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미국에서는 11월로 다가온 중간선거와 맞물려 안보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9·11 테러 직후 국가안보를 절대시하는 분위기를 틈타 지지율 70%를 상회하기도 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수렁에 빠져들면서 역대 정권 가운데 가장 인기없는 정권으로 전락하고 있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 행정부에 대한 지지율은 40%를 넘지 못하고 있다. 공화당 골수 지지자 비율이 40%가 넘는 미국에서는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중간선거 앞두고 '안보'에 매달리는 부시
11월 중간 선거와 2008년 대선을 앞두고 이렇다할 반전의 카드를 찾지 못한 부시 행정부는 안보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키면서 미국 국민들의 안보 불안심리에 의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연일 '테러와의 전쟁' 연설을 통해 테러와의 전쟁의 중심에는 이라크가 있고, 이라크에서의 후퇴는 테러와의 전쟁에서의 패배를 의미한다며 9·11 테러와 이라크 침공을 연계시키는 데 급급하기만 하다. 또한 부시 대통령은 테러 용의자들에 불법으로 구금한 CIA의 비밀 감옥의 존재를 시인하기도 했다.
딕 체니 부통령과 함께 이라크 침공을 주도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이라크에서의 철수 요구는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과 마찬가지라며, 민주당의 이라크 정책 수정 요구를 '역사의 망각'이라고 몰아붙였다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분개한 민주당은 럼스펠드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을 추진하고 있고, 선거를 앞둔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럼스펠드를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테러와의 전쟁' 심볼로 불려온 럼스펠드는 장관 취임 6년 반만에 최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렇듯 9·11 테러 5주년을 맞이하고 있는 미국의 분위기는 '성찰'과는 거리가 멀기만 하다.
부시 행정부와 공화당은 '이라크 수렁'이라는 악재를 선거의 호재로 만들기 위해 9·11 테러를 한껏 활용하고 있다. 1994년 중간선거 이후 12년만에 의회 권력 탈환을 노리고 있는 민주당은 부시 행정부가 미국과 세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공세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이라크·이란·북한의 공통점은?
사상 초유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는 9·11 테러 5년이 지난 지금, 미국은 이 테러 사건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세 나라들과 전면적인 대결 상태에 있다. 부시 행정부가 2002년 1월 연두교서에서 지목한 '악의 축' 국가들인 이라크·이란·북한이 바로 그들이다.
후세인과 알-카에다와의 연계 및 대량살상무기 개발 의혹을 들고 이라크를 침공한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은 모두 잃은 채, '21세기판 베트남 신드롬'에 빠져들고 있다. 이미 이라크에서의 미군 사망자 수는 9·11 테러 희생자 수에 육박하고 있고, 종족갈등으로 얼룩지고 있는 이라크의 현실은 미국의 위선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북한은 이미 10개 안팎의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탄도미사일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무력은 사용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이 안 되고, 제재와 봉쇄는 북한의 핵무장을 재촉하고 있을 뿐이다.
이란도 '핵 카드'를 들고 미국과의 맞짱뜨기에 나서고 있다. 개혁파인 하타미 대통령에 이어 집권한 강경 성향의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하면서까지 '핵 주권'을 외치고 있다.
이에 대해 네오콘을 중심으로 미국 내 일각에서는 이란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론이 나오고 있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조차 이는 '미친 짓'이라고 보고 있다. 이란마저도 핵보유국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는 이제 더 이상 기우가 아닌 것이다.
국내 개혁과 서방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을 추구했던 하타미의 이란을 '악의 축'으로 규정한 부시 행정부의 자업자득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흔히 이들 세 나라의 공통점으로 '악의 축' 국가들이라는 점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공통점이 있다. 이라크·이란·북한 모두 9·11 테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행정부와 보수 언론의 '이미지 만들기'가 성공한 탓인지,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이들 국가에 대한 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을 '테러와의 전쟁'의 일환으로 이해하고 있다.
성찰과 자기정화 능력을 상실한 미국과 이들 세 나라의 운명이 걱정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