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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것이 아름답다'전이 열린 갤러리 내부 모습
ⓒ 장윤미
거대한 도시 속에서 빠름이라는 속도에 맞추느라 앞만 보고 좇아가던 우리들, 이제 잠시 멈추어 나만의 시공간을 가져 보자, 그러면 작은 것들이 보인다. 그렇게 멈추어 보면 내 눈, 내 마음을 통해 작은 것들이 아름다워진다.

2일 나지막한 마음으로 찾아간 충무로 '다' 갤러리에서는 창간 10돌을 맞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하 '작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그들은 우리 시야에는 없던 작은 것들 곁에서 지켜왔다.

남산 한옥마을의 싱그런 풀잎 향기들에 흠뻑 취해 있던 데다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로 가는 동안의 맑고 조용한 동네 분위기가 나의 기분을 더욱 나지막하게 해주었다.

이철수 판화에서 중학생 작품까지

▲ 고 신영식 작가의 '짱뚱이', 고 신영식 작가는 '작아' 창간호부터 8년 동안 오진희 작가와 짱뚱이를 연재했다
ⓒ 장윤미
갤러리로 들어서자, 옅은 살굿빛 분위기가 풍긴다. 이곳저곳 배치된 작가들의 그림과 작품, 한구석에는 10돌을 맞은 '작아'를 기록한 독자들의 편지, 기념물들이 전시돼 있었다.

전시된 그림들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주제들이다. 세계의 평화, 자연보호, 일상이야기들 우리가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절대적 조건들, 아무도 절실히 깨닫지 못하긴 하지만 그런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참여한 작가가 30명도 훨씬 넘는데 그 중에는 눈에 익숙한 이철수 작가의 작품부터 시작해 중학교 3학년 학생의 것도 있다.

먹고 사는 것만이 존재의 이유인 것처럼 자신을 풍성하게 가꾸지 못하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자연과 벗 삼아 매미를 잡고,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상념에 젖을 수 있는 감성을 갖게 한다. 또 썩지 않는 테이프들을 모아 지구를 생각하며 지구 같이 둥근 공을 만들어가게 하고, 어느 곳에서 진통하고 있을 자연을 내 시야에 담아 보게 해준다.

▲ 윤호섭 교수의 '테이프 눈사람', 재활용되지 않는 한번 쓴 테이프들을 모아 만든 작품
ⓒ 장윤미
▲ 전시회 곳곳에 배치된 소박하고 소소한 작품들
ⓒ 장윤미
박태규의 '저녁밥'이라는 작품. 이 작품에는 '고봉밥 같은 마음을 담았다. 둘러앉아 한솥밥을 뜬다. 더없이 행복하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둘러앉아 한솥밥을 뜨며 느끼는 단순하지만 소박한 행복.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에서 나오는 '저녁식사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알고 어린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곳에 가 있을게요'라는 구절이 문득 생각나면서 소소한 것들이 못내 그리워졌다.

개구리 1000마리가 개굴개굴

▲ 박태규 작가의 '저녁밥', 우리 함께 둘러앉아 한솥밥 떠요
ⓒ 장윤미
그림 뿐 아니라 전시된 또 다른 모든 것들은 손길로 한번씩 여미고 싶을 만큼 정이 묻어 있다. 낡은 이면지에 적힌 글, 직접 수놓은 글자, 종이박스를 잘라 그 위에 쓴 글씨 등… 사람들이 조금만 소박해지면 세상은 좀 더 깨끗해 지지 않을까?

새것만 찾는 사람들에게 이곳에서는 아직 사용가치가 있는 낡은 것들이 해사하게 웃고 있다.

▲ 맑은 에너지를 뿜고 있는 400년된 든든한 느티나무
ⓒ 장윤미
실내 전시장에서 밖으로 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대체 언제부터 그곳에서 자라왔는지도 모를 느티나무 한 그루가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자그마치 400년이나 된 나무라고 하는데 '작아'와 너무나도 잘 어울리는 가족이라 느껴졌다. 이 나무에서는 세월의 원숙함으로 누구든지 기대게 할 든든함의 에너지를 뿜고 있었다.

그런 든든한 느티나무 아래에서는 1000마리의 '개구리'가 울고 있다. 너무도 하염없이 울고 있어서 어느 순간 그 소리가 곧 공기가 되어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지만 내게는 개구리 우는 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했다.

▲ 느티나무 아래에서 울고 있는 1000마리의 개구리들
ⓒ 장윤미
▲ '개구리를 살려 주세요'
ⓒ 장윤미
개구리를 만든 작가는 자신이 살던 곳 근처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는 올챙이 알이 가득 고여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연못은 무참히 메워졌고 그것에 슬픔을 느껴 깨어나지 못한 개구리들을 그리며 만들었다고 했다.

개구리 채색은 여러 곳의 공부방 아이들에게 맡겼는데 어느 개구리 하나 똑같은 표정이나 모양을 하고 있지 않다. 그렇게 가지각색의 개구리들을 보면서 우리 사회도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이해를 바탕으로 다름을 틀리다, 타자화하지 않고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우리 자연도 함께 말이다.

야외 갤러리의 또 다른 공간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생태 도서전을 열고 있고, 낡은 옷가지, 빈병, 버린 상자같이 소외된 것들을 모아 재활용하는 공작소 '다시'가 만든 작품들이 있었다.

생태 도서들이 늘어져 있는 사이에서 시튼이 쓴 인디언의 복음을 발견하고 저렴한 가격을 구입하게 됐을 때의 뿌듯함이란.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로 마음을 채우다

오후 5시가 되자 전시회 첫째 날의 행사가 시작됐다.

"세상에 많은 책이 있지만 10년 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고 그것이 서로 전해지고 이어져 온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기념한다"는 편집장의 말로 시작된 행사는 '허브'의 연주, 수니의 노래로 이어졌다.

'허브'의 오보에 연주자는 '눈 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으세요? 한 시인은 그것을 여인의 옷고름을 푸는 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눈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것으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는 말을 남겼다.

그래, 나는 언제 한번 눈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던가? 내가 귀를 기울인다면 나에게 눈은 더 소중한 존재가 되었을 거고, 눈이 오염되어 땅을 적시도록 내버려 두진 않았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니는 '바닥이 빛나는 것들을 업고'라는 제목의 노래를 불렀다. 마음이 뜨끈해지는 것을 느꼈다. 작은 것들이 업고 있기에 이 세상은 반짝반짝 빛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 그래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전시회에서 작품을 보고 글귀를 읽고 음악을 들으며 내 마음은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로 채워졌고 내 생각은 점점 섬세해져 갔다.

▲ 크로스오버 앙상블 '허브'의 공연
ⓒ 장윤미
그러는 사이 갤러리 창 너머로 어둑어둑 해가 지고 있었다. 다시 야외 갤러리로 나가 산 위에 멀겋게 떠 있는 달을 보며 '작아'에서 준비한 음식들을 사람들끼리 나누어 먹는 시간을 가졌다.

뜻 깊었던 '작아'의 전시회.

진정한 앎은 몸을 변화시킨다고 하지 않았던가. 갤러리를 나오면서 나는 내 몸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행동해야지. 작은 것 소외된 것들을 사랑해야지 자연을 사랑해야지.

오늘 얻은 씨앗을 가슴에 심고 무럭무럭 키워야 할 의무를 느낀다. 작은 것들은 정말 작아서 작은 것들이 아니다. 다만, 우리의 시야에 가득 담지 못하기 때문에 작고 소외되는 것이 아닐까. 이제 그것들의 진정한 의미들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 '나락 한알 그 속에 우주', 작은 것에 담겨 있는 모든 것.
ⓒ 장윤미
작은 것들을 사랑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그것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크게 자리 잡을 때까지 '작아'는 발간될 것이다. 오늘 느낀 것들을 통해 나도 아름다워질 것 같다. 작은 것들의 소소하고도 충만한 의미를 알고 가슴에 아름다운 씨앗 하나둘씩 담고 싶다면 오는 9일까지 '작아'의 전시회에 가보시는 건 어떨지.

덧붙이는 글 | <작은 것이 아름답다>전

9월 2일부터 9월 9일까지 
오전 11시~오후 8시 
서울 충무로 남산한옥마을 갤러리 '다' 02-2268-5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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