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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 체험에 참가한 이흥용(앞), 손만수(뒤)씨
저상버스 체험에 참가한 이흥용(앞), 손만수(뒤)씨 ⓒ 홍성현
장애인·노약자·임산부 등 교통 약자의 이동권을 보장하기 위해 경남 양산시가 의욕적으로 도입한 저상버스가 첫 시동을 건지 6개월에 접어들고 있다. 하지만 도입 본래의 취지를 살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기자는 (사)경남지체장애인협회 양산시지회 지체장애인들과 함께 신도시와 물금을 거쳐 호포 구간을 운행하는 127번 저상버스에 올랐다.

'서민의 발'인 시내버스. 일반인들에게 버스 타기는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이다. 하지만 보호자 없이 길을 나선 지체장애인 이흥용(70), 손만수(55)씨에게는 너무 힘든 일이다.

저상버스 체험을 하기 위해 이들과 함께 버스 운행시간에 맞춰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헌데 저상버스를 타기도 전에 문제에 부딪혔다. 터미널과 버스 사이의 불과 10cm의 턱이 이들을 가로막은 것.

운전사의 도움 없으면 버스에 올라가지 못해

저상버스는 뒷문(측면)에 경사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를 이용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탈 수 있는 것. 하지만 버스가 정면으로 주차하는 터미널에선 뒷문을 이용할 수 없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체험자들은 결국 버스운전사의 도움으로 간신히 버스에 오를 수 있었고 안전을 위한 휠체어 고정 장치를 채울 수 있었다.

이렇게 한고비를 넘기나 했더니, 이제는 일반승객들의 불평이 터져 나온다. 급기야 한 승객은 "시간이 급해서 이 버스를 도저히 못 타겠다"며 환불을 요구했다. 체험자들이 버스에 오르느라 지연된 시간을 참지 못한 것이다. 체험자들의 표정이 잠시 동안 굳어졌다.

모든 상황이 정리되고 버스는 터미널을 출발했다. 버스기사인 장금춘씨도 한고비를 넘긴 듯 식은땀을 흘렸다.

장씨는 "이처럼 도로여건이 좋지 않은 곳에서는 운전사가 직접 내려 장애인이 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며 "장애인들이 버스에 타면서 시간이 지연되면 일반승객들이 불평하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터미널을 빠져나온 버스는 곧 신도시를 지나 보건소 앞에 멈춰 섰다. 여기에는 또 다른 체험자인 백용선(54)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미 전동휠체어 두 대가 자리를 차지한 버스에 남은 공간은 얼마 없었다. 백씨는 평소에 운전사의 도움 없이 저상버스를 이용했지만 이날은 좁은 공간 때문에 운전사의 도움을 받은 후에야 겨우 버스에 오를 수 있었다.

이렇게 버스에 오른 백씨는 "1시간 30분이 넘게 버스를 기다렸다"고 했다. 이유인 즉, 이 노선엔 저상버스 두 대가 도입돼 운행 중 이지만 한 대가 고장으로 정비를 받고 있어 배차간격이 길어졌다는 것.

실제로 차체가 낮은 저상버스의 경우 과속방지턱이나 튀어나온 맨홀 등으로 인해 고장이 잦다. 하지만 백씨는 "오래 기다리긴 해도 없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며 "보호자 도움 없이 외출해 보건소 진료를 받을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어느덧 버스는 영대교를 지나 물금방면으로 접어들었다. 마침 하교시간인지라 학생들이 우르르 버스에 올랐다. 전동휠체어 세 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버스는 순식간에 만원이 됐다. 승객들은 하차하는데 불편을 겪었고 체험자들의 표정은 또 한 번 굳어졌다.

장애인, 편견없는 시선으로 봐라봐야

결국 종점인 호포까지 가지 못하고 범어우체국 정류장에서 체험을 그만둬야 했다. 내리겠다고 말을 하자 운전사는 버스를 세운 뒤 체험자들이 안전하게 내릴 수 있도록 도왔다. 탈 때와 마찬가지로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런데 버스에서 내리려던 이흥용씨가 헤매기 시작한다. 일반 승객들의 따가운 시선을 느껴 마음이 급해졌는지 계속 실수를 저지른다. 평소에 제 몸처럼 움직이던 전동휠체어인데도 말이다.

고령의 이흥용씨는 체험이 힘들었는지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를 타고 버스에 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다"며 "저상버스가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웃으며 말했다.

반면 손만수씨는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저상버스를 타지 않겠다"고 잘라 말했다. 일반 승객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이런 시선을 느끼면서까지 저상버스를 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첫 걸음을 내딛는 저상버스는 분명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하지만 시설은 하나씩 개선하고 보충해 나가면 된다. 그보다 더 시급한 일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따뜻한 시선도, 배려도 바라지 않는다. 부디 편견 없는 시선으로 바라봐 주기를 바랄 뿐이다.

교통약자의 발 '저상버스'는?

▲ 지난 4월 양산에서 처음으로 도입된 저상버스에 한 장애인이 시범탑승을 하고 있다.

저상버스는 장애인들이 휠체어를 탄 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안전하고 편리하게 오를 수 있도록 차체 바닥이 낮고 출입구 계단 대신 경사판이 설치된 버스를 말한다. 때문에 장애인뿐만 아니라 아기를 태운 유모차나 계단을 오르내리기 힘든 노약자, 임산부 등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이 버스는 1976년 독일에서 처음 개발된 이후 영국, 덴마크, 캐나다 등 선진국의 대도시에서는 이미 1990년대 초부터 일반화 됐으며 일본에서도 1997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990년대 말부터 장애인 단체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저상버스의 도입을 계속 요구해 왔다. 하지만 보도의 높이가 도로마다 다르고, 정류장 근처에 불법차량이 있을 경우 버스가 보도에 접근하지 못하는 등 도로 여건상 문제가 많아 도입이 미뤄져 왔다.

그러다 지난 2003년 경기도와 서울시를 잇는 주요 도로에 버스전용차로를 설치하기로 함에 따라 우선적으로 서울시에서 20대 정도를 시범운영한 뒤, 매년 100대 규모로 늘려 2012년까지 1000대를 도입키로 한 것.

양산시도 지난 2005년 9월, 경상남도 시군 가운데 처음으로 저상버스 도입을 위한 시험운행을 실시했다. 지난 4월에는 당초 도입키로 한 저상버스 3대 가운데 서창 그린빌아파트에서 덕계를 지나 부산 금정세무소 구간을 운행하는 저상버스 1대를 정식 도입해 운행에 들어갔다. 또 6월에는 버스터미널에서 신도시와 물금을 지나 호포를 잇는 노선에 나머지 두 대의 도입을 완료하고 운행 중이다.

한편 건설교통부는 최근 '대중교통기본계획(2007년~2011년)'을 확정하고 2013년까지 전체 버스의 50% 이상을 저상버스로 대체한다고 밝혔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3년까지 전국 시내버스의 50% 이상을 저상버스로 대체하기 위해 버스사업자에게 저상버스 구입비용의 일부(국비 50%, 지방비 50%)를 지원한다. 1대당 지원규모는 약 1억원 정도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버스 업체들에게 지급되는 보조금이 구입과 운영상의 손실 등을 보장해 줄 경우 시장경제원리에 어긋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하지만 저상버스 도입이 소수의 권리 보호라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 경제성만을 가지고 판단하기는 어렵다는 여론이 일반적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양산시민신문의 인터넷신문인 양산뉴스(http://ysnews.co.kr/) 148호에서도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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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 수영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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