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도 하지? 자위하잖아." - "그런 거 안 해요."
8월 31일 오후 3시께 성(性)산업 박람회(섹스포·sexpo)가 열리는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강남구 대치동) 앞.
한참 논란이 되고 있는 박람회를 뒤로 한 채 센터 앞에서 느닷없는 '솔직대담 섹스토크⑲'가 시작됐다. 참석자는 30대의 대머리 남성 A씨, 전시장 입장을 고려 중인 40대 B씨, 박람회를 보고 나와 자위 도구로 가득 찬 팸플릿을 든 C씨 그리고 20대의 여기자.
4명의 대담은 "선생님, 안에 볼 것 좀 있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서부터 시작됐다. 박람회를 보고 나온 A씨가 "성인용품만 전시하고 있어요, 구로동에 다 있는 걸 왜 만원씩(입장료)이나 주고 들어갔나 몰라"고 혀를 차자 "구로동 어디요"라며 B씨와 C씨가 합류했다.
4명은 C씨가 들고 나온 팸플릿을 중심으로 둘러서서 "관람객 중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꽤 있다"(A씨),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 테크닉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B씨)로 흘러갔고, 논의는 결국 "스트립쇼 같은 이벤트가 취소돼 김 샜다"로 매듭지어졌다.
적나라한 자위 도구 사진을 한참 보던 B씨가 기자에게 대뜸 "아가씨도 자위하지"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대답을 못 찾던 기자가 "안 하는데요"라고 말하자 B씨는 "왜, 어때서, 우리도 다 해, 이제 이런 건 오락이야"라며 팸플릿을 흔들었다.
4명이 땀에 젖은 손으로 접었다 폈다를 반복했던 팸플릿은 어느새 귀퉁이가 찢어졌다. 주최측인 (주)섹스포가 내걸었던 '음지의 성을 양지로'라는 행사 취지가 떠올랐다. 양지로 나온 것은 단지 너덜너덜한 자위도구 팸플릿뿐이었다. 국내 최초로 열린 성 박람회와 여기자의 성생활은 거짓말로 가려진 채 여전히 음지에 머물러 있었다.
저출산을 막기 위해 콘돔 사용 권장?
주최측은 애초 "국내 첫 성 박람회를 통해 성인을 위한 성교육장을 마련하고, 음지에 머물던 성을 양지로 끌어올리겠다"며 행사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센터 앞에 붙은 대형 현수막에도 '사회 문제로 부각되는 저출산, 이제 박람회를 통해 찾아보자'며 ▲에이즈(AIDS) 홍보 ▲부부 클리닉 ▲장애인의 성 ▲노인의 성 등을 행사 내용으로 꼽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본 박람회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저출산을 막는다면서 형형색색의 콘돔이 즐비했고, 임신과는 거리가 먼 자위용 마네킹들만 가득했다. 에이즈 퇴치나 부부의 성생활 클리닉을 위했다면 가죽 채찍과 모형 성기 대신 의사가 있어야 한다. 외국에서는 에이즈 퇴치를 위한 기금 마련을 위해 유명 연예인들이 콘서트를 열기도 한다.
장애인의 성이나 노인의 성 또한 마찬가지다. 이동권, 교육권, 직업선택권 등에 무심하다가 갑자기 그들의 성을 위해 박람회를 연다? 성욕 또한 인간의 기본 욕구로, 충족시켜 마땅하지만, 일반 성인용품점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기구들을 굳이 박람회 형식으로 보여줘야 했을까.
여성단체를 포함한 외부의 압박으로 인해 취소됐다는 이벤트들은 과연 개최 목적과 연관이 있었나. 세미 스트립쇼, 트랜스젠더 선발대회, 즉석연인키스대회, 미스 섹스포 선발대회, 란제리 패션쇼, 누드 사진전, 유명잡지 누드모델 사인회 등은 성교육보다는 여성 모델들을 내세워 대중의 관심을 끌고 보자는 성상품화에 더 가깝다.
그렇다면 시민단체의 비난에서 벗어나 이날 전시된 것들은 교육적이었을까. 이날 기자가 돌아본 결과, 전시장 내 부스 대부분이 자위도구와 보조기구 등을 파는 성인용품점에 불과했다. 이외에는 의류, 건강식품과 함께 잠자리를 그 위에서 하라는 뜻인지 큰 가죽 소파 매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직접 에로배우가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보여준 '애로영화 촬영장 체험전'은 눈길을 끌 만했지만, 촬영 장면이 실제 영화의 2% 수준에도 못 미쳐 아쉬움을 남겼다. 결국 주최측이 발표한 '교육적인' 박람회의 취지는 실현되지도, 애초 취지를 실현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섹스포는 거짓말만 남긴 셈이다.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성 박람회를 통해 성담론이 양지로 나오는가 싶더니, 결국 더 음지로 숨어버렸다. 외국 여성 누드모델을 앞세운 홍보나 비키니 차림의 여성 내레이터 모델을 통해 남성의 눈요깃감에 머무른 여성상을 보는 듯 했다. 이런 의미에서 섹스포는 ‘단체로’ 성에 눈뜨려고 했던 한국 성인들에게 거짓말보다 더 못할 짓만 남기고 해프닝으로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