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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년 만에 복직한 고진형 선생. 그는 지난 2002년 전교조 출신으로는 전국 최초로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 김두헌
9월 1일자로 목포기계공고에 복직해 생물 과목과 상담교사를 맡고 있는 고진형 선생을 지난 6일 찾아갔을 때, 사위는 적막하고 소슬했다. 고진형 선생은 본관 건물의 대여섯 평 남짓한 허름한 귀퉁이 사무실 한켠에 혼자 앉아있었다.

이 사무실은 과학 선생님들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고 했다. 다른 선생님들은 수업에 들어가고 없고, 고진형 선생 혼자 앉아 라디오를 틀어놓은 채 돋보기 안경을 쓰고 교사용 지도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제, 진짜 선생님 자세가 나옵니다."

갑작스런 방문에 고진형 선생은 쓰고있던 돋보기 안경을 벗고 슬리퍼발(?)로 달려나와 기자의 두 손을 맞잡았다.

복직 소감을 묻자 고진형 선생은 "'돌아온 장고'도 아닌데 소감은 무슨 놈의 소감이냐"며 환하게 웃었다. 그래도 18년 전 전교조 활동 때문에 무안종고 교무실에서 구속영장을 들고 온 경찰에 연행되어 가면서 "선생님들 미안합니다,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라고 했던 약속을 지키게 돼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전교조 1·2·4·6·7대 전남도지부장을 역임한 고진형 선생은 전교조 활동 때문에 파면·투옥되는 고초를 겪었다.

지난 2000년 치러진 전남도교육감 보궐선거에 전교조 조직후보로 출마해 1차 투표 결과 1위를 차지했지만 결선 투표에서 아쉽게 낙선의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2년 9월, 전교조 출신으로는 전국 최초로 전라남도교육위원회 의장으로 선출된 3선 교육위원 출신이기도 하다.

18년 만에 돌아온 고향... 아직은 낯설다

이번 복직 때 고진형 선생은 수많은 선생님들로부터 축하인사와 꽃다발을 받았다.

"격세지감을 느꼈습니다. 무엇보다 고향에 다시 돌아온 듯한 안도감….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막막합니다만, 아무튼 지금 기분을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굉장히 편안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8년 세월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오긴 했지만 교육 과정도 수차례 바뀌었고 학생들 생각도 많이 바뀌었을 텐데 두려움은 없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제 4교시 화공과 학생들 수업에 들어갔는데 등에 식은 땀이 다 흐르더라니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어떻게 변했을까, 내가 이 아이들에게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을까, 내가 가진 교육철학과 이 아이들의 사고방식이 어떤 지점에서 상충하고 어떤 지점에서 화해하고 상생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거라."

고진형 선생은 18년 세월이 길긴 길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요즘 학생들의 변화무쌍한 생각을 어떻게 조율하고 자신이 걸어온 길과 그 길에서 만났던 수많은 '만남'들을 어떤 식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노 교사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학생들은 반응을 묻자 "이 녀석들, 말은 하지 않지만 어디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생물 선생님이 한 분 오셨대?" 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고 환하게 웃었다.

학생들 이름 외우기부터 시작합니다

18년 전이면 지금 고등학생들이 이제 막 뱃속에서 나와 기저귀를 차고 엄마 젖을 물고 있을 무렵이다. 학생들은 늙은 생물 선생 고진형이 교육민주화를 위해 교직에서 해직되고 투옥됐던 지난 어두웠던 시절을 전혀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

"잘 가르치려고 할수록 어렵더라는 지난 94년 복직한 선생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선 제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고 아이들에게 다가가 사랑·꿈·공동체의식·비전 같은 어떻게 보면 생물 공부보다 더 중요할지도 모르는 이야기로 학생들과의 '만남'을 진지하게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늙은 생물 선생을 수용하려는 자세가 덜된 학생들과의 거리감을 자신의 간절한 마음과 사랑으로 극복하려는 노교사의 충심어린 마음이 읽혀졌다.

"그래, 그 거리감을 좁히려고 생각해 낸 것이 학생들 이름 외우기입니다. 학생들의 성격이나 특성을 알아 칭찬해주면 지들도 저를 좀 가깝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또 고진형 선생은 수업을 쉽고 재밌게 하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고민한 끝에 수업도구를 준비하고 프린터물을 챙기기로 했다고 한다.

"특히 이 학교는 실업계 학교라서 완성 교육이 이뤄져야 합니다. 물론 최근에는 대학 진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기도 합니다만 저는 상담 시간을 이용, 학생들에게 '꿈'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어요.

꿈만 꾸면 그것은 단지 꿈에 불과하다, 그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행동이 뒤따라야 한다, 대학에 가지 않는 학생들은 사회에 나가면 곧바로 어엿한 직업인으로 살아가야 한다, 다양한 취미생활도 하면서 당당한 인격체로 성장해 주길 바란다… 등등."

누군가의 마음에 깃드는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고진형 선생은 "언제 아이들이 마음의 문을 열고 아이들의 맘속으로 들어갈지는 아직 모르겠다"면서 "교사 노동자로서 온몸을 던져 학생들을 위해 온몸을 던질 각오는 단단히 하고 있다"고 얼굴 주름이 깊이 패이도록 환하게 웃었다.

차 한 잔, 물 한 모금 얻어마시지 못하고 돌아오는 기자를 배웅하는 반백의 노교사를 뒤로 하고 떠나오자니 어쩐지 마음이 짠했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교정 한켠에 서서 손을 흔드는 노 교사를 뒤로 하고 떠나오는데 어젯밤에 읽었던 19세기 영미문학의 위대한 성취로 꼽히는 에밀리 디킨슨의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깃드는 상처를'이라는 싯귀가 생각났다.

내가 만약 누군가의 마음에 깃드는 상처를
막을 수 있다면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내가 만약 한 생명의 고통을 덜어주고
기진맥진해서 떨어지는 울새 한 마리를
다시 둥지에 올려놓을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 아니리.


고진형 선생이 하루빨리 학생들의 마음에 깃들어 상처입어 기진맥진해 하는 녀석들을 따뜻한 둥지 위에 다시 올려놓을 수 있길 기대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희망교육21'(www.ihope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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