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 전 의원은 미국에 체류하다 작년 여름 잠시 입국했을 때도 김 전 대통령을 찾았다. 그러고 이번이 두 번째.
그는 "(김 전) 대통령께서 제가 현역 판사일 때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게 유인했으니 저에게 정치적으로 격려할 책임이 현재까지 부채로 남아있다"며 이날 만남에 대해 만족스런 표정이었다. <21세기와 한민족>이라는 책도 선물받았다.
이날 만남은 1시간 30분 가량 꽤 길게 진행되었다. 이후 기자들과 만난 추 전 의원은 "정치적으로 크게 격려해 주셨다"고 했지만, '격려'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소중한 프라이버시"라고 함구했다.
추 전 의원이 "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면서 미국에서 공부한 내용들을 정리하고 싶다"고 했더니 김 전 대통령은 "아주 잘한 결정"이라며 "배움의 기회도 소중하니 열심히 잘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미국 콜럼비아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있으면서 대미관계·북핵 문제 등에 대해 공부한 추 전 의원은 모교인 한양대에서 국제 정치학과 동북아 국제관계론을 강의할 예정이다.
이날 추 전 의원은 자신의 행보와 관련 정치적 해석을 극도로 꺼렸다. DJ를 찾은 이유에 대해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만남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노 대통령을 만날 의사가 있냐는 질문에도 "인간적으로 내가 어느 누구와도 대립하지 않는다"며 정치적인 해석을 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기회가 온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정치 활동을 재개하는 것으로 봐도 되냐'는 질문에 추 전 의원은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며 손사래를 쳤다. 당분간 학교 강의에 집중하면서 정리할 기회가 필요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당분간'이 얼마나 되냐고 묻자, 추 전 의원은 "흘러가는 강물로 봐달라"며 "급류인지 완류인지는 저도 모르거든요"라고 선문답을 했다.
물론 열린우리당이나 민주당 등 정치권 인사들을 만날 계획에 대해서도 "아직 현실정치인 누구를 만날 생각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정주부인데 2년 동안 집을 비워서 먼지가 풀풀 나 집안 정리도 해야하고…, 제 자신이 너무 바쁘다"며 웃어보였다.
추 전 의원은 귀국 후, 당적을 두고 있는 민주당의 한화갑 대표와도 전화통화로 안부를 전하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민주당 내에서는 "추미애가 민주당 사람인지 아닌지 모르겠다"는 불만섞인 말들이 나온다.
흘러가는 '추'의 강물, 급류일까 완류일까
그런 와중에도 추 전 의원은 이날 김 전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한 가지 소득을 얻어 가는 듯 싶었다. 김 전 대통령이 설파한 '3가지 국민론'이다.
김 전 대통령은 추 전 의원에게 "정치인에게는 3가지 종류의 국민이 있다"며 "4700만 국민, 자신이 속한 정당을 지지하는 국민, 자신을 뽑아준 선거구민"을 들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전체 국민이지만, 우선 내 선거구민과 하나가 되고, 내 소속 정당이 개혁지지층의 정당이라면 그 뜻을 받들어야 하고, 그런 뒤에 전 국민과 대화하고 협력해 나가야 한다. 세번째 국민부터 성공하길 바란다."
추 전 의원이 차기 대선주자로도 거론되어온 점에 비추어본다면, 다양한 해석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18대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 지역구부터 시작하라"는 의미로도 해석될 수 있지만, 추 전 의원의 측근은 고개를 저었다. 두번째 국민론과 세번째 국민론, 모두를 강조한 것으로 들어달라고 주문했다.
아무튼, 추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3가지 국민론'을 전하며 "이걸 새겨들으면 좌절하더라도 재기하게 된다"는 말도 덧붙여 전달했다.
대선을 앞두고 연말, 연초 '정치권 빅뱅'이 예상되는 가운데 추 전 의원의 재기가 어느 수준에서 시작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