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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a77a2">관세청 일제 때인 1943년 12월 1일 전시물자 수송목적으로 세관을 총독부 교통국 소속으로 편성한 내용 등 4개 항목을 공식 연혁에 표기했다.
관세청 일제 때인 1943년 12월 1일 전시물자 수송목적으로 세관을 총독부 교통국 소속으로 편성한 내용 등 4개 항목을 공식 연혁에 표기했다. ⓒ 관세청홈페이지 캡처
<font color="a77a2">국립수산과학원 1921년 5월 수산시험장 창설을 연혁에 남겨 일제 때 그 기관이 만들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 1921년 5월 수산시험장 창설을 연혁에 남겨 일제 때 그 기관이 만들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 국립수산과학원홈페이지 캡처
건국 5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부 정부기관이 일제 잔재를 자랑스럽게(?) 남겨둬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정부조직 중 18개부처와 18개청, 정부투자기관 등의 홈페이지를 확인한 결과 일부 기관이 연혁에서 일제 잔재를 그대로 남겨둔 것으로 드러났다. 그중 대표적인 곳은 관세청과 농촌진흥청, 국립수산과학원.

이들 기관들은 "단순한 연혁 표기일 뿐"이라고 해명했지만, "나라가 없었던 일제시기까지 무비판적으로 공식 연혁에 포함시키는 것은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정부부처의 공식연혁을 표기할 때 일제시대 때 사실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대한 기준이 없는 상태여서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농촌진흥청·국립수산과학원, 일제 때부터 연혁 시작

관세청(www.customs.go.kr) 홈페이지를 먼저 보자. '우리청 연혁' 코너를 보면, 1878년 9월 28일 두모진 해관 개관부터 연혁이 시작된다. 그런데 이 가운데는 일제 때인 1943년 12월 1일 전시물자 수송목적으로 세관을 총독부 교통국 소속으로 편성한 내용 등 4개 항목도 표기돼있다.

농촌진흥청(www.rda.go.kr)도 연혁에서 통감부 통치하인 1910년에 그 역사가 시작됐음을 설명하고 있다. 또 권업모범장을 조선총독부에 이관했다거나 1920년 11월 교육령을 개정해 수원농림학교를 권업모범장에서 분리했다는 내용 등 일제강점기 때 이뤄진 7개의 항목을 연혁에 기록해 두고 있다.

국립수산과학원(www.nfrdi.re.kr)도 마찬가지다. 이 기관은 1921년 5월 수산시험장 창설을 연혁에 남겨 일제 때 그 기관이 만들어졌음을 나타내고 있다.

정보통신부, 경찰청, 문화재청의 연혁표기도 아쉬움이 있다. 정보통신부는 일제시대의 연혁을 '암흑기'로 표기하긴 했지만, 이 기간 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무려 20개 항목으로 나눠 자세히 설명했다. 이것만 봐서는 지금의 정보통신부가 일제시대의 통신국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경찰청과 문화재청은 미군정기의 내용을 연혁에 포함하고 있다. 정부투자기관인 한국철도공사와 한국농촌공사의 연혁에도 일제시대의 변천과정을 담고 있다.

그 기관들의 연혁에 나타난 기록들이 역사적 사실을 바탕에 둔 것이라고 주장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관세청의 경우 일제강점기 이전에 그 업무를 시작했고, 농촌진흥청은 일제가 설치한 권업모범장에서 비롯됐다. 국립수산과학원도 일제가 만든 수산시험장에서 그 업무가 시작됐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출범하기 전인 일제시대 때 있었던 내용을 기관의 공식연혁에 포함시키는 것은 논란이 되는 일이다.

행정자치부를 조선총독부의 내무부나 총무부를 이어받은 기관으로 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조선총독부의 경찰 조직인 경무총감부 역시 지금 대한민국 경찰의 연혁에 포함 될 수 없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부인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1948년 7월 17일의 대한민국정부조직법을 기본으로, 1948년 8월 15일 출범했다.

같은 이유로 전시물자 수송목적을 담당했던 일제시대의 세관을 대한민국 정부조직인 관세청의 전신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일제 통감부가 1906년에 설치한 권업모범장도 농촌진흥청의 연혁에 포함되어서는 안된다. 1921년 5월에 만들어진 수산시험장 역시 국립수산과학원의 뿌리가 아니다.

해당 기관들 "슬픈 과거도, 아픈 과거도 우리의 역사"

<font color="a77a2">정보통신부 일제시대의 연혁을 '암흑기'로 표기하긴 했지만, 이 기간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무려 20개 항목으로 나눠 연혁에 자세히 설명했다.
정보통신부 일제시대의 연혁을 '암흑기'로 표기하긴 했지만, 이 기간동안의 역사적 사실을 무려 20개 항목으로 나눠 연혁에 자세히 설명했다. ⓒ 정보통신부홈페이지 캡처
그러나 이와 관련해 해당 기관들은 문제가 없다는 태도이다. 관세청의 홍보담당자는 "(연혁은) 관세제도, 관세행정의 시대변천사를 기술한 것일 뿐"이라며 "(일제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과거인데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설명했다.

정보통신부 홍보과의 한 관계자도 "국사 교과서에도 일제 강점기의 역사적 사건이 다 표기가 되지 않느냐"며 "단순히 (연혁의) 흐름을 알고자 하는 분들도 있을텐데 일제 때라고 해서 블랭크(빈 칸)로 처리하면 안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일제 때 해당 기관의 전신이 만들어진 덕에 현재에 이르게 됐다는 시각도 있다. 농촌진흥청의 연혁정리 담당자는 "실제로 농사지도나 교육이 체계화된 것이 통감부가 모범장을 설치한 1906년부터"라며 "그런 기관이 있었기 때문에 쌀 자급도 실현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슬픈 과거도, 좋은 과거도 부정할 수 없는 역사의 한 과정"이라며 "그럼 (일제) 36년간은 완전히 없었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정부부처나 기관이 연혁을 표기할 때 일제강점기를 어떻게 적을 지에 대한 논의가 없는 것도 문제다. 이런 탓에 현재로선 기관별로 제각각인 상황이다.

일례로 행정자치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를 각 정부부처나 기관의 공식연혁으로 보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행자부 홍보관리팀의 한 관계자는 "연혁 기록에 관한 규정은 없다"며 "그러나 1948년 이전의 사실은 정통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예를 들어 일제시대 때도 (행자부의 전신인) 내무부나 총무처의 기능을 하는 조직이 있었겠지만 그것을 연혁에 포함시키지는 않는다"면서 "(정부기관의) 공식적인 연혁은 정부수립 이후로 봐야한다"고 덧붙였다.

"정부기관이 일제 때 사실 무비판적으로 적는 건 문제"

<font color="a77a2">행정자치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를 공식연혁으로 적었다.
행정자치부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를 공식연혁으로 적었다. ⓒ 행정자치부홈페이지 캡처
김정인 교수(춘천교대 사회과교육)는 "정부부처나 정부기관들이 국가가 없던 일제 때 사실을 부끄럼 없이 무비판적으로 공식연혁으로 쓰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정부기구들이 나라가 없던 식민 시기의 역사적 사실을 어떻게 기술할 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적어도 정부기관이 연혁을 기록할 때에는 국가의 정통성을 충족시키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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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여행 홈페이지 초록별 가족의 여행(www.sinnanda.com) 운영자 입니다. 가족여행에 대한 정보제공으로 좀 다 많은 분들이 편한 가족여행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기사를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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