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평택에서 85년도에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 동기들에게 들었던 질문은 "평택은 기지촌이 유명하다며?"라는 씁쓸한 이야기였다. 미군기지와 동고동락하면서도 미군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지 못했던 나에게 동기들의 질문은 큰 정신적 충격이었다.

초등학교 시절만 해도 3분의 1 정도는 부모님의 직업이 미군기지와 관련이 되어 있을 정도로 미군기지와 평택은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였다. 우리 집 역시 아버지가 안정리 K-6 미군기지에서 노무직으로 일을 하시면서 가져오는 초콜릿에 익숙한 환경이었으니까.

처음 지역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하며 아버지 친구분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네가 어떻게 대학까지 갔는데 반대운동을 할 수 있느냐"는 비난이었다.

미군기지와 우리나라의 공생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결국 모든 미군기지가 평택으로 몰려오는 기막힌 현실에서도 대다수 시민은 우려를 하면서도 속마음을 잘 표출하지 않는다. 그것이 결코 찬성의 마음이 아님에도…. 얼마 전 노무현 대통령은 용산공원 선포식에서 "협조해 주신 평택시민에게 감사하다"고 했으니, 이런 가벼움이 어디 있을까?

더욱이 평택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은 그 순간까지도 미군기지로부터 평화와 생명의 땅을 지키자고 730여 일째 촛불을 들고 있는데, 정부는 주민의 아픔은 무시만 한 채 서투른 축배만 들고 있는 모양새이다.

결국 미군기지와 함께 성장한 평택은 한미 양국의 무지막지한 힘의 논리와 일부 지역정치권과 소위 지역유지들의 허황된 '발전론', 낡은 '안보론'에 기대어 모든 미군기지를 평택에 받아들이는 무모한 선택으로 내몰리고 있다.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도시일 수밖에 없다.

'평화와 생명의 샘'

90년 평택으로 용산 미군기지가 내려온다는 소식에 평택지역에서는 '용산미군기지이전반대 평택시민모임'을 구성하고, 평택에서는 처음으로 미군기지에 반대하는 대중적 운동이 시작되었다. 그때도 미군기지 이전 대상지로 거론되었던 지역은 팽성읍 대추리, 도두리 일대였다.

평택에서 살면서도 대추리, 도두리 지역은 미군기지와 접해 있고, 한적한 시골마을에 지나지 않아 잘 몰랐던 마을이었다. 미군기지 때문에 처음 그 평화로운 마을에 가보게 되었다. 처음 대추리에 들어가 들녘을 보며 '평택에도 이런 곳이 있었구나!'라는 감탄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그 후 답답할 때면 대추리, 도두리의 너른 들녘을 가 보았지만, 번번이 길을 잃고 헤매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끝도 없이 이어진 푸른 벼들의 물결, 그곳은 또 다른 광활한 바다였으며, 신비로움을 주기에 충분할 정도로 아름다운 들녘이 이어진 곳이었다.

너무나 아름다운 땅은 고난도 많은 탓일까? 대추리, 도두리 땅이 심금을 울리는 까닭은 그 땅은 태고부터 자연스레 이어진 것이 아니라 수많은 피맺힌 한이 스며 들어가 사람의 마음을 울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제 시절에 쫓겨나고, 다시 미군에 의해 내몰리더니, 이제는 미국의 요구대로 이 땅을 군사기지로 만드는 것에만 모든 것을 쏟고 있는 한국정부의 손에 땅과 사람의 숨결이 끊어질 모진 상황에 놓여 있다.

대추리, 도두리 들녘이 더욱 아름다운 까닭은 그곳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쫓겨남과 억눌림의 역사 앞에도 당당히 일어섰던 사람들의 거친 손마디와 함께 누렸던 평화로운 공동체가 있고, 땅을 돈으로만 보는 세태 속에서도 땅은 생명이 공생하는 것임을 보여주는 열린 사람들의 마음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한미 정부는 그곳을 전쟁과 탐욕의 군사기지로 만들기 위해 너무나 모질게 땅을 짓밟고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있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잃지 않고 있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에게 평화가 무엇인지, 이 시대의 문화가 무엇인지, 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2년이 넘도록 꺼지지 않는 촛불

대학 졸업 후부터 평택에서 지역운동을 하며 세상의 변화를 위한 작은 몸짓과 마음씨를 나누어 왔다. 하지만 지금처럼 나의 운동에 대해, 나의 비겁함에 대해 좌절한 적은 없었다. 미군기지를 찬성하는 지역 상인들과 용감하게 토론하지 않으려 했으며, 주위의 지인들에게 우리가 왜 미군기지를 반대해야 하는지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왜 미군기지가 한반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미군기지가 왜 전쟁기지로 평화를 헤치고 있는지를, 그리고 우리가 왜 평화의 일꾼으로 평화를 지켜야 하는지를 제대로 알리지도 못했다.

지난 5월 4일 경찰과 용역에 의해 대추초교가 허물어지던 날, 운동장 한쪽 구석에 서서 그 야만의 현장에 분노하고 울음을 삼키기만 했지 정말 무기력했다. 비겁함에 숨기 바쁜 자의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대추리, 도두리를 위해 기도하게 된다. 내가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를 위한 도구로 쓰이기를, 그리고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가 영원히 이어지기를 소망하게 된다.

대추리, 도두리는 내가 오랜 기간 고민해왔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그리고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그곳에 지금도 한평생 땅을 사랑했고, 이웃과 웃음을 나누었던 평택의 주민들이 살고 있으며, 비겁한 평택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수많은 평화의 지킴이들이 함께 하고 있다. 정작 평택의 평화와 공동체를 지켜야 할 평택사람들은 지역의 분위기를 탓하며, 가정을 이유로 뒤로 물러서기 급급하지만 그곳엔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다.

그곳엔 진정한 평화가 있으며, 우리가 왜 생명의 땅을 섬기며 살아야 하는지를 여실히 깨닫게 해주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다.

조만간 빈집철거라는 야만의 방식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가치가 이렇게 폭력과 야만으로 더럽혀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서글프다. 국가 폭력 앞에 우리가 보이는 것은 나약할 수 있지만, 언제나 평화가 폭력을 이겼음을 나는 믿고 있다. 그 믿음을 실천하는 것이 나를 영원히 자유롭게 해줄 것임을 대추리, 도두리의 촛불은 잘 보여주고 있다.

대추리, 도두리 어머님, 아버님들, 그리고 그곳의 다양한 생명체들, 그 모두와 함께 살아가기를 정말 소망한다. 나의 아이가 커서 대추리, 도두리를 보며 평화를 배우기를 희망하며, 평화를 나누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희망한다.

왜 우리가 전쟁기지로 변모하는 미군기지를 평택으로 받아야 하는지, 동북아 신속기동군으로 변화되는 주한미군을 위해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이 희생당해야 하는지, 평생 농사를 지우며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농민들의 아우성은 이렇게 일방적으로 짓밟힐 수 있는 것인지, 평화를 심고 평화나무를 가꾸고 싶어하는 수많은 국민의 타당한 재협상 요구를 모른 척하는 청와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정말 속 시원한 대답을 듣고 싶다.

정말 내가 평화를 심고 평화를 키우는 도구로 대추리, 도두리 작은 나무로 서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평택의 평화를 지키는 것은 우리나라의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지금 대추리, 도두리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평화의 공동체가 넘실대고 있습니다.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를 지켜 주십시오. 
야만적인 주택철거에서 평화의 마을을 지켜주십시오.

* 이은우 기자는 평택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