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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송북
<오마이뉴스>에 역사소설 <762년>을 연재 중인 작가 제성욱씨가 4권 분량의 대하소설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를 펴냈다.

MBC 역사드라마 <신돈>이 기황후에 대한 역사적 사실 왜곡을 심하게 하였다는 주장을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통해 펼쳤던 작가인지라 기황후를 모델로 한 소설의 출간은 더욱 뜻깊다.

'우리 역사 바로 알기'의 중요성이 부각되는 시점에서 왜 우리는 과거 유교와 봉건적인 사관에 의해 폄하된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에 대한 재평가에는 무심할까? 소설을 집필한 작가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출발한다.

기황후는 한민족 역사상 중국 왕조의 황후가 되어 대륙의 정세를 주도했던 유일한 사람이다. 그녀는 지금으로부터 700년 전, 공녀로 이국땅에 끌려간다. 나라가 약해 강대국 원나라의 강압에 못 이겨 백성을 공물로 바쳐야 했던 참담한 시대의 얘기다.

고려의 문장가 이곡은 '공녀로 선정되면 온 집안사람들이 피눈물을 흘렸다'고 공녀 반대 상소문을 남겼지만, 정작 원나라에 끌려가 몽골 귀족의 첩이 되거나 창기가 되어야 했던 고려 여인들의 삶에 대해서는 남아 있는 역사의 기록이 없다.

기황후는 차 따르는 궁녀에서 당대 지배세력의 온갖 핍박을 견뎌내며 극적으로 황후가 되었다. 그녀는 공녀나 환관으로 끌려가 노예의 삶을 살아야 했던 고려인들의 희망이었고 긍지였다.

자신을 버린 고려의 권익을 위해 정치력을 발휘했고, 더는 백성을 공물로 바쳐야 하는 약소국의 참담함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그리고 어린 왕들을 독살시키며 권력 찬탈을 일삼았던 고려 왕조의 폐단을 막기 위해 공민왕을 추대하기도 했다. 이것이 역사가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있는 기황후의 행적이다.

그러나 최근에 알려진 기황후에 대한 평가는 뚜렷한 공적이 있음에도 부정적인 측면 일색이다. 그것은 승자들에 의해 기록된 한족 중심의 명나라 사관이 왜곡과 폄하를 일삼았기 때문이다. 또 이를 비판 없이 받아들인 조선의 사대주의적 사관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는 단순한 영웅 그리기나 과장된 성공 신화가 아니다. 작가는 기황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근거로 이야기 속에서 실체적 진실을 찾아가고 있다.

기황후는 국가 경영에 대한 분명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통치자였다. 당시 원나라는 천재지변과 거듭된 민란으로 국가 경제가 형편없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황후는 무능한 황제들이 써왔던 그릇된 방식, 즉 국가 재산을 늘리기 위해 세금을 높여 백성을 더 궁핍하게 만드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기황후가 추진한 정책은 오늘날로 보면 많이 버는 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부과하는 '형평과세'였다. 내수시장을 돌보기 위해 국가 재정의 바탕을 이루었던 금과 소금의 밀거래를 완벽하게 통제했다. 이는 물가를 안정시키면서 동시에 세수를 확보하는 길이었다.

또 대상(隊商)이나 귀족 계급이 장악해서 엄청난 폭리를 취하고 있던 실크로드와 국제해상무역의 이권을 황실 직속기관인 자정원에서 직접 관리토록 했다. 그 적재적소에 고용보나 박불화와 같은 고려 출신 환관들을 책임자로 임명해 명령체계의 혼선을 없애며 이윤의 극대화를 꾀했다.

이런 개혁 정책은 당시 지배 세력들의 극심한 반발에 부딪혔다. 기황후는 이들을 단호하게 제거하거나 아름다운 고려 여인들을 이용해 포섭하는 과단성과 능수능란함을 보이기도 했다. 기황후의 이러한 천하경영 방식이 돋보이는 것은, 공평 과세와 무역 수익으로 비축한 황실 재정을 사치와 향락으로 탕진하지 않고 백성을 위해 온전히 베풀었다는 것이다.

낯선 이국땅에서 여인으로서 겪게 되는 기황후의 인간적인 고뇌는 읽는 이의 가슴을 서늘하게 한다. 또 권모술수가 판을 치는 황실의 권력다툼에 매몰되지 않고 고려인의 긍지를 지키며 큰 덕(德)으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해 가는 과정에서 이 소설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

이 소설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 역사나 역사소설이 외면해 온 '역사 이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는 700년 전 공녀나 환관으로 끌려간 백성을 단지 '자정원파를 형성하며 큰 세력을 이루었다'고 짧게 언급하고 있을 뿐이지만, 그들은 기황후를 중심으로 이국땅에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고려인들만의 왕국을 꿈꿨던 것이다.

천하를 경영한 기황후 4 - 나를 고려에 묻어다오

제성욱 지음, 일송북(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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