런데 배가 왜 이래요?"
"여기 두 개 더 줄게. 나가 일이 있어 그러그덩."
할머니의 대단한 상술(?)에 제가 넘어 갔습니다. 결국은 그 배를 샀으니까요. 배 한 봉지와 열무 한 단, 고들빼기 두 단. 그리고 배추 씨앗. 제가 오늘 시장에서 산 것들입니다. 그런데 고들빼기와 배는 한마디씩 핀잔을 들어야 했습니다.
"이런 썩은 걸 샀나?"
"완전 속았구만!"
고들빼기 반찬은 제가 좋아하는 반찬입니다. 그래서 두 단이나 샀는데, 묶은 끈을 풀어보니 안쪽은 거의 썩어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일터 사람들이 또 한마디씩 합니다.
"만호, 오늘 완전 사기 당한 날이네!"
그러면서 잠시 함께 다듬어 줍니다. 고들빼기를 다듬다 보니 먹으려고 다듬는 것보다 버리려고 다듬는 것이 더 많습니다. 저는 왜 먹을 수 있는 것을 버리느냐며 다시 가져옵니다. 그렇게 한참 실랑이를 하며 다 다듬었습니다.
반찬을 만들려고 다듬으면서 '이런 것을 산 것이 잘 한 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하고 못난 것들을 사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집에 다시 가져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버렸거나 혹은 할머니께서 다 드셨을 것입니다. 아니 아까운 마음에 버리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배는 조그만 크기로 봐서는 할머니의 마당가에 심은 배나무에서 따 온 것 같습니다. 아니더라도 대량으로 키우는 과수원에서 따 온 것은 분명 아닙니다. 그랬기에 새가 쪼았고, 따다가 떨어져 상처가 났습니다. 할머니는 그런 배를 시장에 들고 나와서는 아침부터 해질녘까지 팔고 계셨습니다. 뭔가 일이 있어 빨리 가야 하는데, 배를 팔지 못해 못가고 있었습니다. 안절부절 못하는 그 모습으로 봐서 할머니의 상술이 아니라고 믿고 싶습니다.
고들빼기는 햇살이 내리쬐는 아스팔트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상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지요. 가운데 부분은 상했고, 겉부분은 싱싱했습니다. 고들빼기를 파시는 할머니도 몇 단 남지 않은 고들빼기 때문에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요. 아침에 갔었다면 싱싱한 고들빼기를 살 수 있었을 텐데, 늦게 가니 그렇게 상했을 뿐이지요.
저도 들은 말이지만 다른 나라의 생활협동조합이나 기타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상한 것부터, 유통기한이 짧은 것부터 먼저 산다고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농민을, 농촌을 돕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들처럼 싱싱하고 잘난 것만을 최고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약간 흠이 있으면 어떻습니까? 약간 못나면 또 어떻습니까? 다들 농부의 정성과 사랑으로 자란 것들입니다. 약간 상했으면 상한 그 부분을 잘라내고 먹으면 됩니다. 아니 상했다는 것은 그만큼 건강하다는 뜻이 되기도 합니다. 농약을 뿌렸다면 상하지 않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