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덕여대가 학내 구성원들의 극한 대립과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연초부터 시작된 분규가 9개월이 지나도록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일 동덕여대를 찾았다. 개강을 했지만 캠퍼스는 여전히 낮게 깔린 잿빛 하늘처럼 황량했다. 총학생회는 자치권 보장을 외치며 100일째 총장실에 들어가 농성하고 있고, 학교 들머리에는 교수노조가 천막을 치고 총장 퇴진을 요구하는 철야농성을 69일째 이어가고 있었다. 직원노조 또한 학생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일시 파업을 철회했지만 언제든 다시 나설 태세다.
내부 갈등 극심... 교수도 학생도 둘로 쪼개져
동덕여대는 지금 극심한 내부 분열로 신열을 토하고 있다. 교수 사회는 현 총장 체제를 지지하는 교수협의회와 퇴진을 요구하는 교수노조로 나뉘어 갈등하고 있다. 그러나 둘은 지난 2003년 부패한 낡은 체제를 청산할 당시에는 종로에서 을지로에서 함께 "비리총장-족벌재단 퇴진"을 외쳤던 민주화 동지들이다.
학생들 또한 편이 갈렸다. 총학생회는 학교당국이 제기한 부정 선거 의혹에 휘말리면서 연초부터 힘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학내 사정 또한 총학생회한테 불리해 보인다. 100여 명(학교당국에서는 10명 안팎)의 지지자를 제외한 다수 학생들이 학내 상황에 무관심해 총학생회의 입지를 어렵게 하고 있다.
이 학교 하일지(소설가) 교수는 최근 교수노조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작금에 이 학교를 강타하고 있는 갈등의 소용돌이는 동덕 100년사를 통해 달리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듯하다"고 말했다. 특히 교수들 사이의 갈등을 두고 "남북전쟁이라도 벌어진 것처럼 보인다"고 한탄했다. 하 교수는 손봉호 총장에 대해서도 "동덕의 대재앙"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교수노조 "총장 퇴진만이 해결책"... 교수협 "퇴진 명분없다"
정창석 교수노조 동덕여대지회장은 "실세들의 비호를 받는 허수아비 손봉호 총장의 무원칙과 아무 생각 없는 밀어붙이기식 대학 행정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고 지적하고 "다수의 구성원이 원하는 손 총장의 퇴진만이 학내 혼란을 수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교수노조는 특히 대학당국이 학교 행정을 독선적으로 운영한다고 비판한다. 이는 구성원들이 민주화 투쟁으로 일궈낸 2004년 1월 9일 합의안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과거 체제로 회귀하려는 '역주행'이라는 설명이다. 이 합의안은 새 총장에게 행정, 재정, 인사 등 대학 운영에 관한 주요 사항을 구성원과 협의하고 이를 법인 정관과 대학의 규정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다.
교수노조 동덕여대지회는 현 체제에 반발하는 교수 5~6명이 지난 5월 1일 교수협의회에서 나와 건설한 학내 교수 사회의 자치조직이다. 교수노조는 학내 상황과 관련해 경쟁관계에 있는 교수협의회에 대해 "비판 견제 기능을 상실하고 거수기로 전락한 총장의 어용 친위대"라며 사실상 집행부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도수환 교수협 회장은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상대를 어용이라고 몰아붙이는 교수노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진검승부를 펼쳤으면 깨끗하게 결과에 승복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정창석 지회장을 직접 겨냥했다. 3월 교수협 회장 경선에서 진, 정 지회장이 교수노조를 만들어 교수협을 공격하는 것은 경선 불복이라는 것.
그는 "학교가 하는 일은 모조리 발목 잡고 동료 조직에 대해서는 흠집내는 것이 교수노조의 역할이냐"면서 "구체제를 물리치고 우리가 건설한 조직(교수협)이면 건전하게 비판하는 것이 지성인의 상식일 것"이라고 말했다.
손봉호 총장 "너무 힘들다. 차라리 나를 고발하라"
손봉호 총장도 "5명밖에 안 되는 교수가 어떻게 다수라는 말이냐"며 교수노조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손 총장은 "학내 구성원 다수가 원하면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다만 "100명이 지지하고 있는데 5명이 나가라고 한다고 나갈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손 총장은 교수협이 100명의 회원인 데 비해 교수노조는 5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그는 "다수라고 주장하려면 회원의 명단을 밝혀 증명해야 한다"고 교수노조에 요구했다.
총학생회의 총장실 점거로 100일 넘게 인문관으로 피신해 업무를 보고 있는 손 총장은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힘들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했다. 그는 "총학생회 선거 문제만 양보하면 갈등이 해결될 수 있겠지만 교육자적 양심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교육자의 양심을 못꺾어 고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학교가 선거를 다시 치르자고 제안했고, 교수협의회 회장이 전학대회에서 인준을 받으면 선거 결과를 인정하겠다는 뜻을 전달했지만 총학생회에서 거부했다"면서 "자치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있는지가 명백히 밝혀지지 않으면 그냥 묵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손봉호 총장은 이어 총학생회와 교수노조에게 "빠르고 편한 길을 놔두고 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느냐"며 "나를 퇴진시키기 위해서는 업무방해와 총학생회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검찰에 고발해 사법부의 유죄 판결을 받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 | "자치권 보장만이라도 꼭 따내고 싶다 | | | 총장실 점거농성 100일, 안미선 동덕여대 부총학생회장 | | | | 지난 5월 26일 학생자치권 탄압에 항의하여 총장실을 점거해 100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안미선(응용화학 4) 동덕여대 부총학생회장을 2일 밤 만났다.
그는 "실질적으로 임기가 석달밖에 남지 않은 지금 와서 학교당국이 총학생회를 인정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며 "올해 안에 학생자치권 보장 하나만이라고 꼭 따내고 싶다"고 말했다.
- 학교당국과 협상해 총장실 점거농성을 풀 생각 없나.
"학교당국이 우리를 협상 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1학기 등록금 책정 때도 학교당국은 학생들의 의견을 완전히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단대별로 6~7.5% 올렸다. 재단이사회가 물가 인상률을 감안하여 2.5% 내외에서 조정할 것을 권고했지만 학교당국은 이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 총학생회 인정은 이제 물건너 간 거 아닌가.
"임기가 3개월 남았는데 지금 와서 인정받아서 뭐하겠나. 올해 안에 학생자치권 보장 하나만이라도 꼭 따내고 싶다. 임기 끝나면 새로운 총학이 들어설텐데, 후배들은 자치권이 완전히 보장된 상태에서 활동했으면 좋겠다. 1년 가까이 자치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활동해보니까 너무 힘들더라. 내년에 새 총학이 들어서서 임기를 시작하면 분명히 교육투쟁의 맥을 이어나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
"지금은 14일께 2학기 개강 선포식을 준비하는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때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할 예정이다. 학우들을 직접 만나 총장퇴진의 당위성을 알리고 학생으로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리와 자치권이 박탈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설명할 것이다. 학교는 지난 7월 총장실 점거에 참가하고 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기정학(6명)과 유기정학(4명)이라는 징계를 내렸다. 총학생회에서는 이 같은 징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