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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타리 아래 텃밭에 피어난 부추꽃입니다.
울타리 아래 텃밭에 피어난 부추꽃입니다. ⓒ 배만호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올 무렵이면 지나가는 여름을 아쉬워하고 다가오는 가을을 반기는 꽃이 있습니다. 마치 여름날 더운 밤에 하늘 바라보며 헤아렸던 별들이 총총 내려앉은 것처럼 예쁜 꽃. 그 예쁜 꽃을 피워내기 위하여 부추는 봄부터 몸이 잘리는 아픔을 견뎌야 했고, 더운 여름을 견뎌야 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몸이 약했습니다. 더구나 한창 자라야 할 사춘기 시절에는 빈혈로 고생을 좀 했습니다. 의사는 어머니께 쉽게 설명을 한다고 ‘피가 모자란 병입니다’ 라고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날부터 어머니의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몸에 좋다는 특히 피와 관련된 것들은 모조리 구해 먹였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정성 때문에 저는 일년이 지나지 않아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빈혈이라는 말은 몰라도 피가 모자란다는 말은 어머니께 커다란 충격이셨던 것이지요.

그때 많이 먹었던 음식 가운데 하나가 부추입니다. 특히 봄에 처음 나는 부추는 사위에게도 안 준다며 제게 다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특히 피가 한 바가지씩 들어 있다며 다른 가족들은 못 먹게 하고 제게만 먹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처음 난 부추는 제가 다 먹게 되었습니다. 병이 나은 뒤에도 다른 가족들은 은근히 어머니의 눈치를 보며 잘 먹지 않았습니다. 피가 많다고 하니 제게 다 먹으라고 양보를 해 준 것이겠지요.

살짝 데치거나 하면 양분이 없어진다며 언제나 싱싱한 부추나물로 만들어 주셨지요. 그렇게 날마다 먹었던 부추지만 싫지가 않았습니다. 먹고 또 먹어도 질리지도 않았습니다. 부추무침에 고추장을 듬뿍 넣어 비벼 먹기도 하고, 그냥 젓가락으로 집어먹기도 했습니다.

그 시절 어머니의 밭에는 부추가 늘 싱싱하게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추에 뿌리는 거름은 겨우내 군불을 넣으면서 모아둔 재가 전부였지요. 그래도 부추는 잘 자랐습니다. 비료 한 줌 뿌리지 않아도 토실토실한 게 아주 먹음직스러웠습니다.

바쁜 모내기철이 되면 부추를 캐서 다듬는 일은 제 몫이 되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일 먼저 감자를 깎아 물에 담아 두고 숙제를 하지요. 그리고 부추를 캐러 갑니다. 캐 온 부추를 티끌 하나 없이 곱게 다듬는 일은 어린 제게 약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어머니가 하면 금방 할 일은 제가하면 한 시간이 넘게 걸렸지요. 그러면 저녁에 또 맛있는 부추무침을 먹을 수 있는 날입니다.

제가 가꾸는 부추밭입니다.
제가 가꾸는 부추밭입니다. ⓒ 배만호
그렇게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면 부추와 고추를 넣어 전을 부쳐 주셨습니다. 매운 고추가 입에 들어가면 물을 한 바가지씩 마셔야 했지만 그때의 그 맛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가을이 가까워지면 호박도 많이 자랍니다. 여름에는 호박이 안 열린다고 안달을 하지만 가을이 되면 따먹기가 바쁘게 많이 열립니다.

다른 반찬들로 밥상이 채워지기 시작할 때 부추는 몰래 꽃을 피웁니다. 작은 대가 올라와 조용히 하얀 꽃을 피웁니다. 아무도 봐 주지 않아도 꽃은 피어납니다. 부추꽃이 피면 어머니는 더 이상 부추를 캐지 않았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부추는 올해와 같은 모습으로 그 자리에 그렇게 있습니다. 부추꽃도 하얀색을 뽐내며 피어났습니다. 내년에도 후년에도 십 년이 지나도 언제나 찾아가면 어머니의 손길이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마음으로 부추꽃 사진을 찍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 있습니다.

부추꽃을 보면 언제나 어머니의 작은 부추밭이 떠올라 가슴이 아립니다. 마당 한쪽 구석에 부추밭을 만들어 피가 모자란다는 아들에게 먹였던 그 부추. 아마도 어머니는 저 부추를 닮았나 봅니다. 다 주고서도 끊임없이 자라 꽃을 피우듯이 어머니도 제게 다 주었습니다. 이젠 제가 부추처럼 꽃을 피워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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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 말이 적어야 하고, 뱃속에 밥이 적어야 하고, 머리에 생각이 적어야 한다. 현주(玄酒)처럼 살고 싶은 '날마다 우는 남자'가 바로 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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